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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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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0-01 ㅣ No.673

 

축일;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Teresa 동정 학자 대축일(1873-1897) 리즈외.포교사업의 수호자

 

성녀 소화데레사에 있어서의 하느님과 영혼의 역할에 대해.

 

"엄마에게 가기 위해 계단 꼭대기까지 기어이 올라가고

싶은 아이는 그 작은 발을 들어 계단의 첫 단을 오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 떨어집니다.

이 어린아이 처럼 되어 봅시다.

 

성서의 계단을 오르기 위해 덕이란 덕을 모두 실천하면서

자매의 작은 발을 언제나 들어 올리세요.

 

그렇다고 자기 힘으로 한 단이라도 올라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 뿐 입니다.

 

계단 꼭대기에서 하느님은 자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멀지 않아 자매의 그 무익한 노력에 감동하시어

당신 친히 내려 오셔서는 자매를 품에 안고

더 이상 그분과 떨어지지 않을 영원한 왕국으로 데려가실

것 입니다."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리지외의 봉쇄 수녀원에서 숨어 살던 가르멜 수녀인 예수 아기의 데레사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젊은 수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얼마 안된다.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한 영혼의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읽혀지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레사 마르탱은 15세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세가 되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평온 무사한 것이었고 주로 모든 집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시간을 구속한다는 거룩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따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고통 안에서 구원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 고통은 참으로 그녀의 사도직이 되었다.

 

데레사는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왔다." 고 말했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썼다.

 

데레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금’이라는 말과 그 이미지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리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취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데레사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 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썼다.

데레사는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지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현대인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료들과 떼어 놓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든다.

현대인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밖으로 자신을 끌어 낸 하느님을 관상하며 자신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가 지닌 직관이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렸을 때 데레사는 석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어 있었는데 그 어려운 고비를 겪고 의식을 잃어 정신이 계속 희미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허약했으나 그래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했다.

 

데레사는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데레사는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었다.

그래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그녀는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렸다.

 

데레사는 참으로 장한 여인 이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을 아는 한 위인의 위대한 점이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연금술이기도 하다.

 

데레사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것에 대하여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외에 누가 참으로 세상을 회개시키겠는가?

☆소화 데레사 교회 박사 선포

 

"1997년 10월 19일 전교주일을 기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를 교회박사로 선포한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교회박사 칭호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등 두 분의 교회박사에 이어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 갖는 칭호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은 자, 하찮은 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 부여되는 박사 칭호.

교회는 왜 데레사 성녀에게 교회박사, 학자의 칭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학자란 어떤 것인가?

 

연구하는 사람이나 논문 등으로 박사 자격을 얻듯이 무슨 특별한 자격을 얻는 것인가? 시성된 성인 가운데서 그가 남긴 글이나 저서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성인에게 교황이나 공의회가 교회학자로 공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회학자가 탄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교회학자는 거의 남성이었는데 요즘에 와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두 분의 여성이 교회학자로 선정됐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는 여성으로는 세 번째가 된다. 교회학자가 돼서 얻게 되는 자격은 미사나 성무일도 등 전례에서 교회학자로 기림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회학자 선언에서 겨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가르침, 메시지를 보편적 권위로써 인정했다는 무게를 갖는 것이다.

 

-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경우

 

<자서전>을 읽어도 특별히 어려운데는 없다.

가르멜회에 열 여섯 살에 들어갔고 별로 공부했다 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학자라는 칭호가 데레사 성녀의 경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학자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학자’라는 칭호에 대한 이미지의 문제라고 본다.

옛사람 들은 영리한 어린이들의 장래를 ’학자’나 ’장관’으로 기대하기도 했는데 일반적으로 ’학자’라는 말에는 우수한 두뇌나 고학력 입신출 세에 성공한 자라는 인상이 짙다.

이러한 이미지로 본다면 데레사에 게 교회 학자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녀는 자신을 ’작은 자 ’’하찮은 자’라고 온 생애 동안 계속 말해 왔다.

