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난 유치원 교사를 했다. 아이들은 그지없이 예뻤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참 어려웠다. 이 녀석들의 특징은 일단 질문이 엄청 많다는 것인데, 그 질문이 도무지 질문 같지 않은 질문들이라는 것이다. “선생님, 왜 사과는 빨개요?”, “선생님, 왜 개미는 작아요?”, “선생님, 왜 하늘은 파래요?” 아니 내가 과학, 천체 등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과의 유전자가 어쩌고, 엽록소가 저쩌고 설명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난감함이란`…. 아이들은 작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눈을 가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작은 것에 의문이 들 때는 주저없이,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질문을 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요,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작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인 것이다. 어릴 적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유난히 질문이 많은 꼬마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지만 쥐꼬리만큼 아는 것은 범꼬리만큼 안다고 뻥튀기를 하고, 모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응`∼’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위장술만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소화 데레사 축일이다. 그분은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위대함을 지녔기에 위대한 성녀가 되었고 아이들, 작지만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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