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3월7일 성녀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순교자축일♬내발을 씻기신

인쇄

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3-06 ㅣ No.1002

성녀 펠리치타스

 

축일 : 3월 7일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스 순교자.

St. Felicitas et Perpetua, MM. 203년

카르타고.아프리카.불임여성의주보

 

성녀 페르페투아와 펠리치따스 및 4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초기 순교자들의 전기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그 일부는 페르페투아 자신이, 그리고 다른 일부는 나머지 순교자가 기록한 글에 의하여 하나의 전기가 완성되었다.

 

비비아 페르페투아는 좋은 가문의 딸로서 카르타고의 귀부인으로 순교 당시에 귀여운 아기를 팔에 안은 젊은 부인이었고, 펠리치따스는 여종이었다.

나머지 4명  이름이 확인된 이는 노예였던 레보까또, 세꾼둘로, 사뚜르니노 그리고 사뚜로이다.

 

202년 로마 황제 셉티모 세베로(Severus)의 칙령에 따라 카르타고에서 크리스챤들을 검거할 당시에 사뚜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예비자였으나, 모여 있던 집에 포위될 순간에 모두 세례를 받고, 공동 감옥에 갇혔다.

 

그 당시에 페르페투아는 처음으로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를 꿈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신비한 어느 사제의 방문을 받았는데 외교인 사제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늙은이의 불행을 슬퍼하였지요"하며, 아기를 안고 걱정하는 차에 체포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들은 모두 맹수의 밥이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 돌아온 뒤에 그녀는 두 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어릴적에 죽은 동생을 보았다.

 

사뚜로는 자신이 천당에 당도한 꿈을 꾸었다.교리를 가르쳤던 이는 사뚜로(Satyrus)라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그들이 체포될 무렵 그는 마침 집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듣자마자 그는 바로 달려가서 그들을 격려하고 자신도 체포당하게 되었다. 성녀 페르페투아 및 성 사티로의 옥중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들이 처음 감금당한 곳은 진짜 감옥이 아니라, 허술한 보통 감옥이었다. 그곳에서 페르페투아는 더욱 마음의 쓰라림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이유는 이교도인 아버지가 찾아와서 성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해, 또한 연로한 자기를 위해 꼭 그리스도교를 배반해 달라고 애걸한 때문이었다. 그녀는 혈육의 정을 필사적으로 물리치며 신앙을 끝까지 보존했다.

 

그들이 재판관 앞에 끌려나간 것은 바로 그 후였다. 그때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는 또 다시 자기 딸에게 "늙어서 나이가 많은 나나 철도 안들은 손자가 불쌍하다고 생각되면 제발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눈물을 머금고 졸라댔다. 그리고 신자들이 무섭게 죽어가는 모습을 말하며 그녀의 반성을 촉구했다. 페르레투아는 백발이 다 된 아버지나 귀여운 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페르페투아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신앙을 버리라고 간청했다.그러나 그녀의 그 말을 듣지 않고 22세에 감옥에 갇혔던 것이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가 내게 대한 사랑 때문에 온갖 설명으로 내 신앙을 약화시키려고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아버지,이 그룻을 보세요! 이것이 물그릇이거나 다른 무엇이거나 상관 없을까요?  이것이 본래의 그것과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있을까요?’ 그러자 ’아니지.’하고 대답하셨다.

 

성녀 페르페투아는 ’그렇다면 저도 저의 있는 그대로의 이름인 그리스도인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저 자신을 부를 수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굳건히 신앙을 지킨 그리스도의 신부로 공경받고 있다.

성녀 펠리치따스는 임신 8개월의 아기가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당시 그녀는 페르페투아 귀족가문의 노예였다. 산모는 기적적으로 사형장에 끌려가지 않았다. 사형법에 따라 아기를 낳은 후에 처형하게 되었다. 엄청난 산고를 치르며 감옥에서 출산했다.  그녀 또한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며 살기를 바랬기 때문에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받아야 했다.

 

재판관은 으레 하는 질문을 한 후 그들을 맹수의 밥으로 던진다는 선고를 내렸다. 그 후 재차 감옥에 끌려들어 갔을 때 페르페투아는 동생인 지노그라도가 석방되었다는 것을 묵시 받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교할 날이 다가와서 처형장에 가까운 옥사로 이동되었을 때 당시 동생이 회개했다는 묵시를 받고 대단히 기뻐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갖은 말로써 권했으나 페르페투아의 결심은 물론 강철보다도 견고했다.

 

마침내 일동은 원형극장(콜로세움)에 끌려나가 맹수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도리어 기뻐하듯이 미소를 띠었다. "페르페투아 일행은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하느님의 귀여운 자녀답게"형장으로 나갔다.

 

페르페투아는 찬미가를 부르고, 레보카토, 사투르니노, 사티로는 군중에게 다가올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며, 또한 재판관에게 "당신은 우리를 재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재판하실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대단히 노하여 우선 그들을 지칠 때까지 매질했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모든 고통을 참아 내었다. 이제 맹수가 장내에 풀려졌다. 표범 하나가 레보카토와 사투르니노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넘어 뜨렸다. 그러자 곰이 그들의 몸을 찢었다. 사티로는 처음 어느 맹수에게도 습격을 안 당하고 옥중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있던 옥리(獄吏)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표범이 와서 그를 덮쳐 눌러 선혈(鮮血)이 땅을 적셨다.

