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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않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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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성 [kdae64] 쪽지 캡슐

2003-02-03 ㅣ No.3106

 

                                  [지워지지 않는 낙서]

 

 

지난 봄,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물이 있고 풋대추가 대롱

 

대롱 달려 있는 대추나무가 서 있는 그런 집으로 말입니다. 셋방을 전전하던 끝에 처음

 

으로 장만한 내 집이라서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말썽꾸러기 아들 딸 때문에 언제나 주인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귀에 달고 살아야 했던

 

엄마가 누구보다도 좋아했습니다. 이삿짐을 풀자마자 내게 주어진 일은 담장 가득한 낙서

 

를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서툰 글씨, 어딘지 모를 주소, 약도........

 

나는 깊고 아득한 우물에서 물을 퍼올려 낙서를 말끔히 지웠습니다.  

 

"아, 다 지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비비고 나와 보니 내가 애써 지운 글

 

씨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었던 것입니다.

 

"어? 이상하다. 도깨비가 왔다 갔나? 아니면 달빛에 글씨가 살아나는 요술담장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다시 낙서를 다 지우로 엄마한테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깨끗하게 잘 지웠네.... 우리 착한 딸."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어제와 똑같은 낙서를 가득 해 놓은 것입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나는 낙서를 지우면서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혼을 내 주리라 마음먹고 저녁내내 망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두 소년의 그림자가 담장에 어른거렸습니다.

 

"형!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이거 보고 이사간 집 찾아올거라고 그랬지?"

 

"물론이지, 아빠는 집배원이었으니까 금방 찾아오실 거야."

 

형제는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가 이사간 집을 찾아오지 못할까봐 담장 가득 약도를 그리고 또

 

그렸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이후 낙서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우리집 담장엔 그 삐뚤

 

삐뚤한 낙서가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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