"나는 들녘의 아침이슬과 같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사람들에게도 보여지지 않고 곧장 사라지고 맙니다. 이슬을 보는 이는 하느님 뿐, 하느님께만 보여지는 아침이슬처럼 되고 싶습니다"고 한 성녀의 말도 있지 않은가.

"끝까지 작은 자이고 싶습니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의 영성의 특징인데 모든 이에게 우러러 보이는 교회 학자라는 칭호에 가장 당황하는 이는 성녀 자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황이 데레사를 교회 학자로 선언하는 것은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와 영성에 뛰어난 빛이 있음을 모든 이에게 보증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겸손한 데레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칭송 받는다 하더라도 무력한 어린이라는 자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와 영성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빛과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는 학문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학력이 없다. 훌륭한 학문적 논문도 남기지 않았다.

가르멜 수녀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 앞에서 이야기 한 적도 물론 없었다.

그 가 남긴 것은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쓴 공책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가 사용했던 공책의 매력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나약함, 무력함을 신앙의 빛으로 하나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록 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데레사는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를 대신해 주던 둘째 언니에 이어 맏언니마저 가르멜에 들어갔다. 계속되는 이별을 체험해 마음의 동요를 느낀 데레사는 균형을 잃고 무너져 가고 있었다.

데레사는 이별을 자신을 부축해주는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만 받 아들였다. 이런 유년기의 체험에서 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했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나약함은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낫지 못하리라고 확신하고 그 사랑을 찾는데 인생의 삶을 집중시켰다.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사랑으로만 평온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사랑없이는 빛나지 못하는 인간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데레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찾았고 오로지 그분 안에서 자신을 벌거벗고 위탁하려고 했다.

그리고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에만 온 삶을 바친 데레사의 생애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유는 데레사의 과제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데레사 메시지의 보편적 울림이 있다.

 

☆21세기를 몇 년 뒤에 맞이하려는 이때 데레사가 교회 학자로 선포되는데 시대적 의미가 있는가?

 

시대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그가 살아온 시대에서도 데레사의 신앙생활은 매우 특유한 것이었다.

19세기말의 프랑스 교회에는 아직도 얀세니즘의 영향이 깊이 남아 있었다.

얀세니즘이란 당시의 부패된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선 각자가 거룩하게 되어야 하 고 그 때문에 엄한 억제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열심한 수녀들은 솔선하여 엄한 고행과 희생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데레사는 작은 존재에게는 고행도 희생도 맞갖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 버리는 신뢰야말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확실한 길이라 단언했다.

 

"이층에 간 어머니를 찾아 우는데 애기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데레사는 대담하게 잘라 말했다. 어머니를 찾아오는 애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내려와서 아기를 안고 이층으로 데리고 갈 것이 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작은 존재가 드리는 신뢰로 가득 찬 필사적인 기도에 달려오시어 천상으로 데려가신다.

자비하심에 대한 신뢰에 철저해야 되다고 하시며 단순한 신뢰를 중심에 둔 데레사의 신앙생활은 그 당시에 행하던 복잡하고 엄한 신앙생활에 얽혀 있던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데레사의 단순한 신뢰의 길은 수험, 진학 경쟁으로 그리고 엄한 관리교육의 무게 속에서, 또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숨넘어가게 되고 질식하게 된 현대인에게 회복의 길을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

 

☆’작은 여왕’, ’소화데레사’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우는 데레사 성녀는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자 루이 마르탱과 젤리 궤렝의 딸로 태어난 그녀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 테레즈(1873-1897년)였다.

 

1888년 아직도 어린 데레사는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이미 이곳에는 그녀의 두 언니도 수녀로 있었다.

9년 동안의 가르멜 생활은 다른 자매들과 견주어 볼 때 독특한 면은 거의 없고, 그저 평범한 생활이었지만, 일상적인 기도와 일, 자만심에서 기인한 과오, 극복해야 했던 고집스런 성격 및 내외적인 갖가지 시련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서 ’작은 길’을 용감하게 개척하며 전진해갔던 것이다.

