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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곤 [gothomas] 쪽지 캡슐

2004-04-14 ㅣ No.3742

배론성지 추천

 

 배론성지

 

  자주는 아니지만 가톨릭 성지를 순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지가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이다. 물론 성지 순례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고 신앙 선조들의  신앙의 흔적을 찾아보고 자신의 신심을 높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풍광이 좋고 보물급의 문화재라도 접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사실 불교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불교 신자 아닌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심지어는 신부님, 수녀님들의 모습(이분들은 복장이 특이하여 쉽게 할 수 있다)도 자주 뵐 수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우리 나라의 경관과 문화재를 감상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문화재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다. 나같은 범인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낡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았을 때, 무슨 신라 천년의 미소가 서려 있다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박물관에서 처음 봤을  때의 실망감은 보통 사람들은 다 한번쯤은 겪었으리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비싼 입장료를 내면서 사찰을 찾는다. 거기에는 단순한 문화재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근함이랄까, 신비감이랄까. 그 어떤 매력이 불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사찰로 끌어대는 것이리라. 물론 천년 이상 된 불교 사찰과 이제 몇 십년 밖에 안된 가톨릭 성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100년쯤 후에는 스님들도 가톨릭 성지를 찾아 포근함을 느끼고 감흥을 받을 터이니···

  이런 점에서 배론 성지를 추천한다. 아직까지는 천년 고찰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아마 그것은 배론 성지의 지형적 특성에서 오는 것이리라. 배의 바닥 형태를 닮았다는 말 그대로다. 또한 아기자기한 조경은 아직까지는 인공의 냄새가 가시지는 않지만  다른 성지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 배론 성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학교라는 신학당이 복원되어 있다. 규모가 생각보다는 작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오히려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 옛날 첩첩산중의 산골짜기에 이런 오두막에서 참 진리를 찾아 공부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금은 여담이지만 당시 우리 선조들은 몸집이 꽤나 작았나 보다. 그 좁은 방에 여럿이 공부할 수 있었으니....

  그리고 이 신학당 옆에는 황사영(알렉산델)이 백서를 썼던 토굴이 복원되어 있다. 꺼져가는 신앙의 등불을 지키고자 그 어두침침한 토굴에서 순라꾼의 눈을 피해 13,000여자의 세필 하나하나에 담겼던 그분의 피와 땀 냄새가 지금도 풍기는 싶어 그냥 지나치기엔 현재의 나가 너무나 사치스럽다. 언제가 절두산 성지에서 보았던 백서의 원본이 눈앞에 어른거려 절로 무릎을 끓게 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양업 신부의 묘소이다. 아시다시피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로서 실제 사목을 했던 최초의 목자이다. 어떤 점에서는 김대건 신부보다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도 볼 수 있다. 얼마 전 교황청으로부터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심사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순교자가 아닌 경우 시복시성에는 기적 심사가 필요하다 하며 최양업 신부의 전구에 의한 기적도 수집을 하고 있다 한다. 그러니 지금 영적, 심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한번쯤 최양업 신부의 묘소 앞에서 신부님의 전구를 구해봄직도 하다.

이외에도 십자가의 길, 무명 순교자의 묘, 박물관 등 많은 것들이 있으나 인터넷 등에서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기에 생략한다.

  

 이제 성지에서 미사(11시 반)와 식사를 끝내고는 고속도로(서제천)로 들어가 남제천 나들목을 나와서는 청풍, 월악산, 충주 방향으로 차를 몰아 드라이브를 하여 보라. 10여 Km를 달리면 기암괴선의 바위산에 다다르게 된다. 깍은 듯한 바위산이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게 있어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또한 인공폭포의 아기자기함이 이국적 풍취를 더해준다.

  사진을 한 장 찍고서는 다시 청풍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아라. 이제부터가 진짜다. 30여Km에 걸쳐 벚꽃의 터널이 이어진다. 무릉도원이란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게다. 여태 많은 벚꽃들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지천으로 열병식 하듯이 길게 늘어진 것은 처음 본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지라 여타의 풍경은 감상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이건 봄의 경우이고, 다른 계절에는 또다른 묘미를 준다. 아기자기한 시골 풍경, 그리고 충주호의 비경 또한 놓칠 수 는 없다. 하지만 역시 봄의 풍광이 가장 뛰어나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리라.

  그리고 여유가 조금 있다면, 충주호 수몰지역에서 옮겨 놓았다는 청풍문화단지도 둘러봄직하다. 옛 시골의 양반가 마을의 흔적을 원형 그대로 볼 수 있어 애들과 함께 간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또한 문화단지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충주호의 장관도 우리를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조금 늦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 월악산 미륵사지터도 가볼만하고, 그 부근의 유명한 손두부집에서의 전통두부도 맛볼 수 있으리라....

  어쨌든 계속 벚꽃과 충주호의 경관에 빠져 달리다 보면 충주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면 생각 외로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나의 경우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집에 오후 다섯시 30분 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길치라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한 시간 가량 허비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여러분들은 보다 풍요롭고 운치 있는 성지순례와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꼭 한 번 가보시길, 특히 4월 중순에 가보도록 적극 추천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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