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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그남자의 사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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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zian] 쪽지 캡슐

2000-02-26 ㅣ No.4443

그여자, 그남자의 사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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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

 

토요일 오후. 모처럼 사무실에서 야유회를 간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

오랫만에 산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 마음부터 여유로워진다.

그여자? 가던지 말던지 난 상관없다. 괜히 여자들이 산에 따라가면 귀찮기만하다.

힘도 못쓰면서 따라와서는 붙잡아서 올려주고 힘들다고 시간지체하고, 정말

골치거리다. 그래도 난 상관없다. 여자들이랑 같이 다니지 않을거니까.

 

토요일 사무실 일과가 끝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서울인근 산으로 향했다.

흠. 저여자도 가는군. 누구랑 같이 다닐지 불쌍하다. 옆에 민수란놈이 얼쩡거리는

걸 보니까 둘이 같이 붙어다닐 셈인가부다. 잘들논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산에 올라가는덴 더없이 좋은날이다.

남들 올라가기 전에 어서 챙겨서 먼저 올라가야 겠다. 사람들 꽁무니 따라가려면

답답해서 못올라간다.

민수놈 옆에서 그여자가 나를 보며 아는척 한다. 못이기는 척하며 눈인사만 했다.

괜찮다. 난 신경쓰지 마라. 괜히 사람 불쌍하게 만들지 말구. 여기서 괜히 아는척

했다간 애매하게 세명이서 산에 올라갈 수 있다. 여자하나에 남자 둘이나 붙어서

산에올라가는거 생각만 해도 어색하다. 으...

 

제일 먼저 배낭을 단단히 매고 산으로 올랐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그여자

 

오늘은 윤미와 같이 산에 올라가야 할것 같아요. 영철씨도 훌쩍 먼저 올라가 버렸고

오민수란 남자는 제 옆에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누가 자기랑 같이 올라가고 싶다구

했나? 떡줄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구요.

 

"윤미야. 너 산 잘타지?"

 

"그럼 언니, 내가 별명이 다람쥐 아뉴"

 

"잘됐다. 나랑 같이 가자"

 

"그러지 뭐. 나만 따라오면 돼"

 

호호, 저 오민수란 사람이 뒤에서 어정쩡하게 따라오네요. 가자 윤미야.

 

하늘도 맑고, 공기도 좋고, 옆에 윤미대신 멋진 남자 하나 있으면 정말 좋을것

같은데요. 그남자는 먼저가버리고... 미안해 윤미야...

그남자는 성큼성큼 앞서 올라가더니 이젠 보이지도 않구요.

높이 올라갈 수록 점점 더 땀이 나고 베낭이 무거워지는것 같아요.

어머, 윤미 지가 다람쥐라고 하더니 무슨 다람쥐가 저래. 나보다 산을 못타네요

 

"너 다람쥐 맞어?"

 

"응... 날다람쥐. 히히"

 

이런, 내가 속았군요. 지지배.

 

 

그남자

 

누가 그랬던가. 산을 오르는 이유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나에게 산을 왜 오르냐구 물어본다면 야유회가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지.

음. 내가 생각해도 썰렁하다. 앞으로 그러지 말자.

높이가 높아질수록 공기도 맑아지고 눈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이 정말 조그맣게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산에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길렀다지. 난 산을 오르면서 가루지기를

한번 길러볼까? 흐흐흐...

 

중턱 쯤 올라 물을 마셨다. 시원하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꼬물꼬물 사람들이 올라온다.

그여자도 낑낑대며 올라오는게 보인다. 그뒤엔 민수놈이 따라온다. 내 저럴줄

알았다. 여기서까지 저렇게 티를내야되나. 눈꼴시다.

저꼴 보기 싫어서라도 어서 올라가야 겠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일등이다. 올라가서 야호라고 할까 엄마라고 할까.

야호가 낫겠다. 엄마는 무슨 엄머냐. 무슨 유격훈련도 아니고...

애인이 있으면 애인이름을 부르겠지만... 하긴 그것도 쪽팔리다. 흐...

 

 

그여자

 

헥헥헥... 정말 산에 올라오는건 싫다구요. 누가 야유회를 산으로 오자구 그랬죠?

윤미는 얼굴이 하얘져서 올라오네요. 내가 도움을 좀 받을까 했는데 오히려 내가

끌고 올라오고 있다니까요.

그래도 올라온 보람이 있네요. 정상이 이제 손에 잡힐것 같이 가까와 졌어요.

그남자는 벌써 정상에 올라가서 바위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군요.

치. 같이가려구 했더니...

 

모두들 정상에 모여서 야호를 외쳤지요. 가슴이 시원해지는게 이런 기분때문에

산에 올라오는가봐요.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네요.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모두들 둘러앉아서 맛있게 먹었지요. 시장이 반찬이라죠?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정말 장난감처럼 보여요. 왔다갔다 하는 차들도

장난감들이 돌아다니는것 같구요.

옛날 사람들은 산에 올라와서 호연지기를 길렀다는데 호연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쾌한 기분은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산을 잘 타시나봐요?"

 

"쪼금 할줄 압니다"

 

"그러면 저좀 도와주시지 왜 혼자 올라오셨어요?"

 

"그건..."

 

호호, 대답을 못하는군요. 내려갈땐 같이 내려가자고 얘기해 볼까요?