 

1895년 초, 데레사 수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한 글을 쓰도록 지시를 받았고, 그후에 또 다른 생활 기록을 첨가하였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한 영혼의 이야기"이며, 데레사가 비범한 한 거인이었음을 증명하였다.

 

사실은 이 책이 리지외의 데레사 공경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녀는 1897년 9월 30일 24세의 일기로 많은 고통을 당한 후 선종하였다.

 

봉쇄구역 안에서 영혼들을 구원과 교회의 쇄신 그리고 선교지역을 위한 놀라운 기도로 지낸 생애를 기리기 위해 교회는 그녀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모시고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있다.

 

성녀 데레사는 1925년에 "아기예수와 성안(聖顔)성데레사"라는 이름으로 시성되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리지외로 몰려들었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녀의 자서전」에서

(안응렬 역, 1975년, 가톨릭 출판사 pp.229-230)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묵상할 때 이 간절한 원이 순교에 못지 않은 고통이 되어서, 무슨 대답을 찾을 양으로, 성 바울로의 서간집을 폈습니다. 고린토 전서 12장과 13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이가 한꺼번에 사도와 예언자와 학자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없다는 것, 교회는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눈은 동시에 손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하였지마는, 제 원이 채워진 것은 아니었고, 평화가 온 것도 못되었습니다. 성녀 막달레나가 텅빈 무덤가에 앉아 줄곧 굽어보다가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을 발견했던 것같이, 저도 제 허무의 깊은 속까지 저를 낮춤으로 몹시도 높이 올라가 제 목적에 다다르게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실망치 않고 그대로 읽어 나가다가 이 구절에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도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아무리 완전한 특은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지를 설명하시고,

천주께로 확실히 가기 위해서는 애덕이 가장 훌륭한 길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마침내 저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성교회의 신비체를 살펴보니, 성 바울로께서 설명하신 아무지체에서도 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모든 지체에서 저를 찾아 내고자 하였습니다.

 

애덕”이 제 “성소”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저는 만일 교회가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졌다면, 모든 기관 중에 제일 필요하고 제일 귀한 것이 그에게는 없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이 꺼질 지경에 이른다면, 사도들은 복음을 더는 전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 것, 즉 한 말로 말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무고 미칠 듯이 기쁜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여!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천주여, 이 자리를 제게 주신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 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제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르멜 산(Mount Carmel)의 성모 마리아(축일 7월 16일 )

 

7월 16일은 "가르멜산의 성모님" 축일이고

이 날은 가르멜 수도회의 가장 큰 대축일이다.

이 날을 축일로 서방 교회가 거행하기 시작한 것은 1926년이며,

가르멜산의 성모 공경, 가르멜회의 영성 그리고 스카플라의 하사 등을 기념한다.

 

가르멜 산의 예언자 엘리아 ( 축일 7월 20일 )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의 경계 지대를 따라 나자렛에서 2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르멜산은 화려할 만큼 아름답기에(이사 35:2, 예레 50:19), 은총과 축복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가르멜은 히브리어 카렘 엘(Karem El)로서 "하느님의 정원과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성서에 따르면, 가르멜산은 무엇보다도 계약을 갱신한 산,

그리고 엘리아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개입이 드러난 산이다(기원전 9세기).

 

가르멜산 위에서 불에 의한 대결이 승리로 끝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섰고, 그분과 더불어 계약을 갱신하였다(1열왕 18:20-40).

이와 비슷하게, 가르멜산에서 엘리아는 오랜 가뭄 끝에 간절히 기다리는 비를 위해 일곱 번이나 기도하니, 마침내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한 장 떠올라,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1열왕 18:41-46)

이렇듯 가르멜산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예언자 엘리아가 생각난다

 

가르멜 수도회

http://mr.catholic.or.kr/carmelite/car_index.htm

 

♬두메꽃(최민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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