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2005년 6월 25일 제 1회 전례음악 봉사자 전국대회 소식 [성음악] [교회음악] [성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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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6 ㅣ No.536

+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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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로의 링크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6289/ <--- 주: 클릭하면 조회수만 올라가니, 클릭하지 마십시요..^^

 

사진 추가: 제 1차 전례음악봉사자 전국 대회 진행 사진을 옆의 사진앨범에 담아 보았습니다. 찍힌 그대로이니 (즉, 압축을 하지 않았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사진을 다운로드 해 가도록 하세요. 옆 화면의 작은 사진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사진을 다시 한 번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좋은 사진앨범을 제공해 주시는 굿뉴스 전산실에 감사드립니다. 이들은 물론 제가 찍은 사진들입니다만, 다른 분들께서 찍으신 대회 사진들도 이 사진앨범에 올려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앨범의 주소는 아래와 같으며 굿뉴스 회원이면 사진을 올릴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 말씀을 주변의 사진 촬영하신 분들께 전달해 주실 것을 꼭 부탁드립니다.

 

대회 관련 경향잡지 기고문(윤용선 신부), 기사 추가(가톨릭신문, 평화신문):

주: 옆에 이들을 위한 새 창이 뜨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의 주소들을 클릭하세요.

경향잡지 기고문(윤용선신부)

7월 3일자 가톨릭 신문 기사 모음

7월 3일자 평화신문 기사 모음

 

사진앨범 주소: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pundang_album6_01 <--- 주: 옆에 사진앨범 새 창이 뜨지 않을 경우에만 클릭하세요.

참고: 옆 화면의 사진앨범에 있는 사진들에는, 특히 오후에 연주를 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포함하여,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읽을꺼리를 조금 써 놓았습니다.

]

 

Part A.

오늘 (2005년 6월 25일)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구:  가톨릭음악원, 서울역 뒤 중림동 성당 (약현 성당) 남쪽 언덕에 위치) 최양업신부 기념홀에서 개최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주최 제 1회 한국 천주교 전례음악봉사자 대회는 약 430명 이상의 많은 교우님들께서 참석하시어 전례음악 전반에 걸쳐 폭넓은 의견 교환 및 개진을 하였던 아주 뜻 깊은 대회이었습니다.

 

50명의 인원이 참석한 부산 교구 (: 내용면에서는 대교구 역할까지도 하고 있는데 하여튼 아직은 대교구가 아니라고 합니다..^^)를 비롯하여 전국의 교구에서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신, 명실상부한 전국 규모의 대회이었음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체 사회를 맡으신 김종수 신부님 모습>

 

 

특히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이신 이병호 주교님께서 

 

1. 이 모임의 취지

2. 인간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3. 가톨릭 교회와 전례음악

4. 전례헌장 제 6장: 성음악

4-1. 성음악의 품위

4-2. 성음악의 성격

4-3. 전례음악의 표본으로서의 그레고리오 성가

4-4. 다성음악

4-5. 부르기 쉽고 단순한 성가: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하여

5.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지금

 

순서로 해 주신 기조 강론 말씀은 그 내용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이병호 주교님께서 바쁘신 중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어 전례음악 관련 성교회 문헌을 자세히 살펴 보신 후에 저희들을 위하여 일목요연하게 잘 요약해 주신 글이므로, 오늘 참석치 못한 전례음악 봉사자 및 기타 본당 봉사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전문을 담았습니다.

 

<기조 강론 말씀 중이신 이병호 주교님 (사진이 좀 흔들려서 죄송..^^)>

 

이병호 주교님께서 약 1시간 정도 기조 강론 말씀을 주신 다음에, 백남용 신부님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보는 전례와 성음악" 제목으로 주제 발표 말씀을 해 주셨으며, 곧 이어서 김건정 형제님께서 전례음악봉사자들을 대표하여 백신부님께 12개의 질문을 드리고 답변을 듣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 프로그램 끝.)

 

<백남용 신부님과 김건정 형제님의 모습들입니다.>

 

<열심히 경청 중이신 참석자 모습. 주: 모든 사진은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신부 기념홀 내부 모습입니다.>

 

중식시간을 12시 30분 - 1시 30분 동안 가진 후에, 곧 바로 7개 그룹으로 나누어 의견 교환 및 의견 개진하는 시간을 3시까지 가졌습니다.

