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걷기 명상으로 대지의 힘을 온몸에 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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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6-05 ㅣ No.4933

 

걷기 명상으로 대지의 힘을 온몸에 실어라

 

걷기 명상은 말 그대로 걸으면서 하는 명상이다.

흔히 명상이란 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하는 것으

로 생각하기 쉬운데, 자신의 100%를 다해 깨어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모두 명사이 될 수 있다.

특히 걷기 명상은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명상

으로 머리를 많이 쓰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좋은 명

상법이다.

절대로 뛰는 법이 없는 사업가를 알고 있다.

그는 걷기 위해서 늘 스케줄을 여유 있게 잡는다.

그리곤 미국 덴버 시의 도심을 느긋하게 걸으며

그 순간에 집중한다.

땅을 딛는 자신의 발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즐긴다.

걷는 동안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상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언제 누구를 만나도 당당했고, 어떤

문제든 지혜롭게 처리했다.

그는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걷는다’ 는 것은 단지 이곳에서 저

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일 뿐이다.

집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회사를

향해 걷는 동안 일을 행각한다.

걷는 순간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상실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대지의 힘이 발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걷기 명상은 바로 이 순간

의 행복을 체험하게 해준다.

 

언젠가 가톨릭 수녀, 신부님들과 걷기 명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숲으로 이어지는 초원을 걷기

시작했다.

때는 봄이어서 초원에는 푸른 풀잎 사이로 작은

들꽃들이 가지각색 빛깔로 피어있었다.

우리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즐겼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발이 땅에 닿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5월의 들판을 가득 채운 생명의 기적을

만끽할 수 있었고, 내면이 고요해지면서 어지러웠

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숲에 도착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

에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 사이로 사어드는 햇빛은 너무나도 아름다

웠다.

정말 좋았다. 문득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이 순간

이 말할 수 없는 행복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바로

기적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건너편에 앉아있는 프랑스인 스님 샤리푸트라

에게 말했다.

"샤리푸트라! 지금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면 다른

어느 곳에도 천국은 없을 걸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은 관념이 아니다. 이 삶 너머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다면, 미래의 그

어디에도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라.

그러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 보일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좀더 많은 힘과 자유, 행복이 존재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잠시 책장을 덮고 가만히

걸어보라.

당신이 걷고 있는 그곳은 차가운 마루바닥이나 아스

팔트가 아닌 아름다운 지구 위라는 사실을 느껴보라.

그리고 마음을 바끝에 모으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유

인으로 걸어라.

정말 멋진 일 아닌가?

 

걷기 명상은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좋은 곳

을 찾을 필요도 없다.

다만 들이마시고 내쉬는 리듬만 조절하면 된다.

숨을 들이마시며 두세 걸음 걸어라.

"들이쉬고, 들이쉬고" 라고 말하라.

입으로 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발로 말하는 것이다.

발에 사랑의 힘을 가득 실은 다음, 흙에 입맞춤하는

기분으로 그냥 내딛으면 된다.

다시 숨을 내쉬면서 두 걸음을 걷는다.

이때에는 "내쉬고, 내쉬고" 라고 말한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흙을 밟아라.

마음이 머리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음을 저 아래 발바닥까지 끌어내려라.

발걸음은 점차로 힘을 되찾을 것이다.

이 힘은 다시 몸과 의식에 고루 퍼져 새로운 활기로

태어난다.

"들이쉬고, 들이쉬고"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

니라 걷고 싶기 때문에 걷는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라.

나는 자유인으로 걷고 있으며 모든 발걸음을 즐긴다.

삶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무르고 싶고, 나의 발끝으로 삶

을 아우르고 싶다.

"내쉬고, 내귀고" 당신은 걷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현재를 제배하려는 과거나 미래는 힘없는 유령

에 불과하다.

당신은 더 이상 과거나 미래의 그 어느 걱정거리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다.

당신은 자기 자신인 동시에 자신의 주인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집에서 걸을 때에는 한 걸음씩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아주 천천히 걷기 명상을 수행하라.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내쉬고 내쉬고"

집밖에서 걸을 때는 들숨이나 날숨에 두세 걸음씩 걸

어라.

