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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은수자 축일♬Kyrie-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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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4-02 ㅣ No.1070

축일;4월 2일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꼬 은수자

Francis.francesco da paola

1416년-1507년. 창설자

 

1416년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지방의 파올라에서 태어났다. 파올라의 프란치스코는 관상 생활의 고독을 깊이 사랑했으며 ’하느님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되기만을 바란 사람이다.그렇지만 교회가 그에게 활동적으로 세상에 봉사하기를 청했을때, 그는 기적의 일꾼이 되었으며 국가의 진로 결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부모와 함께 로마와 아시시를 순례한 후 파올라 근처의 해안에 있는 한적한 동굴에서 관상적인 은수자로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20세가 되기도 전에 그의 생활 방식을 본받고자 찾아온 첫 제자를 받아들였다. 17년이 지난 후에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자 그는 정식 공동체를 위한 규칙을 제정하고 교회의 인준을청하였다. 이것이 바로 ’은수자회’의 설립이며 1474년에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1492년에 프란치스코는 자기 공동체의 명칭을 ’가장 작은 형제회’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자기 회원들이 하느님의 집에서 작은 자(minimi)로 알려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506년 사도좌의 인준을 받았다.

 

겸손은 프란치스코가 일생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형제들의 신분증명이 되어야 했다. 프란치스코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청빈,정결,순명의 서원 이외에 사순절의 금육을 계속 지키라는 네번째 규율을 덧붙였다.

 

그는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관상적인 은수자가 되는 것이 자기의 바람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자기를 사도직 생활에 부르고 계심을 믿었다.그래서 그는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 기적과 예언의 은사와 같은 자기가 받은 선물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옹호자인 프란치스코는 왕과 왕족들에게 직선적인 충고를 하여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왕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교황 식스토 4세의 요구에 따라 프란치스코는 파리에 가서 프랑스 왕 루이 11세를 도와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했다. 왕에게 봉사하고 있는 동안 프란치스코는 국가 정책을 진로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 왕실 간의 결혼을 주선함으로써 평화를 회복하게 했고, 루이 11세에게 논쟁의 대상이 된 땅의 일부를 스페인에 되돌려 주도록 설득함으로써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데에도 협력하였다. 프란치스코는 프랑스 궁전에 머물던 1507년 4월 2일 성금요일에 세상을 떠났고 죽은 지 12년이 지난 1519년에 시성되었다.

 

파올라의 프란치스코의 생애는 지나치게 활동적인 세계에 대하여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활동적인 일에 부름을 받은 관상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기도와 일 사이의 긴장을 예민하게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의 일생에서 그것은 생산적인 긴장이었다.

 

왜냐하면그는 국제 관계에 뛰어들게 된 자신의 업무에서 관상 생활의 열매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와 절제의 견고한 기초 위에서 교회의 부르심 앞에 매우 진지하고 훌륭한 응답을 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세상에 나가서 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인 자신을 통하여 일하시는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왕 루이 11세는 중풍에 시달리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왕은 이탈리아에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사람을 보내 그와 그의 수도원을 돕겠다는 많은 약속을 하며 프랑스에 와서 자기를 고쳐 달라고 청했다.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교황에게 왕이 직접 부탁할 때까지 거절했다.

 

루이 11세는 프란치스코에게 무릎을 꿇고 자기를 고쳐 달라고 간청하자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고,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니 만큼 다만 그를 위해 기도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 성인은 여러 차례 왕과 만났다. 프란치스코는 비록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에 지혜가 넘쳐 그를 통해 성령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증언했다. 기도와 표양으로 그는 왕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왕은 그의 팔에 안겨 평안히 운명할 수 있었다.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꼬의 편지에서

(Epistola a, 1486: A. Galuzzi, Origini dell’Ordine dei Minimi, Romae, 1967, pp. 121-122)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십시오.

 

가장 너그러이 갚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노고에 상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피해 달아나고 위험들을 몰아내십시오. 우리와 우리모든 형제들은 비록 부당한 사람들이지만, 여러분이 영혼과 육신의 구원을 찾고 있는 동안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정 모친이신 마리아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형제들이여, 강력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온갖 사려와 열성으로 힘써 영혼의 구원을 얻도록 하십시오. 죽음은 확실하고, 인생은 짧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 올라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하늘에서 내려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다 여러분의 마음을 고정시키십시오. 그분은 우리 때문에 영혼과 육신의 온갖 고통을 당하셨고, 어떤 고초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에게 인내와 사랑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역경 가운데서도 인내심을 지녀야 합니다.

 

미움과 적대심을 버리십시오. 거친 말을 삼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입에서 한번 그런 말이 흘러 나왔다면, 그 말로 인해 생긴 상처를 치료해 줄 치료제를 같은 입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이렇게 서로 용서해 주고 과거에 당한 일을 영원히 잊어버리도록 하십시오. 당한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며 분노가 가져다 주는 결과이고 죄를 간직하는 것이며 정의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것은 녹슨 화살이고 영혼의 독소이며 덕의 파멸이고 정신을 좀먹는 벌레요 기도의 방해물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 느님께 바치는 청원들을 무효화하고 사랑을 몰아냅니다. 당한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또한 영혼에 박힌 가시요 결코 잠자지 않는 악이며 끝이 없는 죄이고 날마다 겪는 일종의 죽음입니다.

 

평화를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누구나 갈망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보물 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죄가 하느님을 분노케 해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도록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도 하느님께는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십시오. 주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게 끔 살아가십시오.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 안에 깃들기를 바랍니다.

 

 

♬Kyrie-Mozart Missa K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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