 

각 그룹 별로 논의한 내용과 건의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파이프 오르간 독주 및 무반주 다성음악 연주가 있었으며, 그레고리오 성가 연습 후에 미사가 시작 되었는데,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면서 이번 대회 참가자 거의 모두가 참여한 하나된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오늘의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그룹별 토의안(담당 신부가 방향을 잡아주고 토의를 진행)
1) 성가대 운용에 대하여 - 김종헌 신부
2) 미사 때의 성가 - 박대종 신부
3) 성가곡 작곡 - 박원주 신부
4) 반주 - 최호영 신부
5) 교회 전통 음악 - 김한승 신부
6) 복음성가(생활성가) - 현정수 신부
7) 국악 성가 - 윤용선 신부

 

: 각 그룹별로 요약하여 건의한 내용들이 주교회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지가 되는대로 이 글 중에서 잘 읽어 보실 수 있도록 링크 설정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토론 제 1 그룹(성가대 운영) 후 대표자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2그룹(미사때의 성가)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3그룹(성가곡 작곡)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4그룹(반주)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5그룹(교회 전통 음악)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6그룹(복음성가(생활성가)) 토의내용 보고 모습>

 

<토론 제 7그룹(국악성가) 토의내용 보고 모습>

 

이번의 큰 대회를 성황리에 잘 치루어 내기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사제, 봉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문병석 형제님의 파이프 오르간 독주 모습>

 

<백남용 신부님께서 아끼시는 돔 스콜라 무반주 다성음악 미사곡 연주 모습 (지휘: 백남용신부)> 

 

이번 대회에 참석하신 분들 모두가 공감하였을 것입니다만, 전례음악 봉사자 모두에게 매우 유익하였던 이번의 대회가 앞으로도 해마다 개최되기를 바라는 마음 참으로 간절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이신 이병호 주교님께서 해 주신 기조 강연 말씀은, 사제, 수도자, 전례 봉사자, 전례음악 봉사자 등 가톨릭 성교회의 전례예식 거행을 직.간접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모든 분들께서 꼭 알고 계셔야 하는 성교회 문헌 중 전례음악에 관한 최소한도의 필수 내용 요약이므로, 교우님들 모두가 평소에도 잘 읽어 볼 수 있도록 국내 각 본당 홈페이지에 필히 올려야 하는 중요한 전례음악 교육자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준비해 주신 이병호 주교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국 각 본당의 주임 신부님, 보좌 신부님 및 수도자 (본당 파견 수녀님 포함)들께서도 특별히 이병호 주교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전례음악 교육자료를 잘 숙지하여 주시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의 대회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의 질도 매우 우수하였기에, 만에 하나라도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정 혹은 쓸데없는 오해 등 등으로 이번 대회에 참석치 못하였거나 않으신 분들께서 두고 두고 후회하시기에 충분하리 만큼 아주 좋은 대회이었습니다.

 

내년에도 틀림없이 개최가 될 것으로 생각되오니, 더 이상 후회 없도록 다들 꼭 참석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또 그렇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이번의 모임은, 일찌기 제가 경험하지 못하였던 거룩한 만남의 자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모두가 함께 봉헌한 그레고리오 미사는 이러한 확신을 한층 더 확실하게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이병호 주교님 집전 그레고리오 미사 봉헌 모습> 

 

