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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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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범 [bagdudegan] 쪽지 캡슐

2008-11-11 ㅣ No.10358


가을이 오면 가을 여자는 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고

가을 남자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원한다.

가을여자는 홀로 떠난 여행 길

어느 낯선 간이역 플랫폼

마지막 열차가 남기고 가는 비명 속에서

이미 전설로 남겨진 '잃어버린 여자'를 환생시키며

온전히 홀로된 고독에 묻히고 싶어한다.

엷은 카키색 버버리 코트 깃을 세우고 어둠이

병풍처럼 둘러처진 텅 빈 플랫폼에서

후두둑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도

가을여자에겐 전혀 허물 없어 보인다.

때로는 고독한 女子가 아름다울 때도 있지 않던가.


가을남자는 갓 잡아 올린 등푸른 생선의 비늘처럼

찰랑거리며 윤기흐르던 미류나무 광채가 사라지기 시작하며

메마른 수수깡처럼 가슴이 푸석해진다.

가을여자가 '잃어버린 여자'를 환생시키고 있을 때

가을남자는 기억의 저편, 신화처럼 살아있는 오월의 장미를 기억해 내며

목젖으로 올라오는 쓸쓸함을 삼킨다.


가을여자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여자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자신을 옥죄는 결박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깊숙이 숨겠노라 다짐하지만

그건, 늘 꿈꾸는 일상의 희망사항일 뿐

숨 죽였던 생명들이 소생하는 새벽이 오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첫 차를 탄다.


가을남자는 어느 후미진 골목 선술집에서 단풍 곱게물든 어느해 가을

산기슭에 흘렸던 장미의 눈물을 기억하며

마음의 지도를 꺼내놓고 추억을 더듬어 가지만

가냘픈 신음소리만 귓가에 맴돌뿐

회상할 수록 장미의 모습은 흐릿하게 멀어져간다.

홀로 술 마시는 가을남자는 그래서 더 쓸쓸하다.


가을여자가,가을남자가 가을이면 앓는 病..

가을에는 다 그렇다.


- "가을의 전설" 컬럼 중에서 -






낯선 간이역들.....

삶이란 것은 결국 이 간이역들처럼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스친 것 조차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달리는 기차 차창에 언뜻 비쳤다가 금새 사라지고 마는 밤풍경들처럼.

내게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빨리 내 곁을 스쳐지나갔는지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혼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정작 내가 그의 손을 필요로 할 때는 옆에 없었다.

저만치 비켜 서 있었다.

그래, 우리가 언제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더냐.

사는 모든 날이 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만은 없어서,

그래서 절망하고 가슴 아파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리웠던 이름들을 나직이 불러보며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무지개 뜨는 세상이 아름답듯

사랑하고 이별하고 가슴 아파하는 삶이 아름답기에.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이정하 /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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