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나해 연중 제20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나연중20주일> 996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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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5 ㅣ No.2256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나해 연중 제20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88/나해연중제20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 I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6.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기"(jealousy)"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나연중20주일> 나해 연중 제20주일

 

잠언 9,1-6; 요한 복음서 6,51-58; 에페소서 5,15-20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 II, 제267-278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올바른] 깨달음(understanding)의 길을 걸어라.” (잠언서 9, 4-6)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주: 즉, 성부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love) 때문에(요한 복음서 15,10)](*)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주: 즉,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love) 때문에(요한 복음서 15,10)](*) 살 것이다." (요한 복음서 6,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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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과의 통공의 성경 근거필요충분 조건에 대한 글[제목: 신조어 번역 용어 영성체(領聖體)에 대응하는 라틴어 용어 Communio의 출처, 의미/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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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달으십시오(understand)." (에페소서 5,16-17)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풍유(allegory)비유(parable)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부록에서 학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풍유는 비유이나,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음을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1.htm <----- 필독 권고 

 

B.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잠언서 9,4-6 전문이다:

(발췌 시작)
4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5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이상, 발췌 끝)

 

(i) 제6절에서 ‘예지’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새 번역 성경”의 본문 전체에 걸쳐 번역 용어로서 다수에 걸쳐 선정되어 사용되고 있는 우리말 표기 ‘예지’가, 왜냐하면 대응하는 한자 단어를 소괄호 안에 병기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독자들이 도무지 올바르게 알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의 한 종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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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지적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포함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7.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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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의 제4절제6절에서 ‘지각’, ‘예지’로 번역된 표현들 둘 다는 NAB(New American Bible)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영어본 성경들에서 ‘understanding’으로 번역되었다. 

 

(ii) 한편으로, 피조물들인 인간들에게 있어, 따라서, 인간적(human) ‘understanding’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인간의 이성적 추론 행위(rational reasoning), 즉, 과학/학문(science)에 의하여 진리(truth)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어떤 습관(a habit)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유의미한, 즉, 올바른(right)/좋은(good)/참인(true) 직접 혹은 간접 경험(experiences)들이 더 많을수록 이들로부터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s)들의 결과들로서 이미 습득된 원리(principles)들 중의 일부를 판단의 근거/기준/찻대들로 사용함으로써 도출되는 결론들이 진리(truth)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인간적 희망(human hope)에 의존하는, ‘별다른 생각/사고(thoughts) 없이, 그냥 직접 접(接)하자마자 즉시 알아차리게 하는 첫 번째 원리(first principles)들로 삼고 있는 이들 원리들의 어떤 습관(a habit)’을 말하며, 따라서 바로 이 습관, 즉, 인간적(human) ‘직각(直覺)/‘요해’(了解)/‘이해’(理解)(understanding)는 오류인 결론들을 유발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iii)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위의 제6절에서 말하는 성경 용어 ‘understanding’이란, 의인화된 ‘지혜’가 거명되고 있는 그 전후 문맥 안에서 비추어 볼 때에, 바로 위에서 기술한 인간적(human) ‘understanding’을 말하기보다는, 칠십인역 이사야서 11,2에 나열된 ‘성령칠은’들 중의 하나인, 신성적(divine) ‘understanding’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따라서 위의 제6절에서 ‘예지’는, 이들 ‘성령칠은’들 중의 두 번째인, ‘[올바른] 이해’/‘[올바른] 깨달음’(understanding, 칠십인역 이사야 11,2 참조)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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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추가적으로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96.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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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그리고 바로 이 해석에 오류가 없음은, 칠십인역 잠언서 9,6에서 사용된, 대응하는, 그리스어 동사형 명사가 오늘의 제2독서에 포함되는 그리스어 에페소서 5,17에서 사용된, ‘understand’(새 번역 성경: 깨닫다)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동사의 명사형임에 의하여, 즉, 2,000년 이상이 경과한 매우 오래전의 시기에, 히브리어 잠언서 9,6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유다교 측 학자인 번역자에 의하여, 확고하게 뒷받침됨에 반드시 주목하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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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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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특히, 바로 이 신성적(divine) ‘깨달음’인 어떤 습관(a habit)은, 인간적(human) 습관인 어떤 ’직각(直覺)/‘요해’(了解)/‘이해’(理解)에 비하여, 오류의 결론을 산출할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C. 영성체가 있는 그리스도교 교회, 즉, 천주교회가 "천당"(heaven, 하늘)으로부터 내려온 바로 그 무엇인, 지상에 있는 "새 예루살렘"임의 성경 근거는 요한 묵시록 21,3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56항을 학습하라.