이번 대회 참석 후에 몇 가지 느낀 점, 생각히는 점들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참석하신 430여명의 교우님들 중에 85 - 90% 가 자매님들이셨던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인터넷, 언론 매체 등을 통한 홍보가 부족하였던지, 대회 당일이 토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형제님들의 참여가 저조하였던 점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지방에서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 주신 데에 비하여, 수도권 지역 본당에서의 참석은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3. 부산 교구의 경우 각 그룹별 토의시에 발제를 해 주시는 등 이번 대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사전에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 주신 참으로 좋았던 모습이었습니다. 6월 4일자 게시글에서 준비를 좀 해주실 것을 부탁을 드렸었습니다만 [참고: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gospelbbs/-/a/6264/ ] 부산가톨릭음악인협회측에서는 6월 12일에 이번 대회 참가자 모집공고를 내었고 발제내용 준비 등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였더군요. [참고: http://bcmusic.or.kr/notice/view.php?gubun=main&gubun2=news&skin=&uid=4881&mode=read&page=1&keyfield=&key=
] 이러한 모습은 틀림없이 주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좋았을 것임을 확신하며, (새벽 5시에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대절하여 먼 길을 마다 않고 참석하신 부산 교구 성음악 감독이신 윤용선 신부님 이하 50분의 교우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행동으로써 이렇게 모범을 보여 주시는 윤용선 신부님의 지도력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도 저희들을 잘 이끌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4. 이번 대회의 전체 사회를 맡아서 수고해 주신 김종수 신부님께 또한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1박 2일 정도가 요구되는 이번의 큰 대회를 하루 만에 다 치루어 내기 위하여 다들 시간에 쫓기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바쁜 일정진행 중에서도 특별히 각 그룹별 평신자 대표들께서 오늘의 토의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때에 발표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어 더없이 좋았습니다. 전례음악봉사자들이 평소에 가슴에 품고 있었던 염원을 요약하여 발표하는 자리이었기에, 이번 대회에 참석한 평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충분한 발표 시간을 할애해 주시는 거룩하시고 인자하신 천주께 또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소속 사제 및 성음악 전공 사제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개인적인 내용 추가:

어제의 오후 프로그램 중 그룹 토의 시에 저는 국악성가에 참여하였습니다만, 20년도 더 된 옛날에 한문 공부를 함께한 오래된 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째 예날에 많이 들었던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가만히 살펴 보니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과거에 하신 말씀들 중에서 몇 개의 코드를 정하고 토의 중에 주신 말씀과 일치여부를 살펴 보니, 틀림없는 그분이셨습니다. (저보다 한 살 더 많으신) 정영희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81년 봄 - 1983년 겨울 동안,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 뒷 동네에 위치한 순전히 옛날식 한문 서당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문집인 여유당 전서 중 주역사전을 매 주 토요일 - 일요일 하루에 3시간 반 정도를 들여 공부하였던 시절인데, 이공계 출신인 저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기 위하여 (어렵다고 알려진) 주역 (즉, 역경) 한문 공부에 참여하였으나, (당시에 모 대학교 교수님 한 분도 잠깐 동안 한문 공부에 참여하셨습니다만) 대다수의 학동들은 동양철학, 동양문학, 동양사학, 국악 등의 분야의 석사 혹은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었으며, 한의학 전공, 즉 한의사 등 등의 분들과 함께 공부를 하였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이니, 아무리 문외한門外漢 이라 하더라도 한 3년 정도 들여다 보면 뭘 좀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일전에 강수근 신부님께서 주신 글에 답변글을 드리면서도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함께 공부한 분들 중에 과반수 이상이 현재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또 그 당시에, 국악을 제대로 깊이있게 공부하려면 동양철학의 음양 오행 중에 음양을 다루는 주역 (즉, 역경)은 반드시 공부하여야 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분들 중에 국악을 전공할 분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단 한마디입니다..^^ 

 

귀국 후에 당시에 함께 공부한 분들의 소식을 알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도 하였으나, 그 동안 소식을 몰랐던 정영희 교수님을 어제 그 장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20여년 전 당시에 잘나가던(?) 저에게 후배 중에 괜찮은 분을 소개시켜 준다면서 이화여대에서 국악연주홀 건물을  완공한 후에 가진 제 1회 국악연주회에 저를 초대하셨기에, 지금까지도 그 날 들었던 "영산회상" 곡이 참 좋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세월은 무심히 흘러 이제 벌써 이미 20년 이전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오늘 저녁에 장시간 전화 통화를 하였는데, 한 다리 정도 인간관계를 건너 뛰니 이리 저리 왕창 다 걸리더군요..^^]

 

사실, 어제의 7개 토론 그룹 중에 어디에 참석할까를 두고 고민하다 국악성가 그룹을 택하였던 것인데, 참으로 좋은 만남을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 기쁜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상, 사족 끝..^^) 

 

Part B.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님께서 해 주신 기조 강연말씀 전문 중 전반부 내용입니다.

