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34> 그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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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shyj] 쪽지 캡슐

2000-04-06 ㅣ No.4813

 그는 알고 있을까?

 

 그와 갔던 카페들에 들릴 때면

 그와 앉았던 자리들을 일부러 선택하거나

 그가 머물렀던 자리들에 꼭꼭 눈길을 주곤 한다는 것을.

 

 그가 돌아올 때를 위해

 그 날 이후 머리를 계속 기르고 있다는 것을.

 

 별점을 볼 때면 내 별자리와 함께 그의 별자리를 챙기고

 그의 혈액형에 관한 글이면 빠짐없이 검색해 읽어본다는 것을.

 

 그가 그리워 가끔씩 못하는 술을 마시며

 혼자 울곤 한다는 것을.

 

 홀로 어두운 내 방 안에 앉아

 때론 그와의 대화를 마음 속으로 나누곤 한다는 것을.

 

 그가 좋아한다는 고기 요리 레스토랑 기사들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약도와 전화번호를 챙기고,

 술안주 요리의 레시피들을 스크랩 해둔다는 것을.

 

 맘에 드는 새로운 화장법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곤 혼자 얼굴을 붉히곤 한다는 것을.

 

 그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그리울 때면

 그가 없는 시간에 전화 다이알을 돌려

 자동응답기 속 그의 목소리를 숨죽여 듣곤 했다는 것을.

 

 집 앞에 늘 서 있는 하얀 자동차의 운전석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착각 속에 때론 가슴이 덜컹한다는 것을.

 

 길을 걸을 때면 여기 없는 그를 발견할까 하는 허황된 기대에

 가끔씩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바보 짓을 한다는 것을.

 

 그와의 몇 안되는 만남들을 기록해둔 다이어리를 가끔씩 꺼내보고,

 우리의 첫 만남을 대화 하나하나까지 기록해준 디스켓을 쓰다듬곤 한다는 것을.

 

 단지 그와 한 번 갔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그 낯선 극장을 택해 일부러 혼자 간 적이 있다는 것을.

 

 그가 보내준 몇 안되는 이메일이 행여나 지워질까

 노심초사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잘 있나 확인하곤 한다는 것을.

 

 그의 짧은 이메일들을 두고두고 꺼내 보며

 괜시리 늦은 답장을 보내느라 유치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그의 서버가 읽을 수 있는 영어 유머들을 발견하면

 꼭꼭 내 메일박스에 저장해 두고 있다는 것을.

  

 그가 싫어한다는 버릇과 행동들을 고치기 위해

 올해의 목표 같은 구호들을

 아무도 모를 말들로 내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그보다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 행여 사랑에 빠질까

 가끔씩 소개팅 나가기를 주저할 때도 있다는 것을.

 

 동전 뒷면이 나오면 그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식의

 유치한 믿음으로 가끔씩 동전을 손에 던졌다간

 차마 확인 못하고 손바닥을 도로 쥐곤 한다는 것을.

 

 존댓말 사이로 그가 해주던 칭찬들을 다시 받고 싶어

 어린애같이 열심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돌아와 나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부재중 통화라는 핸드폰 메세지를 볼 때마다

 그였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가슴이 한동안 두근댄다는 것을.

 

 그가 언제 어느 순간 내 생각을 할지도 몰라

 짧으나마 그 순간을 맞추기 위해

 늘 머릿속 한 구석에 그를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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