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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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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eogus1] 쪽지 캡슐

2001-08-27 ㅣ No.1590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저 분이 우리 아버지" 그 말을 못했습니다

 

출처 : Ohmynews 유정열 기자 yoo7532@hanmail.net

 

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78세입니다. 아직도 건강하시고 식사도 아주 잘하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중풍으로 4년 넘게 고생하신 어머니께서 지난 4월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부모님 방을 외롭게 혼자서 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아버지께 효도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랫동안 불효를 했기 때문에 마음이 여전히 많이 아픕니다.

 

아버지께 잘해드려야 하늘 나라에 가계신 어머니께서도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기뻐하실 텐데 말입니다.

 

나는 1985년 3월에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한 요업회사에서 경리 일을 맡아 하다가 적성에 너무 맞지 않아 안되겠다 싶어 굳게 결심하고 야간 대입 종합반에 적을 두고 주경야독하여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직장은 대학 입학 1주일 전에 그만 두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바로 다니고 있는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1년 정도 하다가 대입 공부하느라고 그만 두었는데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무척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아주 신나게 교사 일을 보았습니다.

 

어느 주일날의 일입니다. 미사와 주일학교 교리까지 끝난 다음에 교사들이 성당 마당에 모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도 한 벌밖에 안되지만 양복을 깨끗하게 입고 젊은 남녀 교사들과 즐겁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때입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성당에 미사 드리러 마당으로 들어오신 때가.

 

아버지께서는 아주 초라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62세였습니다. 난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지나 않을까, 웃으시면서 이쪽으로 오시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제발 아버지께서 모르는 척 하고 성당으로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나는 나의 몸을 돌려 등을 아버지께 보였습니다. 다른 교사들이 가능한 한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아버지께 나의 뜻을 간접적으로 보여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뜻을 다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성당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이 아들을 낳아주신 아버지를 다른 선생님들에게 당당하게 인사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예쁜 처녀 선생님들도 있었지요. 그 선생님들에게 초라한 나의 아버지를 도저히 인사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들은 대학생에다가 깨끗한 양복을 입고 있는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옷을 벗고 2층에 있는 나의 조그마한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원고지를 꺼내놓고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아버지를 보고 얼굴이 빨개지며 등을 보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아들을 보고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큰아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였으니......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단 한 번도 직장다운 직장을 가져보지 못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어머니 속을 많이 썩히시며, 자식들에게 따뜻한 부성애를 보여주지 못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 가장 부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친구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점이나 식당에 간다거나, 아니면 함께 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목욕탕에 가는 모습도 너무 부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얼굴이 코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상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하여.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좋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4남매가 한결같이 어머니가 아버지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으시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셨더라면 우리 4남매는 이 세상에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대학 합격 여부가 무척 궁금하였는데, 직장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혀가 아주 짧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아버지의 발음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합격이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제일 먼저 대학교 교정에 가셔서 아들의 합격 소식을 알려주신 분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이제 나는 남매를 둔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삼 대가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갔다오시면서 두 손자에게 가서 이불을 덮어주시는 아버지, 이 아들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며느리에게 몇 번이고 물어보신다는 아버지, 4남매가 주는 용돈으로 아들 부부와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애쓰시는 아버지. 그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서울에서 사시는 큰 누님은 가끔 나에게 이러한 말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난 부모에게 못하는 자식은 거의 없단다. 그러나 잘나지 못한 부모에게 효도하기는 어렵단다. 그런 부모에게 잘해드리는 것이 진짜 효자란다."

 

아버지를 주일학교 선생님들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못난 행동을 한 지도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교훈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들려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든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든지 하는 부모님이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머니요, 아버지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이 진짜 효자요, 효녀라고 말입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나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아버지를 괴롭게 해드렸는데 아버지의 여생이나마 효도하고 싶습니다. 오는 10월 13일이 부모님 결혼 60주년(회혼례)인데, 그 날을 맞이하여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그것이 가장 안됐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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