 

참고: 혹시 이번의 대회 진행을 동영상 촬영 혹은 음성 녹음을 하신 교우님께서는 동영상 파일 혹은 음성파일을 굿뉴스 자료실에 첨부파일로 올려 주시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굿뉴스 서버에 대용량 자료 올리는 장소로 찾아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굿뉴스 초기화면 > 굿뉴스 자료실 ( http://pds.catholic.or.kr/ ) > 좌측 메뉴에서, 가톨릭 동영상 > 교구/교구단체   

 

(주: 올릴 동영상 자료의 사이즈가 클 경우에는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요. 잘 올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이글의 적당한 장소에 링크를 하여, 모두가 손쉽게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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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한국 천주교회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

 

I. 이 모임의 취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의 정신에 따라, 세계의 다른 교회에서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도 전례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고, 그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전례음악, 더 나아가 교회음악 일반에 관해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그런데 이런 시도들은 흔히 개인이나 소수의 동호회 수준에서 이루어졌고, 공동작업이라는 면에서 좀 나은 경우가 있다면 수도회 혹은 교구별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하는 사실에는 장단점이 함께 있었는데, 장점이라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제약 없이 창의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수의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에서는 노래 말이나 음악적 완성도에서 적절치 않은 것들까지 여과 없이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들 노래 가운데에는 전례에서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전례 음악을 위해서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정확한 방향을 찾아나가기 위해서 우선 모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들이 오래 전부터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로서는 전례음악을 포함한 교회의 성가 내지 음악 전반에 관한한 문제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몇 번의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주장이 대단히 다양해서 이를 어떻게 추스리고 발전적으로 다루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걸려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 6월 19(토)에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전례음악 전문가들의 모임을 가졌고, 거기에서 진지한 논의 끝에,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첫 단계로 이런 자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의 이 모임이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전례음악에 관련된 주요 사안들을 다루고 좋은 방향을 모색해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뜻에서, 새삼스런 느낌이 없지 않지만, 도대체 인간에게 음악이란 무엇이며, 교회음악 특히 전례음악은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전례음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교회의 전통적 입장은 어떤 것이며, 나아가 이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와 자세가 어떤 것인지 등에 관해서 극히 개괄적이고 단편적으로나마 이 기회에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II. 인간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오늘날에는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들이 극도로 세분화하고 전문화해서 해당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무어가 무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그 상대적 중요성을 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기 이전, 그러니까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으로 돌아가서 보면, 사물의 실체가 훨씬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인류의 정신 문화에서 주요 원천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은 큰 참고가 되겠다. 그 사람들에 의하면, 음악은 무엇보다도 질서와 조화를 뜻하는데, 그것을 다시 나누면, 우주적 음악, 인간적 음악, 도구적 음악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가 뜨고 지며 사계절이 변하고 달과 별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들은 음악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 우주의 축소판으로서의 인간의 몸에 그 질서와 조화가 구현될 때 그것을 인간적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의 목청이나 다른 악기의 소리를 통해 그 질서와 조화가 드러날 때 그것을 도구적 음악이라고 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생각에 바탕해서 인간 교육은 사람의 몸에 질서와 조화를 증진시키는 체육, 그 마음에 같은 질서와 조화를 증진시키는 음악, 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고대 중국 사람들에게도 음악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두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예禮와 악樂이 그것이었다. 이들에게도 그리스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이 있어서, 악은 사람의 내면을 조화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예는 그 외면을그렇게 한다고 보았다. (禮也者, 動於內者. 禮也者, 動於外者: 樂記 / 참고 趙衰曰, 詩書義之府也, 禮也德之則也)

 

이렇게 볼 때,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옛 사람들은 음악이 인간형성, 특히 그 내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 세계에 까지 깊이 파고드는 종교 일반과 유다 그리스드교, 특히 "전례를 통해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삶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전례헌장 2)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음악이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III. 가톨릭 교회와 전례음악

 

과연 가톨릭 교회는 그 첫 출발점에서부터 음악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었다. 물론 교회가 태동하면서부터 시작된 박해기를 통과하는 동안에는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 사노라고 유다교에서 물려 받은 음악 전통조차 드러내놓고 생활화하지 못했지만, 교회가 공인되면서부터 전례음악은 서서히 꼴을 잡아가고 역사를 통해 여러 가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정확한 노선을 찾아 나갔다. 수많은 공의회 문서들과 교황 문서들이 이를 증언하는데, 특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은 앞에 나왔던 모는 관계 문헌들의 종합이면서 이번 공의회의 교회관과 사목적 관심의 초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전례헌장은 시간적으로도 가장 먼저 가결된 (1962.1.30) 문헌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그 사목적 중요성 때문에 지난 공의회 16개 문헌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례헌장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이 전례 거행에 충만하게 참여하고, 알면서 참여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14항)는 정책이다. 전례헌장은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항들이다.

