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12월23일 성 요한 칸시오 증거자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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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0-19 ㅣ No.707

 

축일 : 12월23일(10월 20일)

성 요한 칸시오

 J.Cantius

증거자 폴란드 (1390-1473)

 

그는 1397년, 폴란드의 끄라꼬시에서 가까운 깐시오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창설된지 얼마 안된 끄라꼬 대학에서 철학, 신학을 배워 박사학위를 얻고

신부가 되어 교수로서 교단에서는 한편, 부근에 있는 이루씨촌의 교회를 다스렸다.

그러나 쌍방일을 겸임하고 있으면 충분히 책임을 완수치 못하므로 당국에 청하여

본당 신부를 면하고 오로지 신학교의 교수로서 전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말로만 신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덕으로 그들을 감화시키고 사제생활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한편 그는 자비심도 두터웠다. 그는 자기의 의식을 돌보지 않고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하루는 자기 구두까지 벗어

남에게 주고는 자기는 맨발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요한은 그 후 성지 빨레스띠나와 로마를 순례할 계획으로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이를 여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행으로 생각하여 맨발로 거닐며 자기는

이런 고행으로 현세에서 미리 연옥벌을 갚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 도중에 산적이 나타나 "돈을 내놔라!"하니 그는 가진 것을 전부 내놓았다.

"이것 뿐이냐?" "예, 그것 뿐입니다." "좋아, 그 사람 솔직한데, 생명만은 구해 주마. 하고 그냥 가버리자 성인은 몇 발자국 걸어가다 문득 생각하니 아직 옷 속에 꿰메 넣은 비상금이 다소 남은 것에 생각이 갔다. 그는 앞서 산적에게 돈이 그것밖에 없다고

한 것이 마음에 꺼려 곧 그 뒤를 쫓아가며 산적을 부르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손님 아까는 미처 생각이 안 났었는데, 여기 돈이 또 남아 있읍니다. 이것도 받으시오."하며 돈을 내밀었다. 산적이 가만히 보아하니, 농담이 아니고 정말 마음에서 전에 말 잘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태도였으므로 산적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흉악한 산적이라도 그 마음 한 구석에 가뭇거리는 양심의 씨가 붙어있는 터이라, 이 순박한 사람의 마음씨와 자기의 흉직한 소행, 이 양자를 마음 속에 비교해

볼 때 그는 갑자기 가슴이 무너지는 듯 후회의 감정이 용솟음쳤다.

산적은 즉석에 땅에 엎디어 깊이 사과하며 빼앗은 돈을 전부 내어 주었다.

이것이 ’요한 깐시오’에 대한 유명한 일화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거짓을 싫어하는 그인지라, 또한 남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기도 극히 꺼려하여, 식당의 벽에다 ’비방 일절 사절’이라는 글을 써 붙였다 한다. 이런 생활로 그가 노년에 접어들어 자기의 죽을 날이 가까움을 알자 가진 바 모든 것을 빈민에게 희사하고 고요히 임종 준비를 하여 1473년 성탄 전야에 67세로 마침내 잠자듯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분묘에서는 많은 기적이 있었고, 교황 끌레멘스13세는 그를 성인반열에 올리었다.

 

성인은 폴란드의 주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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