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동성당 자유게시판 : 붓가는대로 마우스 가는대로 적어보세요

성모님과 슬픔

인쇄

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11-02-15 ㅣ No.7353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는 어떤 사람인가? 

 최악 : 남편이 돈도 못 벌어오는 데 성질은 포악하고,

        자식이 공부는 못하면서 말도 더럽게 안 듣는 놈을 둔 여자


  3위 : 남편이 성격은 안 좋은데 돈은 잘 벌고,

        자식이 공부는 잘하는데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집 여자


  2위 : 남편이 성격은 착하고 성실한데 돈을 못 벌고,

        자식 이 공부는 못하지만 말은 잘 듣는 집 여자


  1위 : 남편이 성격도 좋고 돈도 잘 벌고, 

        자식이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듣는 집 여자


어떤 강의에선가 “여러분은 어떤 집 여자입니까?” 물었더니

 한 사람이 손을 들면서 “하나 빠졌습니다.

자식은 없고 남편은 돈이 무지 많은데 오늘내일하는 남편 둔 여자”해서

폭소가 터진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성모님이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합니다.

왜냐?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탄성을 외친 것처럼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되면 그 어머니는 덩달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대우받기 마련인데,

하느님을 당신 아들로 두셨으니 여인 중에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 불리실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다면 모든 성모상의 표정이 밝고 환한 웃음을 띠어야 하건만,

한결같이 슬픈 웃음이거나 아니면 아예 눈물 흘리는 얼굴이시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어두운 얼굴이십니다.

 

왜 그런가?

성모칠고(聖母七苦), 성모님이 겪으신 일곱 가지 고초가 말해 주듯이

성모님의 생애는 눈물 마를 날 없는,

그 영혼이 늘 상처받고 수난당하는 삶을 사신 분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애통해 하는 조각 작품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그런 성모님을 천상의 모후라 부르고

그분의 삶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성모님께서 그런 역경 속에서도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람들을 다독이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에

성모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그렇게 강한 여인이 되신 것은 무엇을 통하여 그리 되신 것인가?

당신 슬픔을 지혜롭게 다스리셔서 강한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슬픔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 성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네 삶 곳곳에 산재한 슬픈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해 버리면

결국 삶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허구의 이미지에 갇혀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루종일 우중충한 슬픈 얼굴로 슬픈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미성숙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늘 슬픈 사람들은 떠나보내야 할 것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매어 두고서 잃어버린 것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슬픔 속에 살 것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투정하고 되돌아오리라는 헛된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미성숙하다, 철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마가렛 마흘리라는 심리학자는 말하길,

슬픔과 비애는 아이들이 자신과 엄마가 한 몸이 아니라

떨어져 있는 존재임을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겪게 되는 감정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슬픔이란 누군가와 혹은 무엇인가와 이별했을 때,

나를 존재하게 했던 대상이 사라졌을 때 갖는 감정입니다.

이 슬픔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왜냐하면 상실과 이별을 하고 난 내 마음은 황량한 폐허같이 되어 버리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두려움,

내 존재의 의미마저 잃은 듯한 공포가 엄습해서

무기력하고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사코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데,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이 그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슬픔을 외면할 일이 아니라,

성모님처럼 슬픔의 본질을 이해하고 슬픔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어떤 부자영감님이 딸을 시집보내려고 사윗감을 뽑는다는 공지를 냈습니다.

내로라하는 청년들이 와서 면접을 보았는데...

한 청년이 나서더니 “저는 사나이 중 사나이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린 적 없습니다.”하자

영감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 나가라.”

이것을 본 두 번째 청년이 나서는 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세상에 얼마나 슬픈 일이 많은지 저를 사위로 맞아 주시면

영감님 재산으로 슬픈 사람들을 도울까 합니다.” 영감님 “재수 없는 놈, 나가라.”

세 번째 청년이 나서서 말하길 “재산이 많으면 마음 아플 일도 많을 것입니다.

저를 사위로 맞아 주시면 저희 회사에서 지원해서 영감님을 편안히 모시고,

돌아가시면 늘 슬픔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회사가 어딘데?” “상조회사입니다.”

“나 죽기를 바란단 말이지. 나 죽기 전에 네놈부터 죽여주마.”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결국 영감님은 ‘세상에 믿을 남자 놈 하나도 없다’ 생각하고는

딸을 하리수가 성 전환 수술한 병원으로 보내어

하리수가 떼어낸 걸로 아들을 만들어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우리는 슬픔이 우리 안에 늘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슬픔은 머물지 않습니다. 슬픔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슬픔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자연의 감정입니다.

오히려 슬픔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슬픔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강물이 흘러갈 때 온몸으로 버티듯이

그렇게 버텨서 슬픔을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슬픔을 흘려보내고 나면, 비 온 뒤 하늘이 맑은 것처럼

우리도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평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제성인 말씀중에서 -옮김-



2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