 

D.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56에서의 바로 이 표현을 두고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상호 내재성’(mutual interiority)이라고 가르치심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aud_20001108_en.htm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과의 통공의 성경 근거필요충분 조건에 대한 글[제목: 신조어 번역 용어 영성체(領聖體)에 대응하는 라틴어 용어 Communio의 출처, 의미/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20.htm <----- 필독 권고 

 

F.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b_ot_20.htm <-----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 독서들의 주제

 

This Sunday’s readings seem to be focused on the mystery of the Eucharist: what or who is this mystery which hides under bread and wine? The answer is broad and rich in nuances: the mystery is a man, Jesus of Nazareth, like us but come down from heaven (Gospel). It is God’s wisdom that invites us to a banquet so that we may acquire knowledge (first reading). It is the Father’s Son, who wants us to share his divine life (Gospel). It is the glorious Lord to whom the Christian community sings psalms, hymns and inspired songs (second reading).

 

바로 이 주일의 독서들은, 다음과 같이, 성체성사의 신비(the mystery of the Eucharist)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 아래에 숨어있는 바로 이 신비는 무엇 혹은 누구인가? 그 답변은, 다음과 같이, 뉘앙스들에 있어 광대하고 풍부합니다: 이 신비는, 우리들과 비슷하나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신, 나자렛 출신의 예수인, 한 명의 사람입니다 (복음 말씀).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따라서 각자의 영혼에 인호가 박힌] 우리들을 한 개의 연회 [즉, 성찬례] 쪽으로 초대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가 [성령칠은들 중의 두 번째인 올바른] 깨달음(understanding)(이사야 11,2 및 오늘의 제2독서인 에페소 5,17)(*)[세례에서뿐만이 아니라, 성찬례에서 지속적으로] 회득할 수도 있게 하는 자는 바로 하느님의 지혜(God’s wisdom)입니다 (제1독서). 우리들이 [미사 중의 성찬 전례에서] 당신의 신성적 생명(his divine life)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은 바로 성부의 아드님이십니다 (복음 말씀). 그 쪽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시편들, 찬미가들 그리고 영감을 받은 노래(inspired songs, 즉, 영가)들을 노래하는, 분은 바로 영광을 발하는 주님(the glorious Lord)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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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바로 위에 또한 발췌된 영어본인 번역대본에서 'knowledge'(지식)이라는 표현은, 그러나 오늘의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 전체의 문맥 안에서, 그 애매모호함 때문에, 올바른 내용 이해에 장애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애초에 스페인어로 저술된 스페인어 강론 원고 원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발생한 번역 오류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이 오류를 회복/복원시키고자,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 필자가 '[성령칠은들 중의 두 번째인 올바른] 깨달음(understanding)'으로 교체하였다. 이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위의 제B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2) 다른 한편으로, 세례 시에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하느님에 의하여, 성화 은총, 향주삼덕들과 함꼐, 또한 주입되는(infused), '성령칠은'들 중의 다섯 번째인 'knowledge'(지식)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적 추론 행위(rational reasoning)만에, 즉, 인간적 과학/학문(human science)만에 의하여, 획득될 수 있는 인간적 지식(human knowledge)을 말하지 않음에 또한 빈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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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Mysterium carnis. The mystery of the Eucharist is of a unique realism: "Anyone who does eat my flesh and drink my blood..." There is no symbolism here, no utopian abstractions! It is the Flesh and Blood of the man who is talking to them, of Jesus of Nazareth, of the Word made flesh and living among us! It is not a mere memory or a celebration, it is not the expression of a beautiful and generous idea, it is not a magic formula or a ritual and secret conspiracy, it is "the flesh of the son of man", the humanity and divinity of Jesus of Nazareth given to us in the transubstantiated bread. What a surprise, but at the same time, what joy! One trembles with amazement before such a sublime food given to us in such a surprising and lowly way. One rejoices and exults, filled with joy before such an inexpressible and purely divine invention as the Eucharist. Who if not God could have invented so great a mystery?

 

육의 신비(Mysterium carnis). 성체성사의 신비(the mystery of the Eucharist)는, 다음과 같이, 한 개의 유일한 실제론(a unique realism)에 대한 것입니다: ""

 

우리말 번역 중입니다.

