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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시(김남주:이 가을에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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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나는
김남주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 또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한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께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눈둑길 밭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을 돈다 저 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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