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어두움에 빛을(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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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9-20 ㅣ No.3608

연중 제 25주간 월요일 (2004-09-20)

독서 : 잠언 3,27-34 복음 : 루가 8,16-18

 

* 어두움에 빛을 *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아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줄 알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루가 8,16­-18)

소임상 북한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서 두 차례 다녀왔는데, 첫번 방문 때는 겨울이어서 밤이 짧은 때였습니다. 저녁식사로 평양에서 유명하다는 단고기집을 갔는데 적어도 남조선 종교인들을 대접할 정도의 식당이면 왠만한 식당은 아닐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는 도중에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함께 간 일행 중 북측 관계자 되는 분이 즉시 ‘불키라, 불키라’ 하고 외치고 나니 잠시후 불이 들어왔습니다. 이러기를 세 차례 하였습니다. 모두가 웃었지만 순간 북측 관계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이 들어서 모두들 웃음으로 분위기를 바꾸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빛이라고는 한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온 차량의 불을 밝히자 겨우 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깜깜한 밤, 어둠, 아무런 형체도 볼 수 없는 상황`…. 마치 북한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어둔 밤을 걸어야 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하루빨리 광명의 날이 오기를 빌었습니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통해 작은 불씨나마 지필 수 있는 역할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얹어놓아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불씨를 합쳐서 평양은 물론, 북한 전지역을 환한 빛으로 비출 수 있는 마음들이 우리 각자 안에 자리잡기를 기도했습니다. 정치·이데올로기·사상을 떠나 ‘그냥’ 우리는 하느님의 같은 피조물이고 한민족이기에 서로의 빛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맞이했던 어둔 밤은 답답함·불편함이 아닌 가끔씩 나태해지려고 할 때 내 마음 안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불씨를 서둘러 지필 수 있는 체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도 주님께서는 머물고 계실 것이고,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선한 마음을 넣어주셨습니다. 그 선함이 빛을 발하며 살도록, 그렇게 되는 날이 어서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어두움에 빛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아멘.

이선중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 꽃의 연가 -

너무 쉽게 나를
곱다고만 말아 주세요.
한 번의 피어남을 위해
이토록 안팎으로
몸살 앓는 나를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혼자만의 아픔을
노래로 봉헌해도
아직 남아 있는 나의 눈물은
어떤 향기나 빛깔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요.

피어 있는 동안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를 위한
나의 기도인 것처럼
시든 후에도 전하는
나의 말을 들어 주세요.

목숨을 내어 놓은
사랑의 괴로움을
끝까지 견디어 내며
무거운 세월을 가볍게 피워 올리는
비람 같은 꽃
죽어서도 노래를 계속하는
그대의 꽃이에요.

- 이해인의 詩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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