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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 성 살바도르(오르타)축일♬Pange Lingua Gloil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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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3-18 ㅣ No.1050

축일: 3월18일

성 살바도르(오르타)

St.Salvator of Horta

증거자,프란치스꼬회 1520-1567

 

성 살바또르는 스페인의 제로나 교구의 산타 꼴룸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가 아기 때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거리를 헤매다가 바르셀로나에서 신기료 장수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수도자가 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여 프란치스칸이 되고자 하였다.

 

후에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일자 무식이어서 서원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성인은 제삼회원으로 있으면서 가장 비천한 일을 하면서 살았다. 처음에는 수도원 부엌일에 고용되었는데, 그의 덕이 급속도로 성장하여 하루는 내무대신이 수도원을 방문해 오찬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음식을 준비할 주방 수사가 아침부터 병이 나 그 수사는 살바도르에게 부엌 열쇠를 맡기며 모든 준비를 해 주도록 신신 부탁했다.그는 이를 기쁘게 승낙했는데, 그만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이 일을 깜빡 잊어버렸다. 점심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원장은 식사 준비를 살펴보려 부엌문을 여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곤 안은 조용하지 않은가! 당황하며 주방 수사를 찾으니 그는 병으로 누웠고 요리는 살바도르 수사에게 부탁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점심때가 다 되었으므로 원장으로서의 조바심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사랑으로 살바도르를 찾아다니다가, 겨우 성당 제대 앞에 꿇어 기도를 열중해 무아경에 빠져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너무도 어이없어 그의 태연한 태도를 책망하고, 열쇠를 빼앗아 부엌으로 부랴부랴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거기에는 이미 훌륭한 음식이 늘어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원장은 이상히 여겨 수사들을 모아놓고 일일이 물어 보았으나 누구하나 장만한 이가 없었다.

 

결국 이것은 기도에 열중한 살바도르를 가상히 여기신 하느님께서 천사로 하여금 장만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는 실로 16세기의 기적사라 불리는 살바도르의 기적의 첫 걸음이었다.

 

그는 서원을 발하자 원장의 명으로 토르토사 예수 마리아 수도원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곳은 다른 수도원에 비해 매우 작고 또 가난하며, 규율을 엄격히 지킴으로 보아 마치 은수자의 처소라 함이 적당했다. 원장이 살바도르를 그곳에 보낸 것은 그가 덕이 탁월한 유망한 수사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살바도르에게 주신 기적의 능력은 토르토사에서 또다시 발휘되었다. 근방의 마을에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병자의 수가 날로 증가되어 때로는 하루에도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그는 신부가 아니므로 먼저 고해하여 성체를 하도록 권하고 기도를 하며 축복을 주면 벙어리에서 나병에 이르기까지 쉽사리 완치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밀려드는 군중때문에 지금까지 수도하기에 훌륭한 곳이었던 토르토사 수도원이 적이 시끄러워졌으므로 원내 수사들간에 불평이 일어나 원장은 그를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오르타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수도원으로 옮기게 했다. 얼마 안되어 병자들은 그곳으로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 후 그는 두번이나 더 수도원을 옮겨 보았으나 어느 곳을 막론하고 운집해 오는 방문객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그다음에는 같은 교구에 있는 오르따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은둔소로 갔다. 여기서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생활을 하였는데, 맹인과 벙어리 그리고 불구자들이 그에게 오면 거의 항상 치유받는 기적이 일어나곤 하였다.이렇게 되어 그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져 마침내 스페인의 국왕 필립보 2세와 왕비 이사벨라의 귀에까지 미치게 되어 그는 왕궁에까지 초청되었고 왕은 그의 축복을 청했다.

 

그는 이러한 영예에도 조금도 거만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 어떤 동료 수사가 혹은 그런 명성으로 만심하지 않을까 충고한 일이 있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검불과 같은 보잘 것없는 몸이니 그저 침대 짚 요 속에 넣어 주어도, 또 소 외양간 북데기 속에 넣어 주어도 조금도 아무렇지 않습니다"고 했다. 이 얼마나 겸손한 마음인가.

 

1565년에 그는 총장을 따라서 멀리 사르디니아 섬 카르야리 수도원에 가서 그대로 그곳에 눌러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여러번 기적을 행했다. 그는 항상 맨발로 다녔고, 매일 편태했으며, 깊고 엄격한 단식을 끊임없이 계속했다. 그는 특히 성모 마리아와 성 바오로 신심이 투철했는데, 수 차례에 걸쳐 성모의 발현을 목격했다.

 

그는 1567년 3월 18일에 47세의 일기로 선종하였으나,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었다.

그 유해는 지금까지도 썩지 않고 유리관에 보관되어 카르야리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는 1939년 4월 17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2.Canto Gregoriano-Pange Lingua Gloil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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