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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같지 않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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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11-02-17 ㅣ No.7356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이 털어놓는 말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안할 텐데’하는 말들입니다.

이 말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과 똑같았으면 하는 바램,

그래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생각도 해 보지만,

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바램을 가진 사람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바램을 가진 사람들은 독심술

-즉,

자기 생각에 비추어 남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려는 습성이 있어서

지레짐작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런 지레짐작 때문에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실망, 분노, 상처 입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많은 경우 미신행위를 하거나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서 문제의 답을 찾고자 합니다.

왜 미신에 빠지는 것인가?

사람의 마음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합치되었을 때

납득을 하고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치에 맞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것들이 태반인데,

이것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점쟁이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신이 성행하는 것인데, 거기서도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심리학적 관점의 “답”을 드릴까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았던 사람은 딱 한 사람뿐입니다.

어린 아기였을 때 나를 품어 주었던 엄마뿐입니다.

딸들이 시어머니 앞에서는 불편한데,

엄마 앞에서는 응석부리는 아이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엄마 마음이 자기 마음과 똑같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엄마와 나의 일심동체기간은 금방 흘러가 버려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여 조금도 차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일심동체, 이심전심이란 말들인데...

그러나 가까운 관계일수록 별 것 아닌 일에 목숨 걸고 싸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이렇게 남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힘든 분들은 점집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 같으면

나는 나만의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인데,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있을 때라야 ‘나’라는 사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모두 같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신부들 회합이 끝나고 다 같은 복장으로 식사하러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나’라는 개인이 없이 두루 뭉실 한꺼번에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길을 가다가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한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지요.


두 번째,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달라야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으면서 인생을 사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외곽지대 식당을 가면 종업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자기들은 남녀손님을 보면 불륜 커플인지, 부부인지 한눈에 안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 눈을 떼지 못하고 상대방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기 바쁘면 불륜,

상대방은 쳐다보지도 않고 각자 자기 밥 처먹기 바쁘고,

쳐다봐도 소 닭 쳐다보듯이 멀뚱 생뚱 쳐다보면 부부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상대방을 다 안다고 할 때에는 식상함이 올라오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모를 때에는 호기심이 올라와서 그런 것입니다.

만약 세끼 식사가 똑같은 것이 올라온다면 어떨까요? 지겹지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에 살맛, 입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화투도 그렇습니다. 치는 족족 쓰리고가 성공하면 좋을 것 같지요? No. Never.

우리가 무엇엔가 빠져드는 것은 그것이 가진 변수가 다양할 때이지

늘 같은 것이 반복되면 싫증나고 식상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운동선수이건 수도자이건 자기 문제를 교정하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어야 나의 못난 점이 보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어야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면

내 안에 있는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들을 말해주고 교정해 줄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사람은 각기 달라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천당 입구에 등 돌린 장승부부가 있었답니다.  그 이야기...

어느 날 심판대에 부부가 동시에 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천당주민들 모두가

저 사람들이 얼마나 원앙부부였기에 한날한시에 죽었을까 부러워들 하고 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얼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당직 심판관인 베드로사도가 “왜들 그러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따발총처럼 쏘아 대기를

“남편이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결혼생활 사십년 동안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저 인간이 도무지 바뀌지 않아서 내가 화병에 걸렸습니다.”

“무엇이?” “술, 담배, 편식... 그리고

하느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남편을 변화시켜 달라고 주의 기도를 수없이 많이 했는데

왜 기도발이 전혀 안 먹히는 겁니까?” 따졌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사도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대 부인이 그렇게 자네에게 신경 쓰고 관심 가지고 기도해 주었는데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남편 대답하기를 “나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안되는 걸 어찌합니까?

그리고 우리 마누라는 날 보고 매일 문제 있다 바꾸라고 바가지 긁는데,

정작 제가 당신도 좀 바꿔 그러면

나같이 완벽한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면서 펄펄 뜁니다.

그래서 아예 안 보고 살기로 작정했더니 저 야단입니다.”

베드로사도 판결 내리길

“원래 부부는 천당에 동시입장을 할 수 있는데 마음이 그렇게 맞지 않으니...

서로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천당 밖에서 대화하거라.”

그래서 지금도 그 부부는 천당 문 앞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부부싸움을 하다가 등 돌린 장승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저 사람이 왜 저럴까?’하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상대를 만났을 때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나의 영역을 침범당하고 빼앗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거나

혹은 각자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해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면 자칫 상대방은

나와 똑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건 상대방도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건 상대방도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자기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제성인 말씀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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