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9월28일 성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순교자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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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09-28 ㅣ No.668

9월 28일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  (+ 1633-1637)

* 에르키시아의 성 도미니꼬, 야고보 토모나가, 라우렌시오 루이스 평신도와 13위 동료 순교자*

S. Dominicus Ibanez de Erquicia, S. Iacobus Tomonaga, Lorenzo Ruiz et 13 socii martyres(+ 1633-1637)

 

17세기 초(1633-1637)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그의 동료 순교자 16명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일본 나가사키에서 피를 흘렸다.

 

이 순교자들은 성 도미니꼬회 회원과 그 협조자들로서 9명의 사제, 2명의 수사, 2명의 동정녀, 3명의 평신도들인데 그중 한 사람이 필리핀 출신의 라우렌시오 루이스로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시기와 상황 아래 필리핀과 대만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씨앗을 뿌리며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경이롭게 드러냈고 자신들의 삶과 죽음의 표양을 통해 미래의 그리스도교를 위한 불굴의 선교 정신을 훌륭하게 심어 주었다.

 

 

요한 바울로 2세 교황이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들의 천상 영광을 공표하기 위하여 마닐라에서 거행한 장엄 미사 강론의 발췌

(AAS 73, 1981, 340-342)

 

"그들은 자신의 피를 흘려 하느님께 향한 훔숭과 사랑 행위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증거한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당신께 대한 신앙을 충실히 고백한 순교자임을 하느님 아버지 대전에서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 영광송은

1637년 12월 27일 성 도미니꼬 성당에서 저녁 기도때 울려 퍼진 사은 찬미가 떼 데움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순교의 소식이 그 성당에 전해 졌습니다.

16명의 그리스도인들, 그들 중에는 스페인의 데온 출신으로 도미니꼬 회원이며 장상이었던 안토니오 곤잘레스 신부, 마닐라 태생으로 비논도라는 변두리 지역 출신의 한 가장인 라우렌시오 루이스가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자비와 권능의 아버지께 시편 기도를 노래했습니다. 그들의 순교는 장장 3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의 선포는 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는 모든 이를 태양과 같이 비추어 줍니다. 이 세상의 가르침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은 하나이고 동일한것입니다.

주 예수는 모든 종족과 언어와 민족과 국가로부터 모여둔 당신의 종들을 당신 피로 구속하시고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제의 왕국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16명의 복된 순교자들은 세례와 서품의 사제직을 수행하여 스스로의 피를 흘림으로써 하느님께 사랑과 예배의 위대한 행위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제단위에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사제이시고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가깝게 닮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형제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우리들도 형제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놓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자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먼저 내놓으심으로 본보기를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 루이스는 이를 성취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위험에 가득찬 여행을 마치고 예상치 못하던 최후를 맞이하여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며 하느님을 위해 죽을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수천 번이라도 바치겠습니다. 결코 배교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없애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는것이 내 소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생명과 신앙이 절정에 달함을 보고 또한 그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순간에 이 젊은 가장은 신앙 고백을 하였고 비논도의 성 도미니꼬 수도회의 수사 학교에서 배운 그리스도교 교리를 완성시켰습니다.

 

교리의 유일한 중심은 오로지 그리스도인데 그는 그 그리스도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고 그리스도 자신이 전달자의 입술을 통해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 루이스가 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모범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지향하여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바로 이를의미합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봉헌하는 것, 이는 모든 이가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일본 교회사*

일본에 그리스도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1549년 8월 15일 예수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Francisco Xavier)가 말라카(Malaca)에서 만나 고아(Goa)에서 입교한 일본인 "안지로"의 안내를 받아 가고시마에 입국한 뒤부터였다. 일본에서는 이 때부터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는 물론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포르투갈어의 발음을 따라 "기리시땅"이라고 불렀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1614년 기리시땅의 전면적인 금교령을 선포하고, 성당을 파괴시키고 신자명부를 작성케 하며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외국인 선교사를 마카오와 마닐라로 추방하였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일본교회는 수난을 이겨내며 신앙을 고수하였다.

마닐라 등지로 추방되었던 선교사와 그곳에서 성직자가 된 일본인들이 다시 잠입하자 신자들은 목숨을 걸고 성직자를 보호하였다. 목자를 잃는 경우에도 신자들은 신심회를 조직하여 신앙을 굳게 지키고 붙잡히면 고결한 순교자가 되었다.

 

1623년 도꾸가와 이에미쓰가 3대 장군으로 등장하자 기리시땅 탄압을 철저히 제도화하였다. 그해 10월 두 선교사를 체포하는 한편 에도에서 이름있는 기리시땅 46명을 잡아들여 세 조로 나누어 거리에 조리 돌리다가 가장 번화한 곳에서 화형에 처하는 등 기리시땅 말살정책을 강행하였다. 12월 4일에 처형당한 이 사건을 ’에도의 대순교’라고 한다. 이어 전국적으로 기리시땅 수색을 강화하여 신자를 숨겨준 사람까지 사형에 처하였다. 규우슈우에 잠복해 있던 외국인과 일본인 사제는 모두 색출되어 사형을 받았다. 일반 신자에게는 세뇌공작과 잔인한 고문으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였다. 그 결과 1630년에는 일찍이 ’소(小)로마’로 불리던 나가사끼에도 신자가 거의 전멸된 상태였다.

1633년에는 지도급의 기리시땅에 대하여 ’생매장’이라는 잔인한 고문방식이 채용되었다.

 

*일본 26 성인상*

1593년 프란치스꼬회 선교사들이 일본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벌인 것이 도요또미히데요시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다. 또한 1596년 도사에 표착한 스페인 선박 산펠리페호 사건까지 겹쳐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부채질 함으로써 1597년 2월 5일 프란치스꼬 수사 6명을 비롯한 3명의 예수회 수사와 미끼등 일본인 17명이 나가사끼, 니시사까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1862년 성인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시성 100주년을 맞이한 1962년 6월 10일 기념비가 완성되었다. 화강압 대좌에 26성인의 청동상이 하늘을 우러러 복음을 말하고 있다.

1981년 2월 2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이 순교지를 방문하여 이 기념비가 전세계를 향하여 사랑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끊이지 않고, 신앙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고 말씀하셨다.

 

26성인중에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잡혀가 그곳에서 영세 입교하고 성프란치스꼬 삼회에 입회하여 역행을 쌓다가 순교한 성바오로 이바라끼, 그의 동생 성내오이바라끼 그의 아들 12세의 소년 루도비꼬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교회의 한국인 순교자*  

임진왜란(1592-1598)의 결과 많은 한국인이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 일본은 1587-1687년에 이르는 약 100년간 막부에 의한 그리스도교 박해가 계속되어 많은 순교자가 배출되었다. 그 후 1867년 7월 교황 비오 9세는 순교자 205명을 시복하였는데, 그 205복자 순교자 중에는 9명의 한국인과 3명의 그 일본인 아내가 포함되었다. 이들은 모두 규우슈우의 나가사끼에서 순교했으며 이 밖에도 복자아닌 한국인 순교자 9명이 기록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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