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성당 게시판

< 대림 제 2 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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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lia1004] 쪽지 캡슐

1998-12-07 ㅣ No.14

유니텔 가톨릭통신 동호회 가족들을 위한 대림특강에서 퍼왔습니다.

 

< 대림 제 2 주일 >

 

                   

                                        신성길 니꼴라오 신부 (ID: 작은형제)

                                         작은형제회(정동 프란치스코 수도회)

 

 

  몇 일 전 가르멜 수녀원으로부터 한 권의 화보집을 받았다. 가끔 편지로 인사 드리는 노(老) 수녀님으로부터 날아 온 선물이었다. 화보집의 제목은 "에디트 슈타인 - 우리 시대의 희생자"였다.  

이 화보집은 지난 1998년 10월 11일 독일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 에디트 슈타인 수녀님을 기념하여 독일에서 발간된 책이었다. 많은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매섭고도 심오한 성녀의 눈길이 책장을 넘기던 손길을 멈추게 했다.

 

  성녀는 독일 태생의 유태인으로 현상학을 개척한 에드문트 훗설 교수의 문하에서 현상학을 연구한 유능한 철학자였다. 성녀는 당대에 여성이 철학을 공부한다는 편견을 이기고, 현상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한 동안의 내적 투쟁 끝에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영향을 받아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게 된다. 그러나 수도생활을 시작한지 9년 만인1942년 8월 9일, 성녀는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살해된다.

 

  우연히도 대림 제2주일 강론을 부탁 받고 나서 펼쳐본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3장 1-12절의 세례자 성 요한의 선포 내용이었다.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자 성 요한은 예언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신 분이었다. 누군가 그 분의 오심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용감하게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의인이며, 예언자였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모델이 필요했고, 하느님께서는 그 역할을 세례자 성 요한에게 맡기셨다.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삶을 화보집을 통해 보면서 세례자 성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시대에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분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게 해 준 분이었기 때문이다. 성녀는 유태인이면서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았다. 지금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유태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가족과의 결별, 동족들로부터의 배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녀는 자신이 그토록 열정을 바쳐 탐구했던 철학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신앙이 모든 철학보다 또 심지어 신학보다도 신적 지혜에 더 가깝다." 성녀는 자신이 찾은 이 진리를 부정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이끄시는 그 은총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고, 오직 우리를 살리신 그 십자가의 영광을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르멜의 산길"을 오르게 된다. 이 한마디를 외치며 "이것이 진리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세례자 성 요한과 같은 급진적이며, 투철한 예언자가 필요한 때이다. 누군가 분명히, 그리고 장엄한 목소리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그 분이 오실 것이라고 선포해야 한다. 그분이 가져오셨던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는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많은 선각자들이 계셨다. 그 중에 한 분이 오늘 함께 묵상해 보았던 에디트 슈타인 성녀였다.

 

  성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의 의도에 맡겼다. "하느님은 나를 통해 하실 일을 알고 계신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았고, 가르멜회의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의 운명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 성녀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세례자 성 요한이 선포했던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과연 나는 무엇을 회개할 것이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또 나는 무엇을 하느님의 계획에 맡길 것이고, 무엇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합치시킬 것인가?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자고 권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시고, 역사 하실 수 있도록,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고 십자가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도록 나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나를 준비하자고 권하고 싶다.  

 

  대림 제2주일의 말씀을 묵상하며, 때마침 좋은 묵상거리를 보내 주신 가르멜회의 수녀님께 감사드린다. 수녀님들 또한 보이지 않게 세례자 성 요한의 예언직을 수행하고 계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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