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퍼온글]아이러브 스쿨~(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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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1-02-19 ㅣ No.8108

 

        "민우야, 촬영준비 다 됐니?"

         

        "네... 아까 준비 마쳐 놨어요"

         

        "그런데 지금 뭐하니?"

         

        "네... 그냥요..."

         

        "녀석, 또 그 그림보는구나...허허허"

         

        "헤헤... 아참, 지금 나가실거죠?"

         

        "그러자꾸나"

 

정말 오랫만에 다시 그림을 꺼내 보았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다 큰어른이

웬 로보트 그림이냐고 제가 이 그림을 꺼내 볼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그럴때 마다 저는

슬그머니 이 그림을 다시 접어서 지갑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둡니다.

지갑 깊숙한 곳에는 연수와 같이 봤던 만화영화 극장표도 들어있습니다. 두장이 나란히

들어있습니다.

정말 오랫만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한참동안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오랫만에 보는

그림에서 또다시 연수의 얼굴이 떠 올랐습니다.

 

        "녀석, 전에 말하던 그 친구는 아직 못만났니?"

         

        "네... 아직..."

         

        "그러지 말고 한번 수소문을 해보지 그래?"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고 차로가는 도중에 갑자기 사장님께서 연수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일전에 제가 흘리듯이 한번 이야기한것을 잊지 않고 가끔씩 물어보시는 통에 아주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하긴 내 국민학교때 첫사랑은 지금 아들이 대학교 간다고 난리더라"

         

        "만나보셨어요?"

         

        "일전에 동창회를 나갔었는데 그 친구도 왔더라구. 이젠 뚱뚱한 아줌마가 되서

        허허허"

         

        "재미있으셨겠네요..."

         

        "그 친구가 날 보구 첫마디가 뭔지 알아?"

         

        "뭔데요?"

         

        "야! 니 머리카락 다 어디갔어? 그러더라구 허허허"

         

        "많이 반가우셨겠어요"

         

        "그렇지... 다들 반가웠지. 예전 기억도 나고"

 

오늘 날씨는 참 좋습니다. 적당한 구름도 있어서 사진 촬영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오늘 야외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사진을 한장씩 찍고나서 웃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예쁘지 않은 신부는 예의가 없는 신부라고 했던가요? 오늘 신부도 행복한

모습입니다. 저는 노출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노출을 재고 있습니다.

 

        "민우야 이리좀 와봐라"

         

        "네..."

         

        "네가 한번 구도를 잡아보겠니?"

         

        "제가요? 전 아직 멀었는데요 뭐... 나중에 실력이 쌓이면 할께요"

         

        "그러지 말고 해봐. 너두 언제까지 노출계만 들고다닐 수 없잖아"

         

사장님께서 저를 위해 다른사람에게는 절대로 내어주시지 않는 카레라 앵글을 넘겨주셨습니다.

일전에 몇번 혼자 해본 경험이 있어서 낯설진 않지만 그래도 사장님이 옆에 계셔서 조금

떨리긴 합니다.

 

        "그래... 이젠 제법 하는구나... 녀석... 허허허"

         

        "아직 멀었는데요..."

 

오늘 야외촬영은 순조롭게 일찍 끝났습니다. 돌아오는 차에서 사장님께서는 또 연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십니다. 아무래도 제가 난처해 하는 모습이 재미있으신가 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결혼했을까?"

         

        "네? 누구요?"

         

        "녀석 시치미는. 누구긴 누구야 니놈 첫사랑이지"

         

        "글쎄요... 아마 했겠죠... 나이가 있는데..."

         

        "그렇지 여자 나이 28이면 결혼하고도 남았겠지..."

         

        "그렇겠죠..."

 

정말 그럴까요? 연수가 결혼을 했을까요? 아마 했을겁니다. 연수는 마음도 착하고 이뻤으니까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있을겁니다. 혹시 아이도? 후후... 글쎄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으로 돌아와도 맞아줄 사람이 없다는것이

가장 쓸쓸합니다. 책상 유리사이에 끼워져 있는 연수를 그린 그림이 저를 보고 웃고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생각한 연수의 어렸을때 모습을 상상해서 지금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서 그려본 그림이지만 보면 볼 수 록 잘못 그린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모습

보다 훨씬 이쁘게 변해 있겠지요...

