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2008년~2009년)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우리 아빠 ( 끝)

인쇄

목온균 [gsbs] 쪽지 캡슐

2009-07-07 ㅣ No.915


                                      감실


주일학교에 나간 후 한찬이는 숙제가 더 많아 졌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한테 붙잡혀 기도문을 쓰고 외워야했습니다.
할머니는 기도문을 외워야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용돈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휴!”
한찬이는 그 많은 기도문을 어떻게 외워야 하나 머리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습니다.
“제기랄 신부님만 안 왔어도 이 복잡한 걸 안할텐데 ”
한찬이는 신부님이 정말정말 미웠습니다. .
새알 줍기 ,전쟁놀이는 이제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찬이는 신부님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문득 할머니 말이 떠올랐습니다.
‘감실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하면 기도가 다 이뤄진단다 ’
한찬이는 예수님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한찬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다가 성당으로 갔습니다.
우선 신부님이 있나 없나 살피고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빨간 불빛이 한찬이를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한찬이는 살금살금 감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 !, 저 구 한찬이에요 . 소원이 있어요 . 신부님이 와서
좋은 게 하나도 없어요 . 성당이 이사 가게 해 주세요 ”
기도를 하던 한찬이는 생각에 잠깁니다 .
할머니 말대로 정말 저안에서 예수님이 듣고 계실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말을 하고 나면 맘이 편안했습니다.
감실 안에서 ‘그래그래 ’ 하고 대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찬이는 성당을 빠져 나와 주위를 살폈습니다.
저 앞에 신부님이 산악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거두리 산으로 가는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 그거야!”
한찬이는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마루에 가방을 내 던지고 광에 있는 야삽을 들고 나왔습니다. .
“ 신부님은 산에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거야”
한찬이는 고개 옆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박철이형하고 전쟁놀이를 하던 곳이라 훤히 아는 길이였습니다.
“분명 이리로 내려 올거야”
한찬이는 신부님이 내려오는 길 싸리나무 옆에 구덩이를 팠습니다. 구덩이를 넓고 깊게 파고 그 위에 싸리나무를 꺾어 대충 올려 놓고 그 위에 흙을 살짝 뿌려놨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전거라도 그냥 못갈 걸 ”
한찬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광에다 삽을 살짝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할머니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 가방은 내던지고 어디 갔다가 오는 거니?”
“응 ..... 그냥 . ......”
할머니는 숙제를 빨리 해놓고 기도문을 외우자고 했습니다.
‘정말 기도문은 외우기 싫은데 ’
다음날 , 새벽 미사에 다녀온 할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니 산에서 자전거는 왜 타시는지 ”
한찬이는 토기처럼 귀를 쫑긋거리고 할머니에게 다가 갔습니다.
“신부님이 코가 까지고 입술이 말이 아냐 ”
‘겨우 ’
한찬이는 하마터면 큰소리로 말할 뻔 했습니다.
신부님이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면 안볼 텐데 참 아쉬웠습니다.
오늘 공부시간에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앞에 나가 발표를 했습니다. .
