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아, 잔인한 오월 (찔레꽃 피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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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웅 [sewoongoh] 쪽지 캡슐

1999-05-14 ㅣ No.426

 딴지일보에서 퍼온 젊은 사람의 언어로 썼으나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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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아주 쪼만한 나이에 솜방망이처럼 가슴 두둘기며 좋아한 넘이 있었지.
 뽀오얗고 갸름한 얼굴을 한, 나보다 한살 많은 그 넘이 어린 마음에도 워찌나
 지적으로 보였던지..., 콩닥콩닥 어린 마음에 기양 왕자로 보인거였어.
 글타고 백설 공쥐도 아인 내가 왕자를 마냥 애타게 기릴 수도 없어서
 (공쥐들은  늘 왕자를 기다리니까), 걍 "왕자여! 니 기둘리는 공쥐한테나 가라~"하는
 심정으로  내 할일이나 열심히 하고 살았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일찌기부터
 포기하는 게  빠른 뇬이었어. 포기하믄 잘 뒤돌아 보지도 않는 머 그런 뇬~,
 우찌 보믄 독한 뇬이었쥐.

 그런데 말이쥐, 머든지 비워나야 들어올 게 들어온다고, 마음을 비우고 있으니
 그 넘의 마음이 스스로 나를 채우러 들어오는 것이었어. 아 벅차오르는 희열.
 그날은 쪼만한 우리들과 좀 더 큰 걔네들과 함께 더 큰 넘(분)들의 지도를 받으며
 들로 나갔어. 그거이 봄소풍을 가장한 필드에서의 공부였지만, 그 때만해도
 자유라는 거 말만 들어도 숨쉬기하기도 벅찬 울들에게는 얼매나 가슴 벅찬 공기였던지.
 신록의 푸르름과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과 풀잎들, 온몸이 기양 햇살에 부서져 버렸으믄
 싶은  화사한 빛줄기들, 반짝이는 강물.....,그리고 우리네 거친 들 곳곳에서 피어나는
 하이얀 찔레꽃.
 쪼맨한 울들에게 그건 기양 "자유"라고 외치고 싶은 그 무엇이었어. 책상과 걸상에
 몸사이즈를  맞추어가며 교복속에 갇힌 몸을 뒤틀다가, 그거이 답답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수업을  받으면,기지바들이 예의가 없다느니 뭐니 하믄서 졸라 기합받고
 다시 꼬옥 끼는 교복에 호흡을 조절하며 허어연 분필가루 캘록거리는 교실에서
 노오랗게 지쳐가던 울들에게 그 쪼만한 울들에게, 그건 기양 어려울 것도 없이
 외치고 싶은"자유"라는 거였어.
 글케 행복해 하던, 백설공쥐도 아닌 기양 공쥐네 집 부억때기나 하믄 좋을 것 같이 생긴
 평범한 이 쪼맨한 뇬한테 그 왕자가, 글쒸  그 왕자가 물빛 고이 반짝이는 강가에서
 하이얀 찔레꽃을 불쑥 내미는 거 아니갔어. 우~쒸~, 그날의 그 떨림은 두번 다시 내
 인생을  찾아주지 않더구만... 그 하이얀 꽃잎들 사이로 포올포올 향기를 내 품으며
 내앞에 서 있던  그 넘의 아리한 얼굴이 언듯언듯 웃음으로 피어나고..
 근데 말이야, 너무나 좋아서 부끄러움이고 머고 따질것도 없이 찔레꽃을 덥썩 손아귀로
 받아든  나는 순간 "옴마야!"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이 어린 뇬이 찔레꽃이 장미과인
 먼지 우째 알았을 것이며  고거이 가시가 듬뿍 돋아있다는 것도 우째 알 수 있었으리오.
 내 손아귀에 몽창 까시가 박혀버린 거였지.
 그 까시는 5월의 그 아프고 화사한 기억을 안고 오래도록 남아서 그 넘과 이 쪼맨한
 뇬을 괴롭히더니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해인가부터 기억에서 사라져 갔어.
 가시는 워딘가 내 몸에 박혀서 살이 되어버리고..
 그 오월이야, 지금 그 쑥쑥 아프던 가시의 기억이 되살아는..


 이야기 둘

 작년 오월, 딴(당나라당 아녀~)나라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어.
 한국에 오겄다, 당근 한국 뇬인 니가 지를 안내혀야 헌다,당근 한국 넘뇬들이 잘아는
 푸라우드한 역사의 현장에  가고자프다.
 머 이런 내용이었지."오데 가고자퍼?" 역사의 현장이믄 경주 불국사? 석굴암?
 머 이런 씨잘데기 없는  질문을 하믄서 5월이믄 경주도 조오치비!. 하고 온갖 깨터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고뇬(분)이 고개를 쌀래쌀래  돌리며 하는 말이 "광주여~"
 그러는 거 아니갔니. "한국넘뇬들이 잘아는 푸라우드한 역사의 현장" 그리고 "광주".
 깨터는 소리를 하고 있던 나는 잠시 흡! 호흡을 멈추고 고 뇬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
 더 이상 깨털다간 망신당하기 딱  좋겄다는  현명한 순발력이 팍 발휘된 것이야.
 조올라 눈치 빠른 뇬, 포기가 빠른건 눈치가 빨라서이기도 할걸...!!
 결론은 그 역사의 현장을 내두 잘안다, 당근 나같이 생각있는 뇬이 안내혀야쥐...
 하믄서 그랴, 한국넘뇬들이 넘 잘아는 푸라우드한 역사의 현장이여.., 하믄서
 고뇬이 말한 꽤 개안은 단어들을 반복 나열하면서 날짜를 잡았고.

