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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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6 ㅣ No.5251

                           부 부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들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들

 

하지만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 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이크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살며시 다가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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