 

11항. 그러므로 사목자들은 전례 거행이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일 뿐 아니라, 신자들이 잘 알고scienter, 능동적으로actuose, 또 효력을 얻는 방식으로fructuous,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14항. 전례를 쇄신하고 증진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 전체가 온전히 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Quae totius populi plena et actuosa participatio, in instauranda et fovenda sacra Liturgia, summopere est attendenda.

 

19항. 영혼의 목자들은 신자들의 전례 교육에 힘쓰고, 그들의 연령, 신분, 생활방식, 종교적 교양 정도에 따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actuosa fidelium participatio, interna et externa해야 한다.

 

이처럼, 전례헌장은 제 1장 II 절 전체를 전례교육과 능동적 참여의 촉진이라는 과제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회중 전체의 능동적 참여가 개혁되는 전례 안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말에서는 <참석>이라는 말과 <참여>라는 말이 큰 차이 없이 쓰여지는 경우가 많아서, 전례헌장의 정신이 잘 부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있다. 그런데 이 헌장에서 <참여>라는 말과 그것을 수식하는 <잘 알고> <온전히> <충만히> <능동적으로> <안팍으로> <효력을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등의 표현들을 모두 고려하면, 신자들 가운데 전례를 눈으로 구경하고 귀로 듣는 정도에 그치고 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된다는 교회의 의지가 더 할 수 없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례헌장의 이 기본 정신을 깔고서만, 전례음악에 관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IV. 전례헌장 제 6장: 성음악  *  전례음악=+=성음악

 

우리는 먼저, 이런 정신을 깔고 있는 전례헌장이 제 6장 전체를 성음악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성음악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관심을 재천명함은 물론, 나아가 공의회가 도입하고자 한 신앙생활의 일대 쇄신을 위해 성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전례헌장을 잘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이 문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6년 3월 5일에 경신성에서 나온 <성음악에 대한 지침>도 잘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에 나온 교황 문헌으로는 성 비오 10세의 자의교서 <Tra le Sollecitudini - 목자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1903>, 비오 12세의 회칙 <Musica Sacrae Disciplina - 성음악의 규준, 1955> 등이 특히 중요하다.

 

[

게시자 주: 일전에 제가 이곳에 올렸던 게시글들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아래의 자료들 중에 한글 번역문에는 오역된 부분들이 더러 있으므로, 반드시 영문 문헌과 함께 비교하면서 읽으셔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성음악에 대한 지침", 즉 "성음악 훈령" 인터넷 주소입니다.

http://www.adoremus.org/MusSac.html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nzkcc.com/munhun/munhun_data/hunryung.htm (한글) (클릭하세요)

 

다음은 "자의교서" 인터넷 주소입니다.

http://www.adoremus.org/1203PiusX.html target=_blank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adoremus.org/MotuProprio.html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vatican.va/holy_father/pius_x/motu_proprio/documents/hf_p-x_motu-proprio_19031122_sollecitudini_it.html (이탈리아어) (클릭하세요)

 

다음은 "성음악 규준" 인터넷 주소입니다.

http://www.adoremus.org/MusicaeSacrae1955.html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vatican.va/holy_father/pius_xii/encyclicals/documents/hf_p-xii_enc_25121955_musicae-sacrae_en.html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cbck.or.kr/pds/vatican/pope/PIUS12/MUSICAE/MUSICAE.htm (한글) (클릭하세요)

 

다음은 전례헌장 인터넷 주소입니다.

http://www.adoremus.org/SacrosanctumConcilium.html (영문) (클릭하세요)

http://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const_19631204_sacrosanctum-concilium_en.html

 http://www.cbck.or.kr/pds/council/02sacrosanctum.htm (한글)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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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례헌장 제 6장을 중심으로 공의회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제 6장 맨 처음 항인 112항은 제 6장 전체의 기본 정신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를 깊이 새겨야 한다.

