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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한 고통 왜 허락하시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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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 [jelka] 쪽지 캡슐

2004-07-05 ㅣ No.590

무참한 고통 왜 허락하시는 건가 ?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무참한

어린생명들의 죽음을

보고만 계시는 것입니까 ?  

 

북한 용천 역 폭파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더욱 비참한 것은

어린 생명들의 부상 장면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우리들을 더욱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은 찾아보려고 합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

헤로데는 자신의 권자에 불안을

느꼈으며 베들레헴 일대의 아기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생을 자행하였다.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무죄한 어린이들을

왜 ? 죽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전쟁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어린이에게

젖을 물리다 죽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의

의미 없는 죽음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 하느님께서는 이런 비참한 그리고 이유 없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

험난한 고통을 견디기도 했습니다.

불평, 불만, 고통의 시간을 충분히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신 분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서 이북의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 왕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출애급기를 잠시 살펴보면,

“그러나 나는 파라오(김 정일)로 하여금

억지를 부리게 하여,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과 소동 :

① 강물이 피가 되고,

② 개구리가 소동을 일으키고,

③ 모기의 습격,

④ 등에 소동,

⑤ 가축들이 병에 걸리고,

⑥ 피부병이 전국에 번지고,

⑦ 우박이 쏟아지고,

⑧ 메뚜기 소동이 일어나고,

⑨ 어둠이 온 땅을 덮어 버리고,

⑩ 처음 난 아들과 맏배의 짐승을 죽이어

무고한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괴롭히게 한 연후에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 증거를 드러내리라.

 

그러나 파라오(김 정일)는 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리라“

 

이북의 김 정일도 언젠가 하느님이 치실 것이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흠도, 티도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를

희생재물로 봉헌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인간의 처지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눈으로는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로 무죄한 사람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그 때의

그 방법을 계속 사용하고 계신 것이 아닐 까 ?

 

하느님은 아무 죄도 없는 당신 아들을

기꺼이 죽음에 부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는 그 방법으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많은 고통들을,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 없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어떤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 까 합니다.

 

-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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