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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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2
열 여섯 살 무렵, 이제 막 초보 스님이 되었을 때의 이야 기다. 스승께서는 항시 나에게 100%의 힘을 다해 문을 여닫으라 고 가르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스승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나는 그 일을 얼른 하여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잠시 그 가르침을 잊어버렸다. 스승은 방을 나서는 나를 다시 불러 들였다. "낫한-아! 다시 들어오너라." 나는 다시 스승 앞으로 갔다. 합장을 한 내게 스승은 말했다. "걸을 때도 문을 닫을 때도 항상 마음을 현재에 두거라. 너의 100%를 다 주어라." 이것이 바로 스승께서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의 수행을 위해 내게 내린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 이후 나는 마음을 현재에 두고 걷기 시작했고 내가 걷는 모든 걸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문고리를 잡을 때도 문을 열 때도 마음을 현재에 두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한 걸음을 떼어놓을 때도, 밖으로 나온 다음 문을 닫을 때도 마음을 현재에 두었다. 스승은 주 번 다시 내게 문을 어떻게 닫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시 않았다.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의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하여 하는 것이다. 펜을 들거나 책을 펴는 것, 향을 피우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일을 할 때에도 당신의 100%를 다 주어라. 내가 행자였을 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향을 피워야 했다. 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때라 향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오른손으로 향을 들고 왼손을 그 위에 포개었다. 향은 매우 가볍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두 손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향을 잡을 때에도 자신의 전부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냥에 불을 켜서 향에 불을 당길 때에도 자신의 100%를 다 주어야 한다.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신은 아들이나 딸의 손을 잡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가? 그 순간 당신은 손잡는 일에 당신의 전부를 주어야 한다. 아내를 포옹할 때에도 그리해야 한다. 다른 모든 일은 잊어야 한다. 아내나 남편을 포옹할 때에 그 사람을 위해 온전히 존재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또한 아니다. 그것은 수행 같은 자기 훈련을 요하는 일이다.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축구, 수영, 자전거 타기를 위해 교실에서 강의를 듣는 것과도 같다. 교실에서 아무리 잘 이해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축구공을 차고, 물 속에서 헤염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지 않으 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책과 씨름하는 공부보다 실제 삶 속 에서 수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행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정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그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힘은 정말 감동적인 것이다.
나는 플럼빌리지의 수행자들과 차를 즐겨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또 하나의 명상이라고 부른다. 찻잔에 차를 따르는 것부터 마시는 행위까지 모든 것이 명상이다. 마음을 현재에 두고 차를 따르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 해야 할 일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차를 따르는 일에 몰입할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해 찻잔을 들어 올리고, 온 마음을 다해 찻잔을 감싸안고, 온 마음을 다해 차를 마신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누구나 차를 따르는 법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차를 따르거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업가나 직장인은 프로젝트를 마시고 학생은 내일 볼 시험을 마신다. 주부들은 저녁 반찬을 마신다. 왜 그럴까? 우리에게는 현재로부터 달아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다. 습관의 힘은 매우 강해서 그 힘을 거스르거나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삶의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