 

1. 성음악의 품위

 

112. 보편교회의 음악전통은 다른 모든 예술적 표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화를 이룬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가가 말씀과 하나로 묶여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서와 교부들과 교황들은 한결같이 성가를 찬양하였고, 이 가운데에서도 교황들은 비오 10세 이후 근대에 와서 경신행위에서 성가가 수행하는 봉사적 기능을 한층 더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음악이 전례행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거룩한 음악이 된다>. 그렇게 해서 성음악은 기도를 더욱 감미롭게 만들어주거나, 회중의 일치를 증진시키거나, 또는 거룩한 예식을 더욱 장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참된 예술이면 형식을 가리지 않고 어느 것이나 인정하며, 그것이 소정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때에는 경신행위에 수용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공의회는 교회의 전통과 규율이 요구하는 기준과 방침을 지키고,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는 바이다.

 

2. 성음악의 성격

 

전례헌장은 여기에서 교회의 모든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성음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비오 12세는 성음악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성음악의 품위와 그 높은 목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곧, 성음악은 그 아름다운 선율과 장엄성에 의해 희생을 바치는 사제의 소리뿐 아니라 전능하신 분을 찬미하는 신자들의 소리도 아름답게 하고 높이는 것이다. 성음악은 그 약동하는 움직임과 음악 고유의 힘에 의해 신자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높이는 것이다. 성음악은 신자 일동의 전례의 기도를 더욱 생기 있고 열기 있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대해 신자 모두가 더욱 힘차게, 더욱 열심히, 더욱 효과적으로 찬미와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성음악에 의해 교회는 주 그리스도와 일치해 하느님의 영광을 더한층 높일수 있는 것이다." (비오 12세 회칙 Musica Sacrae Disciplina, n.28-29.)

 

여기서 말하는 음악이란 노래를 의미하는데, 음악이 전례 안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과 뗄 수 없이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오 10세에 의하면 "노래의 주된 역할은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전례문에 합당한 선율을 붙이는 것이다." (자의교서 1항)

 

여기서 봉사적 기능이라는 전례성가의 특수성과 역할이 분명해진다. 하느님 말씀과 뗄수 없이 맺어져 있는 전례음악의 이 봉사적 기능 때문에 트랜트 공의회에서는 성음악에 세속적인 요구가 들어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1917년 교회법 1264조 1 참조.)

1643년 우르바누스 8세 시대에 경신성은 음악이 전례에서 점점 독립하려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마사에 봉사하는 것이지, 미사가 음악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성 비오 10세는 "음악은 전례의 겸손한 종umile ancilla"이라고 말했다.

 

전례음악 혹은 전례성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과 그에 대한 응답 등, 노래 말이며 그것이 정확히 전달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음악적 기교가 너무 현란하거나 노래하기가 어려워서 그 내용을 오히려 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내면적이며 정신적인 것으로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위대하고 강력한 말씀이고 우리가 쓰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장엄하게 외워야 할 것이고 노래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하느님 말씀은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느님 교회 안에서 전해져야 하고 신자 모두의 찬미로써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노래는 교회의 생활과 신자모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J.A. Jungmann, "Musique Sacree et Reforme Liturgique", in Le chant liturgique apress Vatican II, Paris 1966, pp. 19-20.)

 

아우구스티노 성인(354-430)의 말은 의미가 있다. "나는 한번 잃었던 신앙을 막 회복했을 무렵 교회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선율보다도 노래에 붙어 있는 말씀을 듣고 감동한다. 그와 같은 말씀을 맑은 목소리로 알맞게 선율을 붙여 노래하면 나는 교회의 노래가 얼마나 유용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고백록 X, 33).

 

11세기 이래 많은 교황들은 제멋대로 만들어진 노래를 막아내는 데 힘썼다. 트랜트 공의회 종료 1년 후 비오 4세(1559-1565)는 1564년의 자의교서로써 한 위원회를 설립했는데, 그 목적은 전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만들어진 노래, 전례와 관계없는 말이 섞여 들어간 미사곡이나 가사곡을 모두 금지하려는 것이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는 음악가들이 자기 작품을 느끼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 성서의 말씀을 너무나 쉽게 바꾸었으므로 "그것은 이미 성서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를 이용한 음악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였다.

