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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용서했단다. 아들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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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희 [moonhee56] 쪽지 캡슐

2003-03-05 ㅣ No.3438

다 용서했단다. 아들아

 

너를 만나고 나오는데 진눈깨비가 흩날리더구나.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쳐다 보고 있었지,

혹시 지금 우리 진우(가명)가 저 하늘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눈을 오랫동안 마주치고 싶었거든. 오랜만에 진우에게 말했단다.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이제야 하게 되되더구나.

 

“진우야, 애비는 정민이 다 용서했다. 이제 너도 그곳에서 용서하렴.”

 

사실 그날은 내 평생에 있어서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날이었지.

처음 진우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난 그저 친구들과 놀다가 조금 다친게지 했단다.

그런데...

 

아침 나절에 입었던 그 교복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싸늘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진우를 보자 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

나중에 안 사실은 우리 진우가 학급 친구 중의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서 그렇게 되었다는 거야...

 

몇 날 며칠을 사경을 헤매며 우리 진우를 그렇게 만든 놈을 진우처럼 똑같이 해주겠다고

벼르고 별렀단다.

 

길을 가다가도 진우 또래 아이들을 만나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슬픔이

복받쳐 올라 난 숨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단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우리 진우가 온 게 아닌가 싶어 맨발로 뛰쳐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걷는 고토의 나날이었단다.

차라리 이대로 진우 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우리 진우를 죽게 만든 너를 한번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아...! 그런데 너를 보는 순간 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단다.

넌 분명 악마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진우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두려움과 무서움에 가득 찬 너의 얼굴은 우리 진우만큼이나 앳되고, 선해 보이는 거야.

난 믿을 수가 없었단다.

 

너같이 착하게 생긴 아이가 어떻게 우리 진우를 그렇게할 수 있었는지..

한참을 네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네 얼굴과 진우 얼굴이 번갈아보이더구나.

머리를 세차게 내저으며 몇 번이고 난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냐..’

하고 되뇌었지.

 

1심을 선고받은 너를 보고 내 마음은 더더욱 평안해지지 않더구나.

네가 처벌만 받으면 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늘 네 눈동자가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겠니?

그러다가 문득 네 부모님이 생각나더구나.

 

너를 구치소에 보내 놓고 네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했단다. 그제서야 얼어붙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하더구나.

 

그래,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괴로워하고 싶은 사람은 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그제서야 너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단다.

 

눈물이 흐르더구나. 한창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 너희들의 마음을

사막과도 같이 메마르게 한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아, 그 답답함이란...

너나 우리 진우나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고약한 덫에 걸린 불쌍한 양들인데..

 

정민아, 이 아저씨는 이미 너를 용서했단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너를 향해 꼭꼭 묻어 두었던 복수와 마음까지도 모두 버렸단다.

너도 네 마음속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벗어버리렴.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다.

우리 진우가 이 세상에서 받아야할 사랑까지 네가 모두 받아 주렴.

널 위해 기도하는 진우아빠가

 

- 김호진님/월간 낮은울타리 200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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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한 중학교에서 반 친구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진

중학교 3학년의 김진우(가명)군의 아버지다.

지금은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정민(가명)군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고

그 아이의 선처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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