한찬이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신부님만 집에 안와도 제일 먼저 나가 신나게 발표를 했을 텐데 다 . 신부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니 한찬이는 다시 신부님이 미워져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제기랄 제기랄 ’
집으로 돌아오다 고개아래에서 신부님을 또 만났습니다.
“요즘도 덫을 놓은 나쁜 사람들이 있다니 ”
신부님은 싸리나무가지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한찬이는 벽에 박힌 액자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했습니다.
신부님은 이마에 반찬코를 붙이고 입술은 까맣게 상처가 굳어 있었습니다.
“한찬이 요즘 기도문 열심히 외운다며 주일학교 때 보자 ”
신부님은 손을 흔들며 가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한찬이는 괜히 심술을 부렸습니다.
“신부님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다리가 딱 부러 지지 ”
“한찬이 , 너 할머니한테 종아리 맞아야 겠다.”
한찬이는 처음으로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
할머니는 신부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찬이 넌 커서 신부가 되어야해”
"싫어 , 난 신부 안 될거야 !“
한찬이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할머니도 많이 미웠습니다 .
“ 난 신부가 되기 싫어. 남자가 원피스를 입는 것도 싫고 기도문을 많이 외워야하는 것도 싫어. 엄마!, 아빠!”
한찬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빠와 엄마를 불렀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미국에 계시다고 할 때는 이렇게까지 서럽지 않았었는데 너무나 슬펐습니다.
“난 고아다. 난 고아다 ”.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박철이 형 집을 가보았지만 형은 없었습니다.
한찬이는 학교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오늘 따라 학교마당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정글짐도 타보고 철봉에 매달려 보았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뱃속에서 ‘ 꼬르르 꼬르르’ 소리가 났습니다.
한찬이는 그네에 앉아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날 내려 다 보고 계실까? 할머니가 해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는데 나쁜 마음을 먹거나 나쁜 짓을 하면 날개의 깃이 하나씩 빠져버린대요 .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이다음 날지를 못해 천국을 갈 수 없단다.’ 정말 저 하늘에 천국이 있을까?
“한찬아 !”
박철이 형이 저쪽에서 달려왔습니다.
“할머니가 너 찾아 다니셔 . 빨리 집에 가자. ”
한찬이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배가 고파 못이기는 체 박철이 형을 따라갔습니다.
할머니가 대문 밖에서 한찬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이야, 한찬이랑 같이 저녁 먹고 가라”
박철이 형은 가끔 한찬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찬이랑 놀아 줍니다.
할머니가 한찬이와 같이 놀아 주라고 가끔 용돈도 주는 걸 한찬이는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합니다.
박철 형이 돌아가고 할머니는 몇 개의 줄이 나타난 한찬이 종아리에
바셀린을 발라 주었습니다. 오늘 따라 할머니의 저녁 기도는 길었습니다.
한찬이는 밤중에 또 오줌을 싸 잠이 깼습니다.
오늘은 매번 꾸던 그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사진에서 봤던 엄마가 보라색 리본을 허리에 맨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엄마가 웃으며 빨리 오라고 불러 가려하자 할머니가 나타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한참 실랑이를 했습니다. 한찬이는 오줌이 마렵다고 발을 동동 구르다 깼습니다.
“ 후! 창피해 . 난 언제 오줌을 안 싸지 !”


