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포온글]아이러브 스쿨~(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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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1-02-28 ㅣ No.8166

 

연수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쯤에는 발목이

빠질정도로 눈이 많이 왔습니다. 온세상이 하얗게 뒤덮힌 눈을 보면서 시린손을

호호 불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아까 연수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습니다. 평소때보다 더 따뜻한것

같습니다.

연수가 집에가서 많이 혼나지 않았을지 걱정입니다. 괜히 나때문에 옷도 지저분해지고

손발도 시려웠던건데... 잠을자려다 다시 일어나서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가면서 일기를 적었습니다. 오늘 우리동네에서 웃으며 나와 놀았던

연수 얼굴이 떠 오릅니다.

 

뒷동산이 온통 흰눈으로 뒤덮힌채 몇일이 흘렀지만 눈은 아직 녹지 않았습니다.

어른들께서는 올해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것을 보니 올해 농사가 잘될것 같다고

좋아들 하십니다. 나는 왜 눈이 많이 오면 농사가 잘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농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조금 걱정을 더실 수 있을테니까요.

 

오늘도 새벽일찍 일어나서 신문을 돌리기 위해 미끄러운길을 조심조심 걸어 보급소까지

갔습니다. 오는길이 미끄러워 넘어질뻔 했지만 다행히 엉덩방아를 찧진 않았습니다.

한무더기 신문을 왼손에 끼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눈길이 미끄러워 뛰지는 못했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얼음 미끄럼도 타기도 했습니다.

 

대충 신문을 다 돌리고 연수네 동네로 들어섰습니다. 새벽가로등이 켜져있는 연수네

집앞에서 신문을 접은다음 예전처럼 대문틈에 끼워넣었습니다. 오늘도 연수네 방은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연수네 대문에 신문을 끼워넣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소리인지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니 대문에 끼워두었던 신문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신문을 잘 접어서 대문에 끼워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뒤돌아 가려고 하니까 다시 신문이 툭 떨어졌습니다. 나는 이상해서

신문을 끼워두었던 대문을 잘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이상한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도깨비가 장난을 치는것 같습니다.

 

세번째로 신문을 끼워넣었지만 역시나 신문은 툭하고 떨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신문을 다시 접어 끼워넣는 척 하다가 대문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런데 대문안에서 누군가가 숨을 참으며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누가 일부러 나를 놀리는것 같았기 때문

입니다.

 

        "안에 누구야. 사람 놀리는게..."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계속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신문돌리는 아이라고 놀리는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금 무서워서 떨리는 목소리지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안에 누구냐니깐..."

 

그러자 대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대문 안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아닌

연수였습니다. 연수는 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연수야..."

         

        "큭큭... 미안해 민우야... 놀려서... 큭큭"

 

나는 너무 놀라고 창피해서 그자리에서 도망쳐 나오고 말았습니다. 내 뒤로 연수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난 그냥 달렸습니다. 눈길이 미끄러워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연수가 보고있을텐데...

 

하루종일 나는 새벽에 보았던 연수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연수가 어떻게 거기

있었을까요? 내가 신문을 돌리는것을 연수가 알고 있나 봅니다. 나는 연수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신문을 돌리는 내 모습을 연수가 보고 많이 실망했겠지요?

그런데 또 내일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신문돌리는것을 그만둬야 하는걸까요?

나는 오후에 신문 보급소로 갔습니다. 소장님께 그만 둬야 겠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보급소를 찾아갔지만 소장님께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십니다.

 

        "민우가 그만두면 사람이 없어서 안되는데... 다른사람 구할때까지만

        계속 해야해... 아니면 민우가 다른사람을 구해오던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신문돌릴사람을 구할 수 있나요. 무거운 발걸음을 한 채로 다시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오늘 새벽에 보았던

연수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오빠, 무슨 걱정있어?"

         

        "아냐..."

         

        "그런데 왜 밥도 안먹구 그래?"

         

        "넌 몰라두 돼"

         

        "치... 말하기 싫으면 관둬라. 난 누렁이랑 마실나갈꺼다"

 

혹시 내일도 연수가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연수네집은 신문을 넣지 말고

그냥 지나갈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잠도 제대로 오지 않습니다.

