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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4001스텔라-아펜셀러목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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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기 [songsk] 쪽지 캡슐

2003-10-06 ㅣ No.4006

아펜셀러 목사는 1885년 최초로 이 땅을 밟은 선교사이다.

그는 1902년 목포 앞 바다에서 순회 전도하러 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너무 많이 태워 배가 침몰하였다. 그때 그는 헤엄쳐 살 수 있었지만 어린 소년이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물로 뛰어 들어 소년을 건지고 자신은 힘이 빠져 익사했다. 안타깝게도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에게는 당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14세의 <헨리 닷지 아펜셀러>라는 아들이 있었

다. 그의 아들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한다.

"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아펜셀러 목사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겸손한 분이었고 누구보다도 조선땅과 조선 사람

을 사랑한 것 아시지 않습니까 ?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거의 쉬는 날도 없이 조선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까 ? 이제 44세. 아직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는 나이인데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습니까 ? 하나님, 왜 그렇게 우리 아버지를 빼앗아 가셨습니까 ? "

 

어린 나이라 그렇게 원망도 했으나 그러나 조선은 그에게는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존재로

남아 결국 그도 1917년 조선 선교사로 지원, 배재학교 교장, 이화여전 교장 및 한국내 학교재단 지원을 위한 미국내 모금운동으로 봉사하다가 1950년 12월 병이 나서 뉴욕 감리병원에 입원했다가 임종시 이렇게 주위사람들에게 유언을 했다.

"나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나를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물 설고 낮 설은 이국 땅까지 와서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

족들까지 희생시켜가며 이 땅을 사랑했단 말인가 ?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 아래서

나라의 빗장이 굳게 닫혀져 있었으며 환경적으로도 열악한 곳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 !

사랑의 빚을 졌기에, 복음의 빚을 졌기에 그들은 빚을 갚으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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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지재단(www.kwf.or.kr)은 미국기독교아동복지회(C.C.F)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기관으로 1960년대 [아펜센러 어린이회]의 활동을 통합하여 그러한 장학사업을 하였던 곳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미국에서의 편지는 결연된 후원자인 C C F (Christian Children’s Fund)의 회원이 보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스텔라자매님의 어린시절 추억을 사랑합니다.

꽁치 + 무우 많이 넣고 조려서 밥상에 냄비채 올려놓거나, 연탄불에 구우면 2토막씩 할당하던 시절...... 쌀이 부족하여 감자 한덩어리씩 밥에 넣어주던 시절.....밀가루 칼국수는 거의 1주일에 3~4회는 기본으로 먹던시절......달걀반찬은 국민학교 6년간 생일날과 소풍날에만 싸가던 시절.....

 

그래서 그것이 한(?)이 맺혀 달걀반찬은 항상 넉넉하게.....

꽁치는 보통 한짝(70~80마리)씩 사서 나눠먹고........

 

다음에 저희집에서 달걀찜 + 달걀중탕 + 달걀그냥말이 + 달걀김말이 +  달걀국  + 달걀후라이 + 달걀반숙 + 달걀 간장조림 + 생달걀 노른자 간장부어 밥한그릇 + 생달걀 버터에 비벼 밥한그릇 + 초란 + 달걀 노른자흰자 분리한 고명 + 마지막으로 찐달걀.......  

파티 어때요?  

 

군에서 달걀을 대량으로 먹을 땐 이렇게 합니다.

송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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