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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성 에드와르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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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0-11 ㅣ No.693

 

축일 : 10월 13일

성 에드워드 (1003-1066년경)왕.증거자 잉글랜드

St.Edward the Confessor

 

성인은 1042년 영국의 에드와르도 3세 왕이었다.

이 왕은 ’착하신 왕’ 으로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수도원을 재건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국왕 성 에드와르도 무덤이 그 사원안에 있다.

 

성인은 웨스트민스터의 주보성인이며 고아들과 방랑자들의 주보성인이다

 

국왕 에텔레드 3세와 그의 아내 노르만디의 리차드 1세의 딸인 엠마의 아들로 태어난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의 이슬립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덴마크의 스웬과 그의 아들 가누토가 잉글랜드를 침공했을 때 그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노르만디로 갔다. 전쟁이 끝나 어머니인 엠마는 잉글랜드로 돌아갔으나, 그는 노르만디에 그대로 남아서 노르만임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1041년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다음 해에 왕위를 물려받고, 야심적이며 세도가이던 얼골뒨의 딸 에디타와 결혼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골뒨의 강력한 반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싸움의 불씨가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노르만인들을 좋아했고, 또 그가 노르만디에서 데리고 온 사람을 켄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그는 그의 장인인 골뒨의 무력 봉기를 분쇄하여 평정을 되찾았다. 에드워드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므로, 골뒨의 두 아들이 왕위에 눈독을 들이고 또 다시 반기를 블자, 그는 그 아들들도 유럽으로 추방하였다.

 

이 사건 후부터 그는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들었고, 웨스트민스터에 세인트 피터 수도원을 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왕과 왕후는 매우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으며, 마치 오누이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자식이 없다는 사실로 많은 고통을 받았으나,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신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증거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었다.

그는 런던에서 서거하고 세인트 피터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1161년에 교황 알렉산델 3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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