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불안한 마음에 힘을 빼앗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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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5-29 ㅣ No.4911

 

 

나는 오랫동안 전세계를 돌며 수많은 강연회와

수련회를 해왔다. 이럴 때마다 많은 이의 도움을

받는데 이 가운데 노스님 찬콩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든든한 수행 동반자다.

찬콩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대학에서 생물학

조교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녀는 베트남의 가난

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이후 찬콩 스님은 40여 년을 내 제자로 혹은 수행길에

함께 가는 친구로 늘 함께 했다.

플럼빌리지를 세울 무렵인 1980년대 초.

그녀는 베트남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들의 주소를 확보해 돈과 음식을 보내는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찬콩 스님에게 물었다.

"찬콩! 자네의 삶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대답했다.

"베트남 어린이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겁니다. 그 아이

들에게 보낼 음식을 포장하는 것오 즐겁구요. 그 아이

들 곁에 제가 있다는 느낌이 정말 행복합니다."

그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일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게. 자네가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 찬콩은 항변했다.

"그렇지만 이 가엾은 아이들의 주소를 아는 것은 저

혼자 뿐입니다. 제가 죽느다면 누가 이 아이들을 돌

보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걱정 마시게! 삶은 자네 대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하도록 길을 마련할 걸세!"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명감 때문에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까깝게도, 책임

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너무 많은 일을 한다.

연극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역할을 상징하기 위해

흔히 모자를 바꾸어 쓴다.

일은 우리가 쓰고있는, 또는 쓸 수 있는 많은 모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사는 일, 즉 지금 이 순간에

들어 있는 행복을 오롯이 맛보는 일이다.

 

성공한 회사 중역이었던 독일인 프레드릭은 일에 자신

의 전부를 내 주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선 조금

의 시간 도 내주지 않았다.

아내 클로디아와 아이들의 곁에 있어줄 시간도 물론 없

었다. 늘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몰아붙이는 것 같

았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해!’.

’더 멀리 나아가야 해!’

’더 높은 것을 추구해야 해!’ 라고 속삭이는 소리 때문에

그는 늘 바빴고 불안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도, 적절히 대응할 수도 없었다.

어린 아들이 환히 웃으며 다가왔을 때도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기적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을 안으면서도 그의 머리 속에는 늘 일과 회사 생각

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를 포옹할 때도 그는 온

전히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프레드릭이 노력을 전혀 안 한 건 아니다.

그는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외식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거기 존재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은 프레드릭만 몰랐다.

그는 함께 있어도 늘 부재중인 남편과 아빠였다.

그래서 클로디아와 아이들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클로디아도 남편의 그러한 태도를 이해하고 격려

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출세해서 많은 봉급을 받고 큰집

에 살게 되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실로

프레드릭을 돕고 싶었던 클로디아는 그의 일을 전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실제 클로디아는 남편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녀는 남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언제나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 때문에 부부의 방에는 밤늦

도록 불이 켜져 있곤 했다. 클로디아는 남편을 격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녀는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함께 나눈 대화의 일부분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

가 아니었다. 대화는 늘 프레드릭이 일하면서 맞닥뜨린

어려움과 비즈니스상의 불안과 두려움에 관해서 맴돌았다.

프레드릭은 아내와 밤늦도록 이야기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크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클로디아는 프레드릭을 이해했지만 더 이상 그와 나누는

대화가 행복하지 않았다.

프레드릭은 그 모든 고생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

해서 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너무 외로웠다.

아내 클로디아는 특히 더 외로웠다.

남편의 따스한 눈길과 관심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프레드릭으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마음이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남편을 탓할 수 없었던 그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바쁘게 재촉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잊으려 했다.

먼저 가족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그래도 외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자선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늘 집을 비우는 프레드릭이 그리웠다.

또 다음으로 그녀는 의대 대학원에 등록해 정신과 의사

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외로웠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국게 믿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다고 믿었다.

물론 프레드릭은 그 과정에서 원하는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행복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만으로

그토록 열심히 일한 것일까?

그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엔 자만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사실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래서 중요

한 결정을 내리고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란 것이 몹시

나 자랑스러워 자신을 더 채찍질한 것이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권력욕, 명예욕, 출세욕을 비롯해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프레드릭은 애석하게도 자신의 능력이나 시간에 한계가 있

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불어 사람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삶은 유한하지만 욕망은 무한하다.

어떻게 무한한 것을 담기 위해 유한한 것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클로디아는 그런 남편이 불안했다. 그녀에게 프레드릭은

회사의 중역이 아니라 그저 일에 사로잡힌 노예로 보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조금만 느리게 살라고 말했다.

그렇게 일만 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고 삶을 즐기라고 되풀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나중에 늙어서 은퇴를 하게 되면 그때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했다.

프레드릭은 멋진 이웃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원에 어떤 종류의 꽃이 피어있는지 몰랐다.

일은 그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온통 미래로 미루었다.

그는 또한 회사에서 자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자리에 없다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드릭에겐 남들처럼 늙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불과 51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에겐 은퇴의 기회조차 없었다.

자신을 대신할 사람은 절대 없을거라고 굳게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단 3일 만에 다른 사람을 찾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프레드릭을 대신해 남편이나 아버지,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었다.

현재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대부분의 삶을 진정으로 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었다.

 

프레드릭의 이야기로부터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일하는 사람들은 늘 바쁘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바쁘다.

영어에서 일이나 사업을 말하는 비즈니스(business)와

바브고 분주함을 말하는 비지니스(busyness)가 철자 한 자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을 보면 꼭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혹, 자신의 내면에서 자꾸만 생겨나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또는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들

은 바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진정한 자아를 못찾아 아직 힘의 근원에 닿지 못한 사람

들은 그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무기를 쉽게 차용

한다.

세상의 무기란 다름 아닌 명예, 돈, 권력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호하기는 커녕

상처만 낸다.

사람들은 파괴되는 내면 때문에 전보다 더 큰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잊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더욱 분주하게

채찍질한다.

하지만 이런 분주함은 삶에서 생명력을 앗아가 힘없고

김빠진 삶을 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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