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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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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20 ㅣ No.1538

아름다운 집, 그집

 

김용택

 

 

하늘 아래 아름다운 집 그 집은

아버님이 지으셨다.

아버님은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며

곧고 푸른 솔나무를 베어 말렸다가

지게로 하나하나 져날라

빈터 그늘에 차곡차곡 쌓았다.

기둥과 서까래와 상량 나무와 개보와 마루 판자감이 몇 년 만에

다 모이자

아버님은 목수를 불렀다.

 

잘 마른 소나무에 검은 묵줄이 까맣게 튕겨지고

하얀 속살이 깍이고 잘리고 환한 구멍들이 뚫렸다.

붉은 조선소나무 무늬가 보이는 대패밥,

붉은 나이테가 보이는 나무토막으로

모닥불을 놓아두면

동네 사람들이 저저로 하나둘 모여들어

하루 종일 집 짓는 구경들을 햇다.

어떤 어른은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루 종일 우리지벵서 술도 먹고 밥도 먹으며

온갖 연장으로 지게도 만들고 쟁긱도 만들었다.

하얗게 다듬어져 쌓인 나무 옆에서

파랗게 타오르던 연기

꼬불꼬불 조선소나무 무늬가 타던 불꽃.

 

아버님은 강변에서

보는 족족 모아 두었던 주춧돌을 가져왔다.

기둥이 검은 산에 하얗게 수직으로 일어섰다. 사방으로 기둥을 세우고

뚝딱뚝딱 나무메로 두들겨 집을 맞추어갔다.

방이, 마루가, 부엌이 하얗게 그려졌다.

아, 하얗게 깎인 나무들이 그려내는 집 모양이

깊은 산그늘 속에 둥 떠올랐다.

상량떡을 먹고 사까래가 올라가자

동네 사람들이 지게 지고 괭이 들고 삽 메고 모여들었다.

닥채로 지붕을 엮어 덮었다. 다시 그 위에 장작을 얹어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논흙이 올라갔다.

사람들은 텃논에 흙구덩이를 내어

마당에다 쌓고

그 위에 짚을 썰어 섞고 물을 부어 흙을 맨발로 밟아 이겼다.

머리통만한 흙덩어리를 만들어

지붕 위로 휙휙 던졌다.

점점 하늘을 막았다.

흙을 밟아 이기는 흙 속의 굳센 발,

어기영어기영 휙휙 흙덩이를 던지며

가뿐가뿐 받던 아름다운 손,

웃고 떠들며 쉬지 않던 입,

공만한 흙덩이 하나가

마지막 하늘을 막았다.

나는 큰방 자리에 서서

잠깐 캄캄했다.

지붕에 저릅대로 만든 날개가 올라가 덮혔다.

아버님이 달빛이나

새벽빛으로 엮은

날개가 지붕을 덮자

노랗고 따뜻하고 등그스름한 초가 지붕이 되었다.

대나무로 벽을 엮어 흙을 바르고

잡작잡작한 구들장이 놓여지고

방에 불이 들어가고

굴뚝에서 연기가 솟았다.

방마다 흙에서 뭉게뭉게 김이 나고

흙냄새가 잡안 가득 피어올랐다.

집, 아, 아름다운 동네 사람들의 생각과 손과 발, 온몸을 만들어진

그 집, 그 집 지붕 위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해와 달이, 별들이 떴다

지곤 했다.

눈이 내려 쌓이고 고드름이 얼고

비가 내렸다.

구렁이, 참새, 쥐, 굼벵이들이 그 집에 집을 지었다.

그 집에는 소, 개, 돼지들이 깃들어 살고

그 집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세 명의 남동생과 두명의 누이가 살았다.

 

그 집에서는 산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마루에 누워도 물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물을 차고 뛰는 하얀 물고기들의 저녁 놀이가 보인다.

 

아이들이 크고 세월이 갔다. 그 집에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집을 지은 아버지는

그 집 큰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솔나무를 베어 왔던 그 산에 등그렇게 묻혔다.

 

아, 아름다운 그 작은 집, 그 흙집에서 나는 지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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