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정의/사랑] 도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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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Almaz] 쪽지 캡슐

1999-06-30 ㅣ No.636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교외의 휘셀몽에 자리잡은 도미니크 수도원은 도미니크회

수녀님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곳이다. 매일 기도와 노동을 반복하며 평화로운 일

상이 계속되는 이 수도원으로 일 년에 몇 번씩 브뤼셀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피정을

위해 찾아온다. 이때 저녁 명상과 성서 공부를 끝마친 여학생들은 수녀님들

과 함께 풀냄새가 향기로운 수도원 뜰로 나가는데, 그때마다 수도원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쇠르 수리르 수녀님은 애지중지 아끼는 기타를 퉁기며 자신이 쓴

시에 직접 멜로디를 붙인 성가를 불러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곤 했다.

 

5월 중순경의 어느 해질녘이었다. 넓은 수도원 뜰은 여전히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정원의 무성한 꽃들은 봄의 미풍에 살랑거리고, 시적 흥취에 젖

은 소녀들이 노래를 듣기 위해 쇠르 수리르 수녀님의 곁으로 모여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수녀님을 가운데로 하고 빙 둘러앉았다.

 

성 도미니크님은 가난한/나그네가 되어/노래하며 전도의 길을 떠났지요

/가는 곳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존 래크랜드가 영국의 왕이었을 무렵

/성 도미니크님은 오히려/그의 마음을 개심시켰어요/나귀도 없이 마차도 타지 않고

/성 도미니크님은/유럽을 걸어서 돌아다녔어요/스칸디나비아와 프로방스를

/학교에서는 소년도 소녀도/성 도미니크님의 가르침에/귀를 기울였죠

/하느님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가늘게 떨리는 듯 아름답고 리드미컬하게 흘러나오는 수녀님의 목소리와 기타의

투명한 음은 마치 영감에 찬 언어처럼 저녁의 고요를 울리는 듯했다. 지치고

메마른 심정에 신선한 샘물을 주는 하느님의 위로처럼 들리는 그 노래의 아름다움

에 넋을 잃은 소녀들은 노래가 끝났어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수녀님, 집에서도 들을 수 있게 이 노래를 레코드로 만들어 주실 수 없을까요?"

소녀들의 뜻밖의 간청에 수녀님은 깜짝 놀랐다. 동료 수녀님들도 이구동성으로 그

노래를 찬양하면서 레코드 취입을 권했다.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한 쇠르 수리르

수녀님은 자신의 기타 아델을 들고 동료 수녀님들과 함께 레코드 취입을 위해 브뤼

셀로 향했다.

 

브뤼셀에 도착한 수녀님과 동료 수녀님들은 도시의 소음과 거대한 건물들에 압도

당해 잠시 자신감을 잃는 듯했지만, 곧 용기를 내어 필립스 레코드사를 찾아

가 레코드를 만들고 싶다고 청했다. 악보를 본 레코드사는 취입을 승낙했고,

기타를 손에 들고 녹음실에 들어간 수녀님은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유럽에

널리 하느님의 복음을 전한 성인 도미니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녹음

을 끝내고 나온 수녀님에게 필립스 레코드사의 프로듀서는 뜻밖의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수녀님, 이렇게 창조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세상 사람들에게도 들려줄 수 없을

까요? 허락해 주십시오."

수녀님은 기꺼이 하락한 뒤 브뤼셀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수도원의 고요

속으로 돌아와 사랑과 평안이 깔린 그 투명한 일상 속에 파묻혔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1962년 봄, 실로 경이적인 이변이 일어났다. 마치 초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상쾌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전도가풍의 멜로디가 전

세계적인 유행의 물결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성(女聲)코러스를 곁들여,

듣는 이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윤기를 안겨 주는 그곡은 바로 쇠로

수리르 수녀님이 네명의 동료와 함께 브뤼셀의 필립스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노래

<도미니크>였다.

 

쇠르 수리르 수녀님의 노래는 먼저 벨기에에서 유명해진 뒤 프랑스,네델란드 등

유럽 곳곳에 울려펴졌다. 그리고 미국의 히트 퍼레이드에 선보이자마자, 가사가 프

랑스어임에도 불구하고 차트 1위로 뛰어올라 단 3주만에 50만 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그 결과 수녀님의 이름이 온 세계에 알려지고, 도미니크 수도원의

수녀에 지나지 않았던 쇠르 수리르는 세계적인 인기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쇠르 수리르’라는 이름은 여전히 우리들

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FM방송을 통해 자주 흘러나오는<도미니크>의

그 아름답고 감동적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깊은 신앙심과 음악혼이 조화를 이

룬 최고의 예술작품임을 실감하게 된다.

 

 

                                                       서남준 님/음악평론가

 

 

주님과 함께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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