그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먼저 후다닥 내려가버리네요. 나참, 내가 뭐라구 그랬나 뭐

그래, 잘가라, 나도 내려 갈줄은 안다. 그런데 왜 민수란 남자는 또 히죽거리며

오는거죠? 윤미야 우리끼리 빨리 내려가자.

 

 

그남자

 

왜 저여자가 괜히 나한테와서 얘기를 거나 모르겠다. 민수는 어떻게 하고 나한테와서

저러나. 정말 알 수 없는 여자다. 둘이서나 재밌게 놀면 됐지 왜 나는 끌어들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저여가자 같이 내려가자구 그럴까봐 먼저 후다닥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그걸 아는 사람은 산을 아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는것만 하면

되는걸로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내려올때가 힘이 더 드는 법이다.

근데 저여자가 그걸 알까? 미리 얘길 해줄껄 그랬나보다.

신경쓰지 말자. 알아서 잘 내려 오겠지 뭐. 민수도 있는데...

 

정상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나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금 있으면 해가넘어가

어두워질것 같다. 위에서 아직 내려고고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야 할텐데..

산이라서 해도 일찍지는데... 모르것다. 먼저 내려가자.

 

 

그여자

 

날씨가 벌써 어두워지고 있는것 같아요. 서둘러서 내려가야 겠어요.

윤미 쟤는 올라갈때도 늦더니 내려올때는 더 늦네요. 어휴. 속터져...

오민수씨는 내가 오늘 상대해주지 않는것에 화가 났는지 성큼성큼 먼저 내려가

버렸어요. 호호. 남자들은 다 저렇다니깐... 그러길래 내가 언제 자기 좋다구

말했나요 뭐. 혼자서 북치구 장구치구 다 하다가 자기 맘대로 안되니까 화만내네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어요. 아직 반도 내려오지 않은것 같은데 앞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요. 다른사람들은 전부 내려간것 같은데...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 서둘러서 내려올걸 그랬나봐요.

 

종종걸음으로 산아래로 뛰다싶이 내려왔어요.

윤미도 뒤에서 언니 같이가를 연신 외치며 따라오네요.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하는것 같아요...

 

어머... 엄마~~~ 으아악~~~~~~~~~~~~~~~

 

 

또다시 윤미의 사정

 

어머 이게 무슨소리죠? 앞서가던 희정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컴컴해져서 앞도 잘 분간이 안갈것 같은데 큰일났네요.

어머. 이걸 어째요. 길을 잘못들어서 옆에 수풀 낭떠러지로 떨어졌나봐요.

언니, 언니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어요. 이걸 어쩌죠? 도와줄 사람도 없고

사람살리라고 소리쳐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내가 내려가 볼까요? 아냐. 내가 내려가 봤자 별루 도움이 안될지도 몰라요.

차라리 산 아래로 내려가서 사람들 도움을 기다리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거의 아래까지 내려온것 같은데 빨리 다녀와야 할것 같아요.

언니 잠깐만 기다려... 소리를 지르고 서둘러 뛰어 내려갔지요.

 

산 아래에 사무실 사람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예요. 몇몇 나머지 사람들만

돌아갈 채비를 하네요. 그래. 저기 오민수씨가 보이네요. 뭐? 사람들을 모아놓고

2차로 나이트를 가자구요? 내참 우릴 버리고 먼저 내려가더니 뻔뻔하기는...

지금 그럴때가 아니라니깐요...

 

"그래요? 희정씨가 어디서 떨어졌는데요?"

 

"중턱쯤에서요. 빨리가야돼요. 같이 올라가요"

 

"잠깐만요. 지금은 어두우니까 차라리 119를 부릅시다.

우리같은 아마추어가 갔다가괜히 일이 더 커질 수 있으니까"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언니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구요"

 

"그래도 우리가 직접 올라가는건 좋은 방법이 아닌것 같은데요.."

 

이사람이 정말. 희정 언니를 졸졸 따라다닐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이렇게 발뺌을

하는거죠?

 

"그리고 난 지금 발목이 삐어서 걸을수가 없다구요..."

 

발목삐었다는 사람이 나이트는 갈 수 있나부죠?

 

"어디예요? 갑시다"

 

어머, 영철씨가 정리하던 베낭을 제치고 따라나서겠다네요.

 

"저기 중턱쯤이예요"

 

"나한테 플래쉬가 있으니까 갑시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우리를 멍청한 눈으로 오민수란 작자가 보구 있군요.

 

 

그남자

 

내 이럴줄 알았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어딜가나 사고만 친다. 조심해서 내려오라고

말해줄걸 후회가 좀 된다. 그러나 저러나 많이 다친건 아닐까?

밑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이야기 해 놓고 윤미씨와 이미 어두워진

산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혹시 많이 다쳤으면 어떻게 하지?

둘 사이가 꼴보기 싫어도 내가 좀 같이 따라갔어야 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엄청

후회된다.

괜히 나때문에 그여자가 다친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난다.

치...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눈꼴 사납게 하고 다니랬나 뭐...

 

빨리 그여자를 찾아야 한다. 뒤에서 윤미씨가 같이가자고 소리지르지만 난 지금

천천히 갈 수 없다.

 

"희정씨... 희정씨... 어디 있어요?"

 

"희정언니... 언니..."

 

희정씨 제발 다치지 마요. 내가 지금 올라가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고 있어요.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구요. 내가 갈 때까지 꼭 정신을 차리고 있어요.

 

젠장. 마음은 왜이렇게 조급해지는걸까.

하나님, 그여자 트럭으로 실어다 주면 가질테니까 제발 다치지만 않게 해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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