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중고등부] 의술과 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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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kKu,Lee [nikolas9] 쪽지 캡슐

1999-10-16 ㅣ No.1506

 아프리카 이슬람 교도의 전통 의사를 마람이라고 한다. 마람이 환자를 대할 때는 공식적으

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지금 여기에는 세 사람이있다. 너와 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악마가 그 삼자다. 그 삼자가

  운데에 한 사람이 죽을 운명에 있다."

 그리고는 악마가 가장 못견디는 환경을 환자 마음속에 구축한다. 즉 환자의 마음이 편하고

안락할수록 악마는 못견뎌내기에 먼저 진지한 대화로 마음을 편하게 유도한다. 그러고서 악

마가 두려워하는 코란 담근 물을 먹인다든지 한다.

 

 좋은 의사의  조건으로 일족(一足)·이구(二口)·삼약(三藥)·사기(四技)라는  우리 속담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발로 뛰어 환자와 자주 접해서 말을  많이 나누어 마음을 편안케 해주

는 것이 첫째 두번째, 약을 잘 쓰고 잘 나수는 기량은 셋째 넷째라는 뜻. 역시  환자에 인간

적 접근을 하는 의사를 좋은 의사로쳤다.

 

 동양의 이상적인 명의(名義)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편작이란 사람이 있다. 주막  주인으로

있을 때 장상군이라는 은자를 극진히 대접한 댓가로 인체의 오장육부를 투시할 수있는 묘약

을 얻어 일약 명의가 되었다. 편작은  이미 기원전에 인체의 내부를 투시한, 오늘날로  치면

방사선과의 명의였다 할 것이다. 그는 인체속의 오장 육부를  꿰뚫어 보는 투시안을 가졌는

데 그로써 환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병세가 달라짐을 보고 질병의 심인설(心因說)을 가르쳤

다. 그에 기초를 둔 육불치설(六不治說)에 따르면 환자로서 오만하고 의심이 많으며 불안해

하며 겁먹고 불신하며 절제가 없고 돈에 급급하는 등 마음이 불안 불편할 때 병은 낫지  않

는다는 것이다.

 

 우리 한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後漢의 장중경도 소문난 명의다. 장중경이 약초를 캐러

어느 산에 들어갔다 하면 그 산이 삽시간에 인산인해가 됐다 할만큼 소문난 명의였다.

 어느날 한 깡마른 노인이 북만큼 부푼 배를 안고 찾아와 진맥을 청했다. 맥을 짚어본 장중

경은 "인맥이 아니라 수맥(짐승맥)이구먼"이라 말했다. 이에 노인은 엎드려  큰 절을 하며 "

실은 이 산에 사는 늙은 원숭이인데 진맥을 받기 위해 둔갑을 한 것입니다"고 실토를 했다.

인술 앞에 금수가 다를 수 없다 하고 환약을 주어 낫게 해주었더니 이 늙은 원숭이는  수천

년 됐다는 오동나무로 보답을 했고, 장중경은 그로써 거문고를  만들어 중국 명기중 명기인

고원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이야기에 따라, 명의(名醫)로서  인술에 투철한 덕의(德

醫)를 겸했을 때 `고원금을 얻었다’고 말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원금을 얻은 의원으로는 조광일을 든다. 임금의  불치병을 낫게 하여 명의

로 팔도에 소문이 났는데도 조광일은 시골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한양에

가서 귀현들과 사귀어 명성을 날리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세상의 의원들이 의술을 자랑하여 가난한 집이면 백번을  간청해도 응하지 않고, 가는 집

  이라곤 권세가 있거나 돈많은 부잣집뿐이니 어찌 이를 인술하는 사람의 인정이라 하겠소.

  내가 마흔살까지 살려낸 사람이 천명은 될 것이오.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면 만명은 넘을

  것이니 내가 할 일은 다한 셈입니다.  그 살려낸 사람의 빈부귀천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오."

 

 평생 병이 많았던 세조도 그가 접했던 많은 의원과  의료 체험을 바탕으로 팔의론(八醫論)

을 지어 전국에 퍼뜨림으로써 의사의 모범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으뜸 가는 의원

이 환자의 마음을 편안히 하여 기를 안정시키는 심의(心醫), 두번째가 먹는 것을 잘 조절하

는 식의(食醫), 세번째가 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다. 그리고 일관된 소신이나 처방없이 대

하는 혼의(混醫),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겁을 주고 극단처방을 하는 광의(狂醫), 맞지 않은

약을 쓰는 망의(妄醫), 돈 있는 사람이면  병을 늘리고 가난한 사람이면 줄이는 사의(邪醫),

끝내 죽이고 마는 살의(殺醫) 순으로 8등급화한 것이다. 역시 마음을 편안케 하는 인간적 의

사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이번에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국경없는 의사회(MSF)’가 선정되었다 한다. 지난 1971

년 설립 이후 18년간 80개국에서 체제,  종교, 문화의 차이에 관계없이 중립(中立)·공평(公

平)·자원(自願)의 3대 원칙에 충실해 구호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이들은 지난  1968년 나이

지리아 내전에 국제적십자사의 요청으로 현지에 파견된 프랑스 의사들이 100만명의  난민이

기아로 숨져가는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국제 민간의료 구호단체의 필요성 절감을 계기로 결

성되었으며 현재 45개국 2900여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구호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국제구호 단체나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

는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88년 이라크가 이란에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도 가장 먼저 현장

에 들어가 재난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의료활동을 벌였으며 걸프전 때는 비정부기구(NGO)

로서는 이례적으로 무려 60여대의 전세 비행기를 동원, 난민 7만여명을 구출해 세상을 놀라

게 했다. 명의로서 인술에 투철한 덕의까지 겸했으니 현대판 `고원금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이번 MSF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명의·덕의에 대해 생각해 보

면서 우리에게도 머리나 손끝보다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학혁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의와 덕의가 반드시 동일개념은 아니지만 명의는 뛰어난 의술이요 덕의는 뛰어난 인술임

을 감안할 때 지식과 기량에 치중된 현행 의학교육을 인간성 넘치는 의료와 의사 그리고 의

학윤리에 치중하는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으로 개정한다면 두 요건이 조화된 의료인의 양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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