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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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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11-02-10 ㅣ No.7346

 성당에 나가면 돈을 주냐, 밥을 주냐 하고 비아냥거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왜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고,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성당에 나가라고 하셔서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도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그냥 다닌다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마음속에 성당 가느라고 시간 빼앗기는 것에 대한 화가 있어서

신앙생활 자체가 고역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에는 아무리 작은 돈이더라도

반드시 반대급부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돈을 들입니다.

이것을 경제용어로는 ‘투자’라고 하지요.


우리의 생은 어쩌면 끊임없는 투자의 연속행위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얻으려고 할수록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더 많아집니다.

예컨대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났을 때 총각들은 무리해서 시간을 내고, 무리하게 돈을 씁니다.

이유는?

나와 같이 살 여인을 구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하는 것입니다.

성당에 나오시는 분들 역시 투자를 하십니다.

많은 시간을 내어 미사참례를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자행위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성당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당에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마음 안에서 이유 없는 속상함과 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아까운 시간을 들여서 성당에 다니시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건강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밥 먹는 것의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앞에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쫘악 놓였습니다.

그런데 밥 먹을 사람은 달랑 나 혼자입니다.

그럴 때 얼마나 밥맛, 입맛이 날까요?

아마 식사시간을 십분 이상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면?

꽁보리밥에 된장국이라도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맛있게 식사할 것입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길은 나 혼자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멀고도 먼 길이 되지만,

누군가가 함께 해준다면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질 것입니다.

 

아가 노렌자얀 교수는 “단체예배가 소외감을 줄여주고,

신도들 사이의 사회적 네트워크,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특정한 예배모임을 결성하여 자주 모이는 것

서로의 가치에 동의하며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결속력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임상심리학자인 존 가드너는 "신앙생활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더 강화시켜주는데,

이러한 동정심이 사람을 강건하게 만들어주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 손안에 많은 것을 쥐었을 때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내 손안에 쥔 것을 다른 사람의 손안에 쥐어주었을 때에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즉, 자선행위는 내가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느끼게 해주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인생의 영속성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강한 분들은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궁핍해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습니다.

통계상으로 볼 때 자살률이 낮고 오래 사는 편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신앙생활이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신적 존재,

하느님의 현존을 믿으면서 좁아진 시야가 넓어지고,

내가 사는 힘겨운 인생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인생의 시련이나 힘겨움에 대하여 의미부여를 하고,

나름 초연한 자세를 갖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성격이 더 안 좋아졌다느니,

혹은 성당에 다니면서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겼다느니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왜 그런가?

성당에 나오는 목적이 순전히 ‘인간적인 목적’,

즉 친구를 사귀거나, 혹은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고 싶어서 나오거나 하는 경우인데,

이런 분들은 오히려 정신건강이 더 안 좋아진다고 합니다.

즉 신앙을 통해서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썰렁한 얘기 하나.

어떤 자매가 수녀님께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신자집은 아닌데, 수녀님이 애들 버릇 고치는데 아주 영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아이가 착하긴 한데, 어려서부터 병약해서 애지중지하다 보니

아빠를 자기 친구처럼 생각하고 영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빠가 화투를 치는데 참견하기를 “아빠, 똥 먹어, 똥.”

“아빠, 고하지 말고 그냥 뒤져버려.”

“어이구, 아빠. 쌌다 쌌어. 어이고.”하는 바람에

같이 치는 친구들이 애 잘못 키웠다고 눈살을 찌푸려서 창피해 죽겠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수녀님은 “오늘 하루만 맡겨주세요. 제가 손 좀 봐서 돌려보내지요.”

몇 시간 후 애가 돌아왔는데 너무나 얌전하게 와서는

“부모님, 하루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하더니

아빠가 화투를 칠 때에도

‘똥 먹어’ 하지 않고 “아버님, 인분 드십시오.”

‘뒤져버려’ 하지 않고 “아버님, 작고하시지요.”

‘똥 쌌어’ 하지 않고 “아버님, 배설하셨습니다.” 하더랍니다.

너무나 감동한 부모가 “어떻게 가르치셨기에

우리 아이가 저렇게 훌륭하게 되었는가요?” 물었더니

수녀 왈 “뭐 별 거 있나요? 너 계속 반말지거리하면

커서 벌 받아서 나 같은 수녀랑 평생 살아야 한다 했더니 고분고분해지더군요.”


우리는 매 주일 미사참례를 하기 위해 서너 시간을 소비합니다.

‘시간이 金’인 현대사회에서 세 시간이란 참으로 귀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내가 사용하는 이 시간이 단순히 종교적 의무라는 관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나는 이 시간에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보다 활기찬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사제성인 말씀중에서)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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