 

사티로는 중상에도 굴하지 않고 저 옥리의 가락지를 달라고 하여, 이를 자기의 피에 적신 후 다시 주며 "그러면 잘 계십시오! 나의 것을 잊지 말고 이를 보고 용기를 내십시오"하고 말했다.

 

펠리치타스와 페르페투아는 그물에 싸인 채 소의 뿔에 매달려 내 던져졌다. 펠리치타스는 땅에 떨어져 일어날 수 가 없었지만 페르페투아는 일어나서 머리카락이나 의복의 흐트러진 것을 고치고 나서 펠리치타스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를 본 관중은 순간 감동된 것 같았으나 역시 그녀를 죽이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펠리치타스와 페르페투아, 그 외 아직 죽지않고 있던 신자들은 같이 칼로 참살되어 순교의 화관을 받게 되었다.때는 203년경이었다.

 

 

 

 

 

페르페투아는 그녀의 일기에서 감금된 동안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아! 얼마나 두려운 나날들이었던가? 군중들의 무서운 분노, 군인들의 거친 태도,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은 내 아기에 대한 걱정이었다. … 나는 이러한 고통을 여러 날 동안 겪어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기와 함께 감옥에 있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아기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 벗어나자 나는 즉시 건강을 회복했고, 그때부터 감옥은 나에게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그 곳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펠리치타스는 경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딸을 낳았다.페르페투아의 재판과 감금에 대한 기록은 경기 시작 바로 전날 끝났다. "경기장 자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원하는 사람이 그것을 기록하게 하자."그 일기는 목격자에 의해 마무리 지어졌다.

 

믿음에 대한 박해는 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안네 프랑크를 생각해 보자. 그녀는 유대인 소녀로 서 2차 대전중에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었으나 결국은 히틀러의 나치 당원들에게 잡혀 가스실에서 죽어 갔다.

 

안네는 페르페투아나 펠리치타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시련과 고통을 당했으며 결국은 죽음에까지 이른 것이다. 안네는 그녀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상이 흩어지고 파괴될 때, 사람들이 그들의 가장 사악한 면을 보이고 있을 때, 진리와 정의와 하느님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때에 우리의 영역을 고수하고 우리의 견해를 지탱한다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배 이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페르페투아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이렇게 위로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거룩한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에서

(Cap. 18,20-21: edit. Van Beek, Noviomagi, 1936, pp. 42,46-52)

 

그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아 간택되었다.

 

승리의 날이 밝아 오자 그들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듯 유쾌한 표정으로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마음 설레이며 감옥에서 원형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먼저 뻬르뻬뚜아가 소에 받혀 허공에 떴다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가 다시 일어서서 펠리치따스가 땅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함께 섰다. 관객들의 광포가 가라앉자 그들은 "사나비바리아" 라고 하는 문으로 호출되었다. 거기에서 당시 그와 친밀했던 예비자인 루스티쿠스가 뻬르뻬뚜아를 부축해 주었다.

 

뻬르뻬뚜아는 너무도 깊은 탈혼에 빠져 있었으므로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는 가운데 "우리가 언제 소에게 내던져 지나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미 내던져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 몸과 옷에서 허다한 광포의 흔적을 자기 눈으로 볼때까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음에 자기 오빠와 그 예비자를 부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에 견고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고통이 여러분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른 문에 있던 사투루스도 병사인 푸덴스를 격려하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예언한 대로 지금까지 나는 짐승에게 받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심으로 내 말을 믿어 주십시오. 나는 거기에 나아가 표범에게 한 번만 물어뜯기면 끝이 날것입니다." 이 살인 공연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그는 표범에게 내던져졌고 표범이 한 번 물어뜯자 피가 낭자하였다.

 

표범이 다시 물려고 돌아섰을 때 관중들은 그것을 제2의 세례로 인정하고 "피로 씻기운 자를 구해 주어라. 피로 씻기운 자를 구해 주어라."고 외쳤다. 이렇게 피로 씻기운 이는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사투루스는 병사 푸덴스에게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신앙을 잊지 말고 나도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오로지 이 일로 인해 강해지십시오." 그리고는 푸덴스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달라고 하여 자기 상처에 담그고는 자기 피의 증거와 기념으로서 그에게 유산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는 의식을 잃었고 다른 이들과 함께 목을 자르는 곳으로 내던져졌다.

 

군중이 순교자들의 몸이 창에 찔리는 광경을 살기에 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그들을 경기장 가운데로 끌어내 달라고 청했을 때, 순교자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군중이 원하는 곳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평화의 예식으로 순교를 완수하고자 서로 입맞추었다.

 

그들 모두는 움직이지 않고 침묵 중에 칼을 받아들였다. 사투루스는 뻬르뻬뚜아를 부축하여 있었기 때문에 맨 앞에 올라가 맨 먼저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뻬르뻬뚜아는 아마도 고통을 받고 있었음인지 내려치는 칼이 뼈에 닿는 것을 느끼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자원하여 서투른 초년생 검객의 손을 이끌어 자기 목에 갖다 대었다. 마귀까지 무서워 했던 그런 용맹한 여인이 스스로 자원하여 검객을 도와 주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그를 죽일 수 있었겠는가!

 

오, 더할 수 없이 용감하고 복된 순교자들이여! 여러분은 정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아 간택되었습니다.

 

 

 

♬내 발을 씻기신 예수(아카펠라)-폴라포니 앙상블

 

 

 

 

 

 

 



18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