 

다음날 새벽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습니다. 보통때는 겨우겨우 졸린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신문

돌리러 가기가 싫습니다.

 

신문을 돌리면서도 내내 연수 생각이 났습니다. 연수네 집에 신문을 넣을 순서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그만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났습니다. 그러다 결국 연수네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보통때보다 훨씬 늦은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신문을 접어서 연수네 대문에 얼른 끼워넣고 뒤에서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뛰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연수네 집에 넣을 신문을 미리 접어서

손에 들고 연수네 집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가슴이 자꾸만 쿵쾅쿵쾅 뜁니다.

 

그런데 연수네 집 앞에 누군가 쭈그리고 앉아있는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어서 신문을

넣고 뛰어갈 생각으로 자세히 보지 않다가 신문을 넣으려고 가까이 갔을 때 그 사람이

연수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옷도 두껍게 입지 않고 연수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연수야..."

         

        "오늘은 좀 늦었네?"

 

날씨가 추워서 볼은 발갛지만 웃는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그자리에서 다시 도망갈까 하다가 연수가 너무 추워하는것 같아서 도망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에 웬일로..."

         

        "민우 너 보려구 기다리고 있었지"

         

        "옷도 두껍게 입지 않고..."

         

        "금방 올줄 알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춥다구 옷입으러 집에 들어갔다가

        그때 민우 네가 왔다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있었어..."

         

        "연수야..."

 

나는 연수에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연수는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수의 모습을 보고 나도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왜 뛰어갔어?"

         

        "어... 그냥..."

 

        "미안해... 많이 놀랐지?"

         

        "그런데 오는거 어떻게 알구?"

         

        "다 아는수가 있어"

 

나는 손에 들고있는 신문꾸러미가 창피해서 슬그머니 등뒤로 숨겼습니다. 오늘같이

내가 창피했던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그동안 매일 신문을 돌릴때마다 연수가 보고싶긴

했지만 이렇게 정말 신문을 돌리다 만나고 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춥지 않아?"

         

        "아니 별루... 뛰어다녀서 춥진 않아... 그런데..."

         

        "그런데 뭐?"

         

        "우리동네 놀러왔다가 집에와서 혼나지 않았어?"

         

        "사실은.... 조금 혼났어.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

         

        "아니... 조금..."

 

괜히 나때문에 연수가 혼난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미안해 나때문에 괜히 혼났네..."

         

        "아냐... 내가 잘못한걸 뭐..."

 

추위때문에 연수의 콧잔등이 빨개졌습니다. 이렇게 있다간 감기걸릴것 같았습니다.

 

        "연수야 그만 들어가. 추워서 감기걸려..."

         

        "괜찮아 조금만 더 있다 들어갈께..."

         

        "그러다 엄마한테 또 혼나면 어떻게 해"

         

        "괜찮아... 그정도 혼나는건..."

 

나는 내가 입고있던 잠바를 벗어서 연수에게 주었습니다. 연수는 그 옷을 걸치고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야... 따뜻하다... 그런데 민우 춥지 않아?"

         

        "괜찮아... 나는 남잔데 뭐..."

 

하지만 추운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연수앞에서 춥다고 할 수는 없을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신문 돌리는거야?"

         

        "응... 그냥 운동삼아서 하는거야. 새벽에 운동하면 좋다잖아..."

 

나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려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괜히 운동하는 척 연수앞에서 달리는

시늉도 해보였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민우 튼튼해지겠네?"

         

        "그러엄... 요즘엔 우리동에 세바퀴나 돌아도 하나도 안힘들어"

         

        "야... 좋겠다... 그럼 나두 매일 운동해야지..."

 

다행히도 연수가 내 모습에 실망하는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위해서

신문을 돌린다고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연수가 실망할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창피하던 생각도 이젠 많이 괜찮아 졌습니다. 등뒤로 숨겼던 신문도 다시

옆구리에 끼웠습니다. 이제 몇집 남지않은 집만 돌리면 됩니다. 연수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나머지 집에 신문을 돌렸습니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신문을 돌리다 연수네 집을 쳐다보니 2층 연수방에

불이 켜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길을 열심히 달리는 나를 누군가가 창문앞에서 바라보고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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