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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 대왕의 가계도 외.. [성경공부_참고자료] [탄생축일들]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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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7 ㅣ No.797

 
+ 찬미 예수님
 
 
헤로데 대왕이 세운 헤로데 왕조의 가계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이 신약 성경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는 데에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을 읽으면서, 어느 헤로데가 누구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대단히 헷갈리게 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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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14,3-12에 기록된,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영주(헤로데 안티아파스)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살해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마르 6,17-29)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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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일: 2010년 12월 12일]
 
게시자 주: 강생하신 성자이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오 복음서 11,12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당시에, 위에 기록된 극도의 폭력이 발생할 것임을 사전에 이미 알고 계셨다는 생각입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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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의 가해 대림 제3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11,2-11) 해설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오 11,2)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마태오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까지 세례자 요한이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을 미루고 있다(마태오 14,3-12을 보라).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가 그의 여조카(다른 이복형제의 딸)로서 그의 이복형제인 헤로데 필립포스(Herod Philip)와 이혼한 전처 헤로디아(Herodias)와 간음에 해당하는 근친혼을 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레위기 18,16; 20,21에 의하면 이들의 결합은 금지되어 있었다(다음의 헤로데 대왕의 가계도를 참고하라). 요세푸스의 Antiquities of the Jews(18.5.2 §119)에 의하면, 사해 동쪽 중앙 해변 근처의 황량한 모압(Moab) 언덕에 위치하는 헤로데 대왕에 의하여 건설된 마케루스(Machaerus) 요새에 [세례자 요한이 갇혀 있던] 감옥이 있었다.
 
이상, 위의 졸저서에서 발췌 인용 끝.
 
주 1:
위의 [ ] 안의 내용은 다음의 마태오 복음서 14,3-4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11,3-4)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피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 2:
다음을 클릭하시면, 저의 졸저서들에서 인용되고 있는 헤로데 대왕의 가계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가계도에 의하면, 헤로데 대왕은 적어도 5명의 부인을 가졌으며,
이들과의 사이에서
 
Antipater,  Aristobulus,  Alexander,  Archelaus, Herod AntipasHerod(Philip), Philipp
 
이렇게 적어도 7명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위의 가계도에서, 헤로데 대왕 아래의 인명들 중에서 괄호 안에 killed라고 쓰여진 사람들은 헤로데 왕이 죽인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의심이 많은 자로서, 자신의 부인들뿐만이 아니라 이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도 죽이는 자였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죽기 바로 얼마 전에까지!
 
위의 가계도에서, 비스듬히 오른 쪽 위를 향한 점선들은 조카가 삼촌(자신의 아버지와 배다른 이복 형제들 포함)과 결혼한 것들을 나타냅니다.
 
Aristobulus의 자녀들 중의 한 명이 문제의 여인인 Herodias인데,
이 여인은 그녀의 아버지의 이복 형제인 Herod(Philip)와 첫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이혼을 하였으며,
이 이혼한 여인의 아버지(Aristobulus)의 또다른 이복 형제인 Herod Antipas와 이 이혼한 여인(Herodias)이 다시 결혼을 한 것을 두고서,
세례자 요한이 [모세 율법에 따라 (레위기 18,16; 20,21)]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였던 것입니다.
 
2.
지금 출판을 서두르고 있는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의 가해 연중 제29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22,15-21) 해설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헤로데 대왕의 기민한 정치적 처세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고
또 더 나아가, 헤로데 대왕의 가계보가 왜 매우 복잡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다 싶어, 발췌 인용하였습니다:
 
(마태오 22,16) 그러고는 저희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헤로데 당원들은 그 당시에 갈릴래아 지역의 영주(tetarch)인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에 의하여 대변되었던 헤로데 왕조(Herodian dynasty)의 지지자들이다. 헤로데 왕조의 일어남(Herodian fortunes)은 로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에 근거하고 있었는데, 헤로데 대왕(Herod the Great, 기원전 73년-기원전 4년)은, 로마의 장군이며 정치가인 율리우스 케사르(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의 죽음에 따라 이어졌던 시민전쟁(civil wars)들 기간에 매우 훌륭한 정치적인 기민함으로써, 이것을 증명하였다. 즉 이 기간 중에 헤로데는 로마 원로원(Roman Senate)으로부터 유다인의 왕(King of the Jews)으로 선택되었으며, 드디어 로마 군대의 힘을 빌려, 비록 다윗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나 그동안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유다인들의 독립된 왕조로서 마카베오 왕조(Maccabean dynasty, 기원전 167년-기원전 134년)의 명맥을 이어가던 하스모니우스 왕조(Hasmonean dynasty, 기원전 135년-기원전 36년)를 헤로데가 완전히 멸망시켰다. 헤로데가 유다인 출신이 아님을 상기하라. 이 구절에서 로마의 지지를 받고 있는 헤로데 왕조의 지지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매우 흥미로운 연합을 구상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님을 끌어 내리기 위한 동기에 의하여 일치를 이룬 것이었다.
 
