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다말, 공동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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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1-06-09 ㅣ No.2504

"여인 다말"은 처음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여인 이었는데..

 

다말이라는 이름이 갖는 뜻은 "야자나무, 종려나무(palm tree)"라 한다.

 

종려나무는 그 곳 지방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나무인데 그야말로 버릴게 없는 나무이다.

 

열매는 훌륭한 음식이 되어주고,  그 잎과 목재는 집을 짓는데도 쓰이고, 잎으로는 또한 바구니도 만들고, 또 남은 것은 땔감으로도 쓰고. 그들이 돌로된 집을 지을 때도 야자나무 문양을 새겨 넣었다한다. 종류가 2700종이나 된다하니 조금씩 변화는 있겠지만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심어있는  쭉  뻗어있는 그 나무 종류인 것 같다.  그쪽 나라에선 훨씬 클것이이다(쭉쭉빵빵^^).

 

버릴게 없는 나무인 다말은 그러나 버려져 친정으로 쫒겨가게된다(창세38,11). 그당시는 자식이 없으면 1) 씨받이를 하거나 2) 시동생의 씨를 갖는 방법을 통해 그 집안의 대를 이어갔다고한다(신명기25,5-10).  다말도  남편이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자 그 당시의 풍습대로  시동생을 통해 자식을 보려하지만 그 마져 죽고만다.

 

시아버지 유다에게 남은 막내 아들은 어리기도했지만 그 마져 죽을까봐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는 것. 대를 이을 수 없을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인데, 아직 막내 아들이 있는 상태에선(가능성이 있기에) 다말을 친정으로 쫓으면 안되는 것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친화력이 유다에게 객관성을 잃게 한 것.

 

그러나 이 유다는 여러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도 말렸었고(창세 37,26), 창세 44, 38 이하에 보면 아버지가 아끼는 동생 벤냐민을 보내고 자기를 잡아두라하던 정이 많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는데도 자식이 혹시 죽을까봐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모질게 대한 것.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창세 38,12) 친정에 가서 지냈던 그 시간을 성서에서는 이렇게 짧게 표현했지만 남편 둘씩 죽고 아이도 없는 여자가 친정에 어떻게 지냈을 지는 불보듯 뻔한게 아닐까. 시아버지가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을것이다. 막내 아들의 자식을 보라고.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를 동안 소식은 없고.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 탈출구는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왜 이렇게까지 해가며  자식을 보는 것이 중요하냐면 그 때의 여자는 옛 우리어머니의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보지 못하면 살아 갈 가치가 주어지지 않았었다한다. 요즘 여자들이 들으면 분개하겠지만(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말은 작전을 개시한다. 그녀에겐 전쟁을 치루듯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으리라. 목표물이 뜬다는 소식을 접수하고는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창녀임을 상징하며 저자거리에 나가 앉는다. 실지로 담보물을 요구해 받아냄으로써 훗날 위기를 넘기고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전쟁은 명분은  대를 잇는 다는데 있었다. 그 외의 윤리적인 판단이 끼어든 다는 것은 한가한 넉넉한 사람들의 입장이었으리라. 다말은 자신의 몸을 하나의 도구로 삼아야겠다 작정하지 않았나싶다. 공동체를 위해서 전쟁의 도구로. 그녀라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저자 거리에 나가 앉아있을 때 맘이 편했을까?  혹시 희망으로 설레었을 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종려나무가 쭉 뻗은 몸통을 만들며 주위의 자질 구레한 잎새는 다 떨궈버리고 맨 위에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것만 남겨두듯이. 그녀는 마지막 희망만을 생각했고 그것을 이루어낸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중에 "몸부림쳤다"고 하셨다. 절망 속에서의 몸부림. 어찌보면 시아버지인 유다보다도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깊었다고. 그녀의 그런 몸무림이 없었다면 유다지파는 사라져버렸을지도 몰랐을테니까.

 

또한 우리가 타인을 우리의 관습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 사람의 삶의 자리에 서 보면)  비난할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셨다.  다말을 이해하면 세상에 이해 할 수 없는 게 없겠다하시며..  운명은 미지의 것이며 (다말처럼) 만들어 가는 것이니 자꾸 미아리 고개에가서 알려고 하지말라셨다^^.

 

유다가 자신은 욕망을 해결하는 데 여자를 샀지만 며느리 다말이 임신을 하자 창녀짓을 한 것이라고 불태워 죽이라고한다(창세38,24). 간음한 여인을 죽이던 돌을쳐서 죽이는 것보다 훨씬 지독한 형벌이라한다.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두개의 잣대. 남자,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개의 잣대. 타인의 잘못을 도마위에 놓고 판정할 때는 우리도 그렇게 잔인해 질 때가 있지는 않는지..큰 울림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음주 목요일은 (6/14)"모세의 어머니, 파라오의 딸" 입니다. 출애 2장을 읽고 목요미사에 오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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