 

Mysterium fidei. After the consecration of the bread and wine the priest says "Let us proclaim the mystery of faith." And the faithful reply "Lord, by your Cross and Resurrection, you have set us free, you are the Savior of the world." Mysterium fidei, Mysterium salutis. What a wonderful description of the Eucharist! Only through faith are we able to discover the presence of Christ, Wisdom of God, in the Eucharistic bread. Those who eat it share this very wisdom, "which is beyond all human understanding" and which allows one to know the mysteries of God (first reading). Only faith leads us to remove the veil from the Eucharist to see Christ, the Son of God and glorious Lord of time and history, of humankind and of all of creation (Gospel, second reading). Only the gaze of faith penetrates the mystery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 made present when the priest consecrates the bread and wine for the forgiveness of our sins, and the redemption of our poor existence.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에 미사 집전 사제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시다"라고 말합니다.

 

Mysterium amoris. The Eucharist is the ultimate and supreme gesture of love that God invented for humanity. In the Gospel, Jesus tells us,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lives in me and I live in him... so whoever eats me will also draw life from me." These are formulae which tell us about living in Love, being possessed by Love, living for Love. To the extent the human creature has experienced a love that is not purely physical and has been elevated to other forms of love, he will be better prepared to grasp the love of Christ in the Eucharist. It is a love that was originally spiritual and supernatural, but that given the nature of the human being, comes to include the sensible sphere and our entire psychosomatic reality as persons. It is a Love, present in the bread of the Eucharist, which the Christian assembly celebrates and worships in the Sunday liturgy with songs and hymns of praise and acts of thanksgiving (second reading). Love deserves to be celebrated publicly so that it may permeate us all and so that we may bear witness to it before the others.

 

사랑의 신비(Mysterium amoris). 성체성사(the Eucharist)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고안하신, 사랑(love)에 대한 궁극적이고 지고한 표시(gesture)입니다.

(이상, 발췌 및 일부 단락들의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281. 교회는 성찬례 희생 제사(the eucharistic sacrifice)에 어떠한 방식으로 참여하는지요?
CCC 1368-1372, 1414


성찬례(the Eucharist, 성체성사)에 있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sacrifice)는 또한 당신 몸의 구성원(members)들의 희생 제사가 됩니다. 열심 신자들의 삶(lives)들과, 그들의 찬양, 그들의 고통, 그들의 기도들, 그들의 노고는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됩니다. 성체성사가 한 개의 희생 제사인 한, 이 성사는 마찬가지로, 모든 이의 죄들에 대한 벌충/보상(補傷)(reparation)으로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영적이며 현세적인(temporal) 유익(benefits)들을 얻고자, 살아 있거나 죽은, 모든 열심 신자들을 위하여 봉헌됩니다. 천상 교회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봉헌 행위(offering)에 또한 결합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20_c1368.htm

 

CCCC 282.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성체성사) 안에 어떻게 현존하시는지요?
CCC 1373-1375, 14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일하고 또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찬례(the Eucharist, 성체성사)에 현존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성체(Body) 및 당신의 성혈(Blood)과 함께, 당신의 영혼(Soul) 및 당신의 신성(Divinity)과 함께, 참되고(true), 실재이며(real), 그리고 실체인(substantial) 방식으로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에서,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전체이시고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聖餐)의 방식으로(in a sacramental way, 즉,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거행하셨던 방식으로)(*), 즉, 빵과 포도주라는 성찬례의 종(種)(Eucharistic species)들 아래에(under), 현존하고 계십니다(엮은이 번역).

 

(*):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in a sacramental way’를 단순히 ‘성사적인 방식으로’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과 함께 거행하셨던 성찬(聖餐)의 방식으로’, 혹은 간략하게, ‘성찬(聖餐)의 방식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일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199, 1353, 1390항들의 우리말 번역에서 ‘sacramentally’에 해당하는 표현을 ‘성사적으로’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성찬(聖餐)의 방식으로’ 혹은 ‘성찬(聖餐)적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일 것이다.

 

사실,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2005년에 출판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282항에서는, 1997년에 최종 출판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중의 ‘sacramentally’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에, ‘in a sacramental way’를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다음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0년 교서(제목: Dominicae Cenae)를 읽을 때에 특히 이 지적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let_24021980_dc_en.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20_c1373.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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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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