이상, 위의 졸저서에서 발췌 인용 끝.
 
주 3:
위의 헤로데 대왕의 가계도가 복잡한 이유를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다음을 클릭하여 헤로데 왕조가 일어나기 이전의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왕족들을 대충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헤로데 대왕의 가계도에 의하면, 헤로데 대왕의 다섯 부인들 중에 한 명인 Mariamne는 Hyrcanus 2세의 손녀인데,
 
위의 역사 역대표에 의하면, 이 Hyrcanus 2세는 헤로데 대왕이 멸망시킨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유다인이 아닌 헤로데 대왕은 이 왕(Hyrcanus 2세)의 손녀(Mariamne) 및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왕족으로 역시 Mariamne이름을 가진 여인[즉, Herod (Philip)의 어머니로서 하스모이우스 왕조의 Simon(HP) 왕의 손녀인 여인]을 자신의 부인들로 들여 앉힘으로써, 자신의 왕권이 (유다인 왕조인)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왕권을 완전하게 이어받았음을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였고,
 
마찬가지로,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Herod Antipas는 이 손녀(Mariamne)의 손녀인, 문제의 여인인, Herodias와 심지어 모세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불법적인  결혼을 함으로써, 그 자신 또한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왕권을 이어받고 있음을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 4:
다른 한편으로,  이 손녀(Mariamne)의 아들인 Aristobulus의 아들인, Agrippa I와 그의 아들인 Agrippa II에 의하여 실제로 헤로데 왕조가 이어져 내려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헤로데 왕조의 마지막까지, 헤로데 대왕이 멸망시킨 유다인 왕조인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피가 사실은 계속 헤로데 왕조 내부에 흐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이 손녀(Mariamne)의 두 아들(Aristobulus, Alexander)들의 이름이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마지막 시절의 왕족들의 이름과 같은데, 헤로데 대왕은 결국에 이들 모자들이 혹시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모반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였던지, 하여튼 자신이 죽기 약 3년 전에 이들 모두를 먼저 죽여 버렸음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헤로데 대왕에 대한 다음의 자료에서는, 심지어 헤로데 대왕이 죽기 6일 전에 이들을 죽여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주장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 망서려집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헤로데 대왕이 집권 말기에 이들의 모반을 의심하여 이들을 다 죽여버린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3.
다음은, 헤로데 대왕의 아버지인 안티파테르(Antipater)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지금 출판을 서두르고 있는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 중의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전야" 복음 말씀(루카 1,5-17) 해설에서 발췌 인용한 것입니다.
 
(루카 1,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이 왕은 에돔 사람(Idumean, Edomite)인 안티파테르 2세의 아들, 헤로데 대왕일 것이다. 에돔 지역(Idumaea)은 하스모니우스 왕조의(Hasmonean) 지배자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 (기원전 135-105년)에 의하여 정복되었는데, 그는 에돔인들이 유다주의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였다. 에돔 지역은 하스모니우스 왕조, 헤로데, 그리고 로마 군대에 의하여 유다 지역(Judea)과 단일체로 다루어졌다. 헤로데는 기원전 37년부터 4년까지 왕으로서 다스렸다.
 
이상, 위의 졸저서에서 발췌 인용 끝.
 
주 5:
참고를 한 다른 자료(Who's who in the bible)에 의하면, 헤로데 대왕의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rter)는 하스모니우스 왕조의 Hyrcanus II의 재위 시절에 고위직 관료로서 세련된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둘 있었는데 이들 중의 한 명이 헤로데 대왕이라고 합니다.
 
4.
다음은, 지금 출판을 서두르고 있는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복음 말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마태오 16,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카이사리아 필리피(Caesarea Philippi) 지역은 갈릴래아 호수(Sea of Galilee) 20마일 조금 더 위의 북쪽으로 요르단 강의 원류(headwaters) 근처이다. 이 도시는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의 이복형제인 영주(tetrarch) 필립포스(Philipp)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전적으로 이방인 공동체이었다. 필립포스는 파니아스(Paneas, Banian)라는 마을을 재건하고 로마 황제를 기념하여 ‘카이사리아’라고 명명하였는데,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사마리아 지역의 한 항구 도시와 구분하기 위하여 ‘필리포스의(of Philipp)’라는 뜻의 ‘필리피’가 덧붙여졌다. 이 도시는 또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신(牧神)의 숭배(cult of Pan)의 중심지, 즉 염소의 뿔과 다리를 가진 음악을 좋아하는 숲·목양(牧羊)의 신의 숭배의 중심지였다. 가나안 지역의 ‘수자원’을 공급하는 요르단 강의 원류인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역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써 사람인 사도 베드로 위에 당신의 교회, 즉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를 세울 것임을 약속하심에 주목하자(아래의 제18-1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바로 이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위의 졸저서에서 발췌 인용 끝.
 
