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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15 ㅣ No.1496

학문(學問)에 대하여

 

베이컨

 

학문은 즐거움과 장식(裝飾)과 능력(能力)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 주로 즐거움으로서의 학문

의 효용(效用)은 혼자 한거(閑居)할 때 나타나고, 장식으로서의 그것은 담화(談話)를 할 때 나타

나며, 능력으로서의 효용은 일에 대한 판단과 처리에서 나타난다. 일에 숙달한 사람도 일을 하

나하나 잘 처리하고, 개별적(個別的)인 부분을 잘 판단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에 대

한 전반적(全般的)인 계획(計劃), 구상(構想), 정리(整理)에 있어서는 학문 있는 사람이 제일 낫

다.

학문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태만(怠慢)이다. 그것을 지나치게 장식으로 쓰는 것은

허세(虛勢)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학문적인 법칙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학자들의 버릇이다.

학문은 사람의 천품(天稟)을 완성시키지만, 사람의 경험(經驗)에 의하여 학문 자체도 완성된

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의 천부(天賦)의 능력은 마치 천연 그대로의 식물과 같아서 학문

으로 전지(剪枝)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학문도 사람의 경험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으면 그 제

시(提示)하는 방향이 너무 막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輕蔑)하고 단

순한 사람은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利用)한다. 곧 학문의 용도(用途)는 학문 자

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학문을 떠난 학문을 초월(超越)한 관찰로써 얻어지

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지혜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반대하거나 논박(論駁)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또는 믿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혹

은 담화나 논의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오직 재량(裁量)하고 고찰(考察)하기

위하여 독서하라. 어떤 책은 그 맛을 볼 것이고, 어떤 책은 그 내용을 삼켜 버릴 것이고, 어떤

소수(小數)의 책은 씹어서 소화할 것이다. 이는 곧, 어떤 책은 다만 그 몇 부분만을 읽고, 어떤

소수의 책은 정성껏 주의해서 통독(通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책은 또 대리(代理)로 하여

금 읽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발췌한 것을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수롭지 않은 내용, 저급한 종류의 책에 한한 이야기다. 이 밖의 경우, 개요(槪要)만을 추출(抽

出)한 책은 마치 보퉁의 증류수와 같아서 무미건조한 것이다.

독서는 충실한 사람을 만들고, 담화는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문필(文筆)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글을 적게 쓰는 사람은 기억력이 강해야 하고, 담화를 별로 않는 사람은 임기

응변(臨機應變)의 재치가 있어야 하고, 독서를 적게 하는 사람은 므로는 것도 아는 것처럼 보일

만한 간교(奸巧)한 꾀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시(詩)는 지혜롭게 하며,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자연 과학은

심원하게 하며 윤리학은 중후(重厚)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사학(修辭學)은 담론(談論)에 능하게

된다.

’학문은 발전하여 인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학문으로 제거할 수 없는, 지능의 장해

(障害)란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육체의 질병에 대하여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적합한 운동이

있는 것과 같다. 예컨대, 투구(投球)는 결석병(結石病)에 좋고, 사격은 폐(肺)와 가슴에 좋으며,

가벼운 보행은 위에 좋고, 승마는 머리에 좋은 것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만일 머리가 산만하면 수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실제로 수학

을 풀 때 머리가 조금이라도 헛갈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식

별력(識別力)이 없고 차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스콜라 철학자(哲學者)들을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머리털 하나라도 잘라 보려고 하는 치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를 제시할 능력이 불충분하다면, 법(法)의 판례(判例)를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

이 모든 정신적 결함(缺陷)에는 거기에 알맞은 각각의 특수한 요법이 있는 것이다.

 

<낱말 및 어구 풀이>

1) 전지(剪枝) : 가위로 가지를 자름.

2) 논박(論駁) : 잘못된 것을 공격하여 말함.

3) 재량(裁量) : 짐작하여 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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