                     학교에 온 신부님


한찬이는 요즘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꼭 성당을 들려왔습니다.
신부님은 보기 싫었지만 이상하게 감실 앞에 가 얘기를 하고
나오면 맘이 편안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한찬이는 감실 앞에 가,
“예수님 ! 한찬이 왔다 ”
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 그래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할머니가 숙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찬이는 연습장에 '제기랄 신부님‘하고 써놓고 팔을 다친 신부님을 그렸습니다. 괴물처럼 그려놓고 ’에이 다리가 부러져라 ‘ 하고 낙서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뭔가 등을 내리치더니 등짝에서 불이 난 듯 화끈거리고 아팠습니다.
할머니가 여성 잡지로 한찬이 등을 내리 친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이런 몹쓸 것이 있나 . 할머니가 신부님한테 그러면 못쓴다고 했지 ”
“할머니, 미워!”
한찬이는 울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그렇게 날 때리다니. 신부님이 오고 할머니도 변했어 .
.할머니는 나보다 신부님을 더 좋아 하나봐 이제 할머니는 내가 싫은가봐‘
신부님이 더 밉고 할머니도 미웠습니다.
아빠도 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었습니다.
한찬이는 자기편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더 슬퍼졌습니다.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한찬이는 터덜터덜 성당으로 갔습니다.
성당은 조용했습니다.
한찬이는 사제관 현관을 향하여 돌멩이를 힘껏 던졌습니다
“신부님 ,미워!”
한찬이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는 성당안이 무서웠지만 감실 앞 빨간 불을 보니 무서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찬이는 제대 앞으로 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예수님 , 한찬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예수님 !, 할머니가 미워 .신부님도 미워 . 할머니는 신부님만 좋아해. 난 신부님이 싫어 . 신부님이 우리 집에 안 왔으면 난 아빠가 돌아가신 걸 몰랐을 거야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 아빠가 보고 싶어 ”
이상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논 것처럼 눈물이 계속 쏟아 졌습니다.
한찬이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저쪽 구석에서 흑 흑 울음소리가 나 한찬이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
“할머니!”
순간 팔에 솔음이 돋고 몸이 떨렸습니다. 도망 가려 했지만 누가
목덜미를 꽉 잡고 있는 것 같고 발에 못이 박힌 듯 움직여지질 않았습니다 . 몸이 달달 떨려 왔습니다.
“할...할....할......”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신부님 이었습니다
“한찬아!”
신부님은 한찬이를 와락 끌어 안으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한찬이는 무섭고 또 신부님에게 혼이 날까봐 신부님 보다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한찬이 보다 더 크게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한찬이 울음소리는 점 점 작아지고 신부님 울음소리는 커질수록
한찬이는 심장이 멈춰지는 것 같았습니다.
‘난 이제 죽었다’
한참을 울던 신부님이 먼저 말을 했습니다.
“한찬아 , 미안하다 . 내가 네 앞에 나타나 네 꿈을 조각내어
한찬아 , 네가 얼마나 부모님이 보고 싶은지 다 안다. 난 부모님 얼굴도 모른다 .”
한찬이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한찬아 , 넌 부모님 얼굴은 알잖아 .그리고 할머니가 계시잖니 .
할머니께 늘 감사하고 말 잘 들어야한다 “
한찬이는 신부님 손에 이끌려 신부님이 사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책도 많고 CD도 많고 한찬이가 좋아하는 게임기도 있었습니다.
한찬이는 신부님이 준 초콜릿도 먹고 과자도 먹으며 방에 진열되어있는 물건 이것 저것을 만져보았습니다.
조금 후, 현관 벨이 울렸습니다. 신부님이 밖으로 나가고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신부님 , 죄송해요 . ”
할머니는 한찬이에게 손짓을 하며 빨리 나오라고 했습니다 .
“안나 자매님 들어 오세요 ”
할머니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했습니다 .
“ 안나 자매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찬이 아빠가 되어 주고 싶은데”
“녜!"
할머니는 놀라 신부님을 바라보았습니다 .
“전 부모님이 안 계셔요 ,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
신부님의 얘기를 들으며 할머니는 연실 저런저런 하면서 눈가에 눈물을 닦아 내렸습니다.
집으로 오며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
“아이구 , 감사합니다 ”
한찬이는 야단을 치지 않는 할머니가 이상했습니다 .
할머니는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감사 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안심이다. 한찬아 너도 토마 신부님처럼 좋은 사제가 되어야한다 ”
‘정말 모르겠다 . 감실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 하면 기도가 이뤄진다고 해 성당이 없어지고 신부님이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 했는데 이게 뭐람 .그렇지만 아빠가 생긴 건 참으로 좋다 ’
한찬이는 아빠가 생긴 것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 신부님은 할머니보다 더 기도문을 외우라고 야단을 칠 것 같아 서입니다.
‘나보고 신부가 되라고 ? 난 싫어 .난 장가를 갈 거야 . 우리 반 구슬이가 얼마나 예쁜데 ’.
며칠 후 , 신부님이 한찬이 교실에 왔습니다.
“한찬이 아빠는 외국에 계셔 아빠가 오실 때까지 내가 대신 한찬이 아빠가 되기로 했어요 ”
신부님이 명예교사가 되어 한찬이 반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
구슬이가 신부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
“신부는 운전기사와 같아요. 할머니 , 아이 , 어른 ,싫거나 밉거나
다 차를 태우고 목적지에 가 내려 주는 운전기사와 같이 .
하느님께 가는 길을 안전하게 운전해 모셔다주는 사람이죠 ”
‘와아 ! 멋져 . ’
한찬이는 못생겨 보였던 신부님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보기 싫던 눈썹이 더 멋져 보이고 입이 큰 것도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
“역시 아빠는 원피스 입은 게 잘 어울려 . !!!!! ”


131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