 

내일은 오랫만에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사장님께서 특별히 하루 시간을

주셔서 모처럼만의 내 시간이 생겼으니까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렌즈에 담아봐야 겠습니다. 오랫만의 출사라 조금 기대도 됩니다.

 

 

다음날 아침 동이 터오는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적당히 아침을 때우고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삼각대를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 한가운데

서 있다보니 모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저 혼자 정지된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는데... 오늘은 그런 사람들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항상 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카메라 셔터에 올려두고 이리저리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한롤 필름을 다 쓰고 저는 흑백필름으로 바꾼 후 나는 시장어귀로 들어섰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확인하려면 시장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곳에는 삶이 있다고.

그말은 맞는 말입니다. 시장속에는 치열한, 너무나도 치열한 삶이 있습니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치열한 삶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가끔씩 보게되는 장사치들과 손님들과의

실랑이도 그래서인지 대수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잔돈 몇푼에 인생을 걸어버린것 같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인생이 무엇인지 느껴지곤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벌써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후였습니다. 점심을 길거리에서 핫도그

하나로 때웠더니만 몹시 허기가 집니다. 급하게 밥을 얹히고 오늘 찍은 필름들을 꺼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컬러필름들은 내일 사진방에 가서 짬짬히 하면 될거고 흑백필름은 바로

꺼내서 현상액에 넣었습니다. 사진이 서서히 드러나는 멋진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칙칙거리며 압력솥에서 밥이 되는 소리와 함께 전화기 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야?"

         

        "웬일이니? 오빠한테 전화를 다하구"

         

        "엄마가 오빠 잘 있냐구 전화 해보라구 그러시잖아..."

         

        "그럼 그렇지... 어머님 좀 어떠셔?"

         

        "많이 괜찮아 지셨어. 기침도 많이 줄었고."

         

        "네가 잘 보살펴 드려..."

         

        "걱정마... 오빠나 잘해..."

         

그래도 동생이라고 오빠걱정하는 은경이가 대견해 보입니다. 아직 철이 다 들지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아프신 다음

은경이가 생각이 바뀌었나 봅니다.

 

        "너 그런데 요즘에도 일만이가 계속 따라다니니?"

         

        "정말 죽겠어, 일만이 오빠 때문에..."

         

        "너 좋다는데 뭐가 싫어..."

         

        "난 일만이 오빠 싫단 말야... 사람이 키만 커가지구..."

         

        "너 매일 키큰 사람이 좋다구 그랬잖아, 어렸을 때 부터"

         

        "그치만 일만이 오빠 같은 사람은 아니란 말야"

         

        "일만이 한테 잘 해줘. 그놈두 알구보면 좋은 놈이야..."

         

        "몰라.... 치이..."

 

다음주쯤 주말에 시간이 나면 집에 한번 내려가야 할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뵌지도 육개월이나

훌쩍 지나가 버렸군요. 은경이와 전화를 끊고 흑백 필름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인화지에 한장한장 사진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렴풋 하게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눈과 코 그리고 입등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것이 사진의 매력이랄까요

 

적당히 사진을 현상하고 집게에 하나씩 걸어 말리도록 걸쳐놓고 밥을 먹었습니다.

김치를 거의 다 먹었군요. 이젠 김하고 밥하고 먹어야 될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

이라고 밥맛은 꿀맛입니다.

식사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얼만큼의 시간이 흐른 다음 대충 사진이 말랐을것 같은 시간에

암실로 들어가서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시장에서 찍은 노점상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살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 주름살은 할머니가 어떻게 평생을 살아오셨는지 나에게 말해주는것

같았습니다.

 

후후, 이 사진은 아까 실랑이를 하던 두 아주머니를 찍은 사진이군요. 두 아주머니의 얼굴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후후, 이것도 인생이겠죠?

그때 갑자기 저는 사진 배경에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크게 나온 얼굴은 아니지만

두 아주머니의 실랑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이 그 사진에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것같은 얼굴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내가 상상해서 그린 연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내가 그린 연수의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있는 여자의 얼굴과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난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비슷할 수가... 적어도 눈은 똑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연수의 웃는 눈매가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사진의 여자가?

나는 다시 급하게 암실로 들어가서 그 사진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사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사진이 채 마르기도 전에 들고 나와서는 다시 내가 그린 연수의

모습과 비교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내가 상상했던 연수가 찍혀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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