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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 통고)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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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09-15 ㅣ No.642

* 성모의 통고 *

 

 

9월 15일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 통고) 기념일

 

티없으신 성모성심의 7개의 칼은 7가지 고통을 상기시켜 줌.

시메온의 예언에 의하면 에집트로 피해가심, 예수를 성전에서 잃으심, 갈바리오에 아들을 따라 오르심, 십자가에 죽으심, 십자가에서 내리심, 아들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심.

        THE MATER DOLOROSA 통고의 성모

 

십자가 현양(9월14일)을 기리는 다음난 통고의 성모란 뜻을 지닌 돌로로사를 기념한다.

 

십자가 밑에서 아드님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에 특이하게 참여하신것처럼 그 수난에도 그렇게 참여하셔서 자신의 승천 때보다는 더 어머니시였다.

 

칼날이 그 마음을 찌른 것도 예수님의 찔린 옆구리에서 신비체의 모든 지체에 모성이 끼어든 것도 십자가 밑에서였다.

 

티없는 잉태와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때와 같이 예수와 함께 수난하신 고통에 있어서도 마리아는 교회의 상징이시다.

 

세기를 통해서 이세상 어디서나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계속되기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면 그분과 함께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도록 불린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쁘게 져야할것이다.

          *  marienstatt pieta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게시판598번.참조)

(Sermo in dom. infra oct. Assumptionis, 14-15: Opera omnia, Edit. Cisterc. 5[1968], 273-274)

 

당신의 어머니께서 십자가 곁에 서 계셨다.

동정 마리아의 순교가 시므온의 예언과 주님의 수난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아기 예수께 대해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고 마리아께는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복되신 성모여, 예리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칼이 당신의 영혼을 찌름 없이는 당신 아드님의 육신을 꿰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것이지만 특별히 당신의 것인 아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후, 그 잔혹한 창은 그분의 영혼에 가 닿을 수 없었습니다.

실상 그분이 죽임당하신 후 불능의 상태에서마저 마냥 두지 않은 그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펼쳐 놓았을 때, 그분께 고통을 줄 수 없었지만 당신께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창은 당신의 영혼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더 이상 거기에 계시지 않았으나 당신의 영혼은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고통의 창으로 찔리었기에 우리는 당신이 순교자들을 능가하시는 분이라고 마땅히 일컫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수난에 참여함은 그 강렬함에서 순교의 모든 육체적 고통을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그때 그 말씀은 당신의 영혼을 창으로 찌르고 당신의 영혼과 마음을 갈라놓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오, 놀라운 교환이여! 당신은 예수님대신에 요한을, 주인 대신에 종을, 스승 대신에 제자를, 하느님의 아들 대신 제베대오의 아들을, 참 하느님 대신에 일개 인간을 받으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할 때 돌이나 쇠보다 더 굳은 우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는데, 하물며 그 말씀은 당신의 섬세한 영혼을 찌르지 않았겠습니까?

 

형제들이여, 마리아께서 영신의 순교자가 되셨다는 말을 들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듣고서 이방인이 지닌 최대의 결점 중에 하나는 동정심이 없는 점이라고

사도 바울로가 지적한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만이 놀랄 것입니다.

 

마리아께는 물론 그런 결점이 없었고 또 마리아를 섬기는 이들에게도 그런 결점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마리아께서 당신 아드님이 죽으셔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하고 물어 볼지 모르겠습니다. 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드님께서 즉시 부활하시리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고 계시지 않았겠는가?" 물론 갖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마리아는 슬픔을 느끼셨겠는가?"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형제여, 마리아의 아드님이 느끼신 슬픔 자체에 대해서보다 그 수난에 참여하신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더 놀라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판단을 가지고 있길래 놀랍니까?

아드님께서 육신으로 죽으실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는 영신으로 그 죽음에 참여할 수 없으셨겠습니까?

 

아드님은 다른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어는 누구의 사랑에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죽음에 참여하셨습니다.

 

♬Canto Gregoriano-Salve Regina(solemne)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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