가재울성당 게시판

김지현, 오은성에게

인쇄

안선희 [namunwish] 쪽지 캡슐

2000-08-19 ㅣ No.1310

지현아! 은성아!

  너희들이 모두 가좌동 성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음을 알고 참 기뻤단다. 너희 본당 게시판에 두차례 들어오면서 천주교는 공번됨(하나됨)의 특성이 있다,라고 배웠던 입교시의 교리가 새삼 실감나는구나.

  형섭이하고만 통화했기에 편지를 하나만 띄웠던 건데, 아까 우리집에서 걔가 내 아이디로 들어와 읽고는 부탁하기를,

- 지현이한테도 꼭 써주세요.

  편지에는 너희에 대한 마음도 실려져 있다고 판단했었지만, 일일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니 또 잠을 설치고 일어나 앉아 이 편지를 더 쓴다.  혹시 너희도 지금 책상맡에서 하품을 깨물며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좀 구태의연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만,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퀴리부인의 전기문을 보면, 학창시절에 늘 이른 새벽에공부를 열심히 하였는데 그 시각 깨어있을 천재들과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쓰여 있단다. 가난했기에 이불 대신 무게가 나가는 가구나 물건을 배에 올려 놓아 따뜻함을 가상체험해야 되었던 그녀였지만, 새벽의 공부는 함께 깨어있을 비전있는 천재들과의 유대감을 주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했던가 봐. 나도 학창시절에 퀴리부인처럼 지금 깨어있을 아무개들에 대해 공감과 감동을 공유하려고 애써본 경험이 있단다.

  그리고 너희를 보며 참 신선하다고 여겨졌던 게 있다면, 나는 도서실이나 독서실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블랙커피를 타다 병째 마셔가며 잠을 쫓던 세대였는데, 너희는 다모임이니 하여 삼백여 친구들과  놀고 대화하며 참 신나게 공부하고 있다는 점이었어.  내 수험시대가 도서실이나 독서실의 좁은 칸막이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너희는 끝을 알 수 없는 넓고 개방된 세계에서 게임처럼 살고 있다라는 인상이었지. 피곤하더라도 미래를 아름답게 꿈꾸면서 지치지 말고 정진하길 부탁할게.

  지현아. 어릴 때도 상냥하고 얌전하더니 역시 사려깊고 어여쁜 숙녀로 자라주었구나. 너 때가 제일 살찔 시기니까 나중에 다아 키로 간다고 생각하고 맘껏 먹으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렴. 내가 육년 전 만난 네 어머니의 머리 스타일까지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어딘가 여성적인 매력이 흐르던 통통한 외모가 한몫 단단히 한다는 걸 아니.

  은성아. 너야말로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키만 컸고 모습이 하나도 안변한데다 수줍은 웃음까지 똑같더구나. 매사 신중한 느낌은 참 좋다만 약간은 와일드하고 자기주장도 대범하게 하는 일면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아직은 우리사회가 남자에게 리더쉽을 많이 요구하니, 타인에게 너를 어필하고 리드하는 법을 계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

  얘들아, 편지를 접을게. 나중에 만나서 또 얘기하자. 이만 안녕.



3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