주 6:
위의 헤로데 대왕 가계도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신의 생일선물로 쟁반에 담아 달라고, 자신의 아버지의 이복형제로서 나중에 자신의 의붓 아버지가 된, Herod Antipas에게 요청한 살로메(Salome)는,  문제의 여인인, HerodiasHerod(Philip) 사이에 태어났으며,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의 이복형제인 필립포스(Philipp) 영주와 결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43년경에, 성 요한 사도의 형인, 사도인 큰 야고보를 칼로 쳐 죽게하고 그리고 성 베드로(St. Peter)를 죽일 의도로 감옥에 가둔 것은 바로 아그리파 1세(Herod Agrippa I)였습니다(사도행전 12,1-5).
 
이상, 헤로데 대왕 가계도 관련한 보충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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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은 헤로데 대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만, 아래의 게시글에서 언뜻 언급이 되었기에 간단하게 알려드립니다:
 
1969년 이후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 상, 단 세 분의 출생일만이 축일로 제정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1. 성모 마리아 탄생 축일: 매년 9월 8일
(단, 우리나라에서 이 날은 의무 축일이 아니며, 대부분의 다른 나라의 지역 교회들에서 이 날은 의무축일이 아닌 것으로 보임)
 
5-2.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매년 6월 24일
(참고: 이 날은 또한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 기념 미사일이기도 합니다.)
 
5-3. 예수 그리스도 탄생 대축일: 매년 12월 25일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12월 27일]

5-4.
이들 탄생 축일들과 관련하여서,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2001년 12월 17일자 교황청 경신성사성 문헌의 우리말 번역본인, "대중 신심과 전례에 대한 지도서" 제224-225항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제225항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ck/directory_on_popular_piety&liturgy_k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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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성 요한 세례자

224.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성 요한 세례자는 구약과 신약에 걸쳐 있다. 그의 부모는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루가 1,6) 사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성 요한 세례자는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구세주를 알아보았고(루가 1,39-45 참조), 그의 탄생에는 놀라운 기적이 따랐으며(루가 1,57-66 참조), 광야로 들어가 금욕과 참회의 삶을 살았다(루가 1,80; 마태 3,4 참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루가 1,76)인 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으며(루가 3,2 참조), “그는 요르단 강 부근의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루가 3,3). 그는 새로운 엘리야처럼 겸손하면서도 강력하게, 그의 백성들이 주님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켰으며(루가 1,17 참조),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요르단 강에서 구세주에게 세례를 주었다(마태 3,13-16 참조). 그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29), “하느님의 아드님”(요한 1,34), 새로운 메시아 공동체의 신랑(요한 3,28-30 참조)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성 요한 세례자가 영웅적으로 진실을 증언하였기 때문에, 헤로데는 그를 옥에 가두고 목을 베었다(마르 6,14-29 참조). 이로써 그는 그의 비범한 출생과 예언자적 선포에서 그러했듯이,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전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가 7,28)라는 영광스러운 말씀으로 그를 칭찬하셨다.

225. 성 요한 세례자 공경은 고대부터 그리스도교 교회에 있어 왔으며, 아주 초기부터 대중적인 형태와 의미를 지녔다. 우리는 성 요한 세례자의 죽음(8월 29일)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과 함께 그의 탄생(6월 24일)도 경축한다.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많은 세례대들이 요한에게 봉헌되었으며, ‘세례자’ 요한의 그림이나 상을 여러 세례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감내한 가혹한 옥살이와 죽음 때문에, 요한은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이나 신앙을 증언하다가 옥에 갇힌 이들의 수호 성인이다.

아마도, 요한 세례자가 태어난 날(6월 24일)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12월 25일)과 관련하여 정해졌을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따르면, 성모님께서 우리 구세주를 잉태하셨을 때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 6개월이었기 때문이다(루가 1,26.36 참조). 6월 24일은 북반구의 태양 주기와도 관련되어 있다. 태양이 황도의 남쪽을 향하여 돌면서 기울기 시작하는 때에 이 축일을 거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빌려온 것은 예수님을 일컬어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했던 요한 세례자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빛을 증언하는 요한의 사명(요한 1,7 참조)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전야의 모닥불 축복 관습의 기원이며, 적어도 이 관습에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교회는 그러한 불을 축복하며, 신자들이 세상의 어둠을 이기고 하느님의 “꺼지지 않는 빛”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기도한다.309)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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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 문헌의 영문본은 다음의 주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ck/directory_on_popular_piety&liturgy_en.htm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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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주: 위의 본글을 복사하여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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