 

3. 전례음악의 표본으로서의 그레고리오 성가

 

그래서 잘못된 경향을 피하고 이상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례음악으로서 전례헌장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꼽는다.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식하고, 따라서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전례 행위 안에서 첫째 자리를 부여한다."

 

비오 12세는 회칙 <Musica Sacrae Disciplina>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우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교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성가가 뛰어난 것은 그 거룩함 때문이다. 전례문과 그것에 붙여준 선율이 꼭 일치하므로 이 노래는 전례문과 완전히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전례문이 갖고 있는 힘과 효력을 표현한다.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 안에 부드럽게 들어간다. 그 음악적인 형식은 단순하고 알기 쉬우나 이야말로 숭고하고 성스러운 음악이다" (41항).

 

그레고리오 성가를 성음악의 모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그레고리오 성가는 성서의 말씀, 곧 시편이나 예언서나 복음서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서 나온다. 즉, 이런 말씀을 대함으로써 생간 종교적 감정이 표현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마음의 움직임과 은총의 역사에 의해 생긴 음악이고 단순히 가사에 아름다운 선율를 붙인 것이 아니다.

 

2) 다음으로, 가사에 억양을 붙여서 낭독하면, 거기에서 말씀이 요구하는 리듬이 흘러 나온다. 작곡가는 이를 존중해서 곡을 만들어간다. 가사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곡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3) 거의 같은 말이 되겠지만, 작곡가는 말씀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고 이에 억양을 붙여 낭독한 다음에 그것을 기초로 해서 곡을 붙인다. 따라서 공동체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그것은 이미 작곡자의 정신 속에서 진행되었던 기도를 반복하는 셈이 된다.

 

4)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는 민족이나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인간이면> (침고: II. 인간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리듬, 생리적 및 인종적 리듬을 표현하는 것 같다. 여기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성이 있다. 실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음악, 언어, 선율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인간 자체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Jean Jeanneteau, 그레고리오 성가의 현대적 가치).

 

그렇다고 해서 그레고리오 성가만이 교회의 유일한 전례음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성가가 말 그대로 모범이요 표준이라는 사실은 다른 형식의 성가를 만들 때에도 여기서 언급된 절차와 특성만은 잘 고려함으로써, 교회의 유구한 전통을 배경으로 해서 새로운 것이 나올 때, 그것이 건강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4. 다성 음악

 

그레고리오 성가와는 어떤 의미에서 대조되는 다성 음악이나 기타 종류의 음악에 대해서 공의회는 그것을 배제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다른 종류의 성음악, 특히 다성 음악도, 제 30항의 규범에 따라, 전례 행위의 정신에 부합한다면, 거룩한 예식의 거행에서 결코 배제되지 않는다"(116항).

 

다성 음악에 대해서 성 비오 10세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적인 다성 음악은 모든 성음악의 모범인 그레고리오 성가에 매우 가깝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고전적인 다성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더불어 교회의 가장 장엄한 예식, 예컨대 교황좌 성당의 의식에서 사용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의교서 4항). 비오 12세도 다성 음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성 음악이 전례 음악으로서의 요구를 채운다면 전례 의식을 장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특히 신자들의 마음에 수수한 감정을 낳게 할 것이다" (Musica Sacrae Disciplina, 52).

 

그러나 동시에 매우 의미 깊은 주의도 주고 있다. "교회 안에서 다성부에 의한 노래, 특히 길고 복잡한 형식의 노래를 들여 놓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노래는 지루하기 때문에 전례문의 의미를 애매하게 하거나 전례 의식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혹은 전례 의식을 손상시키고 나아가 노래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헛되게 해 버린다 (Ibid., 55).