 고뇬(분)이 서울에 몇넘(분) 들과 도착을 하고, 나는 휴가까지 내서 광주를 향해
 출발했어. 화창한 5월에..
 차를 타고 요기조기 국도도 달리믄서 즐거워 하는 그 몇넘들의 얼굴을 보믄서
 나두 즐거워 했고...
 광주 가까이 들어서며 들판도 지나고 산자락도 지나고...근데 말야 하아얀 꽃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네!!!
 어~, 보이네! 기억이 보이네! 그 아름답고 아픈 하아얀 꽃들이 보이네!!!
 이제는 더 이상 콩닥거리지 않으리라던 가슴이 왠지 아지랑이처럼 흐물흐물 피어오르는

 설레임.
 난 줄곧 고놈의 찔레꽃 생각에만 젖어 같이 간넘들이 머라 묻던 기양 고개만 까닥까닥했지.  

 글구, 열분들도 너무나 푸라우도(?)하게 잘아는(?), 그 역사의 현장을 돌아봤어.
 영전들의 흑백 사진이 주욱 늘어선 고 장소에도 갔어.
 햇빛은 뜨거웠고 자꾸만 갈증이 났어. 왜일까, 왜 그땅은 자꾸만 나를 갈증나게 했을까.

 물을 들고 다니며 벌컥벌컥  마셨는데도..
 "역사의 현장"을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비데오를 봤어. 아이들이 엄마아빠 손잡고 앉아

 보고 있었어. 30대 40대쯤  되어보이는 엄마아빠들이 꽤 많았지.
 나랑 같이 간 넘들의 몇명의 눈가에 먼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손수건을 한넘두넘 꺼내기 시작하는 거였어.
 엄마아빠들의 얼굴에서도 햇살이 가시고 그늘이 내리기 시작했어. 아이들은 기양

 얌전해지고.
 난 멍청히 앉아 애써 그들의 눈가를 외면하려 애쓰면서 풀이 흔들리는 풍경으로 눈을

 돌렸지. 난 몇번인가 그 장소를 방문했었고, 갈 때마다 같은 풍경을 만났지.
 그리고 갈 때마다 소화장애를 일으켰지.
 광주에 가면 밥이 잘 안들어가는 거야. 먹은 것이 자꾸 언쳐. 고기서 살믄 난 다이어트고

 머고 필요없이 이뿐 몸매를  유지할 수 잇을 거야.
 몇번 말하지만 난 독한데가 있는 뇬이지, 한번 울믄 두번째는 안 울어, 두번째는 이를 갈지.

 세번째는  칼을 갈어, 네번째는..... 이게 중요혀. 그때가 네번째였는데 난 꽃을 본거여.
 찔레꽃을. 들에서 여기저기 피어있는 아프고 하아얀 찔레꽃을....
 그날 나는 그 사진들, 아버지의 영전을 들고 멍한 눈으로 서있는 꼬마와 그리고 곤봉으로

 맞아 쓰러지는 사람, 무릎을  꿇고 비는 아빠, 트럭위에서 바가지로 물을 들이키는 그

 처절한 시민군들, 여기저기 널려진 몸뚱이들, 진압을 위해 공포 분위기로 광주시에 진입하는

 공수사단 병력들, 통곡하는 어머니..., 그 사진들 뒤로 하아얀 찔레꽃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본거야.
 내눈엔 자꾸만 그 사진들 뒤로 꽃이 보이는 거야. 아프고 아리하고 가시깊은 찔레꽃이.
 쓰러지는 몸뚱이들, 흩뿌려지는 핏자욱들, 숨막히는 공포의 호흡, 그리고 허탈한 눈동자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벌벌 몸을 떨 때, 그 찔레꽃은 전국방방 들에서 하얀 꽃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났겠지.
 광주의 들에서도 저어기 대구 부산의 들판에서도..... 처연하게 소리없이 피어나고 있었을

 게야.  평화로운 꽃들의 풍경 뒤에는 왜 늘 아리한 아픔이 있는 걸까.
 아리한 아픔의 살에는 왜 늘 가시가 있는 걸까. 그리구 가시 몸뚱이의 살아있는
 것들은 왜 또 그렇게 고운 꽃을 피우는 걸까.

 서울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난 내몸안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찔레꽃을 보았어.

 다시 오월이네.
 그리고 낼 모레면 오월 중에서도 핏빛 선명한 아리한 오월이네.
 우린 정말 그 오월을 "푸라우드한 역사의 오월"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찔레꽃 고운 오월이 내 몸안에서 다시 아파오네.
 가시가 다시 살이 되어 가며 욱씬거리는 이 화사한 오월

 * 그들의 넋이 이 땅에 찔레꽃이 되어 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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