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11달 생할 말씀 [훠콜라레]운동에서,매월 복음,한소절을 매일 묵상하며 살아갑니다.방긋웃는 아뽈로니아 .퍼옮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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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순 [appol] 쪽지 캡슐

2006-11-02 ㅣ No.7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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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마태오 5, 6).

일반 용어로 ‘정의' 라는 말은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필요성과 인간적 자원의 균등한 분배를 상기시키며, 여러 조직들이 법을 준수하도록 불렸음을 기억시켜 줍니다.
참행복을 다루는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는 위에서 말한 정의일까요? 그렇기도 하지만 또한 관계의 조화로움과 합의와 평화를 내포하는 더 폭넓은 정의를 뜻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성을 상기시키며, 결코 충족되지 않는 인간 마음 깊은 곳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인간의 배고픔은 하느님에 대한 배고픔이며, 단지 하느님만이 인간을 충만하게 채워주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고백록의 시작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취하셨습니다.
성서적 의미에서 정의는 인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에 합당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사랑 안에서 하나된 가정으로 생각하셨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정의에 대한 갈구와 추구는 인간의 양심 속에 늘 내재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의 마음속에 이를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긴 역사를 통해 이룬 정복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계획을 충만하게 실현하는 것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전쟁과 테러리즘과 인종간의 대립은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과 불의와 증오의 표지입니다.
인간의 조화를 깨뜨리는 장애물은 단지 법적인 명령이나 공동 삶을 규정하는 규칙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장애물은 우리의 윤리적, 정신적 태도에 따른 것이며,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치기준과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기준에 따른 것입니다.
경제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평하지 못한 재화의 분배로 인한 수많은 후진국과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사이의 틈은 어떤 생산적인 시스템의 결과로 인한 것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의한 문화적, 정치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은 단순히 율법을 실천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더 거대한 정의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정의를 뜻합니다.
사랑이 없이 사람에 대한 존중과 그의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사람들 간에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할 수도 있지만, 또한 관료적이 될 수가 있고 인류의 필요성을 해결하는 적절한 답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참된 정의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재산의 분배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각 사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재산은 혼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음들이 움직여야 재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그럼 이 생활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합시다. 즉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단지 그를 평등하고 기본권을 지닌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우리의 적이라 할지라도 성부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씀처럼 그를 위해 가장 고귀한 희생을 치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서로 내어주고 영신적 물질적 부를 함께 나눌 때, 우리는 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형제적이고 올바른 세상을 이루려는 우리의 열망이 하느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직접 우리 가운데 머물고자 하실 것이며 그분의 현존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한 직장인이 어떻게 퇴직의 위기를 극복했는지 얘기해줍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다른 회사와 함께 한 부서를 합병했습니다. 회사 측은 제게 직원들의 명단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했는데, 새롭게 일을 조정하면서 세 명의 직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결정은 근거가 없는 것 같았으며, 그 직원들과 가족들이 겪게 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둘러 결정한 것 같았습니다.‘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는 생활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세 사람의 퇴직자 명단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사직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어떻게 직원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좋을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여러 부서에서 모두가 유용하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인사 계획서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였고 아무도 일자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끼아라 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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