 

전례와 음악은 어떤 점에서는 본질상 서로 긴장 내지 충돌할 수 있는 경향이 있다. Erhard Quack은 <성가대의 역할과 다성음악의 사용>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례의 역사와 성음악의 역사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목적 원리와 미학적 원리 사이에 끊임없는 긴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긴장 때문에 성음악은 자주 전례에서 이탈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곧 예술이 전례를, 말하자면, 질식시키는 일이 생겼다.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항상 내재적인 것, 정신적인 것으로 하려고 하는데, 이 내재적 가치는 인간성 때문에 언제나 그 품위를 잃는 경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예술 작품의 창조는 점차로 외적인 것, 외부적 풍요성을 향해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기술이 어느 정도의 한계에 달하면 작품은 본래의 의도에서 멀어져 너무나도 감각적인 것이 되고 기교에 빠져 버리는 일이 있다. 따라서 전례의 쇄신 특히 성음악을 쇄신하려는 우리는 여기서 다성 음악의 기본적 지위와 의의가 무엇인가, 또는 전례 안에서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

노래의 길이, 형식 및 그것을 신자들과 어떻게 나누어 부르는가 하는 것은 전례의 규칙에 따라 정해져 있고, 이 규칙의 위반은 일체 허락되지 않는다" (pp. 213-215).

 

5. 부르기 쉽고 단순한 성가: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하여

 

살펴 본 대로, 성가는 무엇보다도 기도이며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곡이 단순해야 한다는 요청이 대단히 현실적이다.  "고대 신자들은 노래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는 노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당연히 신자들도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신자들이 노래할 경우 아무래도 어느 정도 단순한 노래여야 했기에 신자들이 부를 노래만을 위해 단순화시켰다. 노래는 일부러 단순하게 만들었다. 즉 노래는 모두 <하나의 소리una voce> 처럼 노래한다는 이상 때문에 단순화하였다. 모두가 마치 하나의 입, 하나의 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일치해서 노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실제로 성 아타나시우스도 강조하고 있듯이 이와 같이 기도하고 노래한다면 그로써 신자들은 한 마음, 한 영혼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고 이와 같은 기도나 노래는 하느님께서 더욱 기쁘게 받아들이신다. 그와 동시에 교회의 교부들이 자주 반복해서 말했듯이, 마음을 하나로 하여 소리를 내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그리스도적 사랑을 육성하는 것이 된다" (Jungmann, 앞의 책 pp. 21-22).

 

그런데 다성음악이나 어려운 노래가 압도해 버리면, 신자 대중은 침묵을 강요당하는 결과가 되고 마는 일이 발생한다. 전례 음악을 예술적으로 세련시키는 쪽으로 관심이 다 쏠려 버리고 말면 신자들은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성음악을 예술적으로 세련시키려는 요구 때문에 팔레스트리나(1524-1594)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음악이 만들어졌으나, 도리어 그 때문에 일반 신자는 노래부를 수 없게 되었다" (Jungmann, 같은 책 pp.24-26 참조). 다성 음악의 가치와 유용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신자들이 전례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는 이상이 이 때문에 흐려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

 

V.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지금

 

앞으로 우리는 전례헌장의 다른 조항들도 면밀히 검토해가면서, 우선 전례음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그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이 회를 거듭해 가면서 한국 교회의 전례 음악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점점 풍요해져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큰 활력을 불어넣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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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이병호 주교님께서 주신 기조 강론 말씀 전문이었습니다. 글로 쓰여진 위의 내용 이외에, 말씀으로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만, 이병호 주교님께서 주신 말씀들 중에서, "신앙고백 등의 신앙적인 이유로 천주께 기도하는 자세와 마음으로 작곡된 곡들만이 우리들의 창자(즉, 심금)을 울리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특히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저 개인적으로도 이미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그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백남용신부님께서 주신 주제 말씀 전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김건정 형제님의 "전례와 성음악에 대한 약정 토론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약정토론문에 대한 답변 요지<백남용신부>를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대회 당일 오후에 가졌던 각 그룹별 토의의 결과로 발표된 건의 내용 요약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단, 이들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접수되고 공지된 것은 아니므로, 아직은 잠정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대회 당일 참석하신 분들의 교구별 분포 등의 기초자료(잠정집계)를 접할 수 있습니다.

 

 

(위의 자료 제공자: 김건정 형제님)

참고 1: 위의 주소를 클릭하신 후에 "전례음악 까페"에 가입하셔야 읽으실 수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 2: 오늘 (6월 29일) 전해 들었습니다만, 일정 관계상 오는 2005년 7월 18 - 21일 이후에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공식 발표문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부산가톨릭 음악 게시판에 올려진 글 및 사진(게시자: 윤용선신부)을 읽고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 몇 시간에 걸쳐 입력 시켰습니다만, 혹시 여전히 오타가 남아 있으면 모두 저의 것이오니 이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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