이렇게 하면 걸음과 호흡을 동시에 들길 수 있다.

다음에는 "깊이 깊이, 천천히 천천히"를 되뇐다.

물론 소리가 아니라 발로 말하라.

이 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자연스

럽고도 즐거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수행은 고된 노동이 아니므로 즐거워야 한다.

수행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건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수행에는 치유와 변화의 힘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또 다음으로는 "고요히, 편안히" 를 되뇐다.

이 말은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고요히"라는 말을 할 때는 당신의 몸과 기분은 고요

함을 느껴야 한다.

내면의 힘을 기르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걷기

명상을 하기 바란다.

실내나 야외 어디든 상관없다.

회의실을 가고 오는 길에, 주차해 놓은 차로 걸어가는

길에, 그리고 계단을 내려갈 때도 걷기 명상을 하라.

오디든 걸어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걷기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출발하라.

이전에 그 길을 가는 데 3분이 걸렸다면 이제는 8-10

분을 허용하라.

나는 공항에 갈 때면 언제나 한 시간의 여유 시간을

두고 미리 떠난다.

공항에서 걷기 명상을 하기 위해서다.

친구들은 더 있다 가라고 나를 붙잡지만 나는 그

한 시간이 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걷기 명상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좀더 특별하고 새로운 명상법을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걷기 명상은 내면을 성장

시킬 수 있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나는 걷기 명상 덕분에 인생의 큰 위기를 현명

하게 대처하기도 했다.

1976년 찬콩 스님과 함께 베트남 근처의 시암

만으로 보트 난민을 구하러 갔을 때 일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작은 배에 매달려 바다를 표류

하고 있었다.

여자와 어린이들도 타고 있었지만 동남아시아의

어느 항구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 보트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수송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건으로 나는 여권을 싱

가포르 당국에 압수 당했다.

24시간 내로 싱가포르를 떠나라는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물론 보트 난민들은 바다에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말이다. 이 사건은 토요일 새벽 2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떻게든 그 명령을 취소해야 했다.

그러나 일을 해결할 시간은 반나절밖에 없었다.

토요일에는 관공서가 12시에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일시에 사라질 수 있었다.

나는 그 새벽에 걷기 명상을 했다.

머물고 있던 작은 방에서 나는 새벽 2시부터 걷고

또 걸었다.

그저 걷는 순간에 힘을 모았다.

이윽고 날이 밝았고 그때까지 나는 걷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6시. 나는 찬콩 스님에세 프랑스

대사관에 찾아가 보라고 일렀다.

해결책이 떠올랐던 것이다.

찬콩 스님은 오전 8시에 프랑스 대사를 만나 상황

을 설명했고, 대사는 프랑스 정부가 나를 보증한다

는 강력한 편기를 써주었다.

찬콩 스님은 그 편지를 가지고 이민국으로 갔다.

하지만 이민국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힘든 문제

라며, 찬콩 스님을 외무부로 보냈다.

외무부 장관은 다른 장관들과 함께 오랫동안 회의를

했고 마침내 12시 10분전, 2주간의 비자 연장이

통보되었다. 찬콩 스님이 급하게 이민국으로 돌아와

비자연장을 신청했고, 12시 5분전에 승인이 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싱가포르에 좀더 머무를 수 있었고,

두 척의 배에 566명의 난민을 실어 옮길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발 빠르고도 재치있는 해결책이 모두

걷기 명상을 통해 얻은 고요하고 명료한 마음 때문

이라고 믿는다.

 

모든 길은 다 걷기 명상의 길이 될 수 있다.

시원한 가로수가 늘어선 길, 향긋한 벼가 자라고

있는 논길, 도시의 뒷골목, 지뢰가 잔뜩 묻혀 있는

한국의 비무장지대까지도 걷기 명상의 길이 될 수

있다.

마음이 온전히 깨어있다면 어떤 길도 마다 않고

들어갈 것이다.

그 길에는 물론 고통이 존재한다.

당신의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오는 고통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는 고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신 자신을 세상을 향해 열면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지혜를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당신은 그들과 함께 세상의 고통을 덜어내는 일을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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