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잊을 수 없는 사람(무소유 - 1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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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ㅣ No.12411

그런데 해제 전날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찬물로 목욕한 여독인가 했더니, 열이 오르고 구미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해제는 되었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산에서 앓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수행자는 성할 때도 늘 혼자지만 앓게 되면 그런 사실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에 의료기관도 없다.
그저 앓을 만큼 앓다가 낫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철저하게 무소유였다.
밤이면 헛소리를 친다는 내 머리맡에서 그는 줄곧 앉아 있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떠오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갈아 주느라고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잠깐 아랫 마을에 다녀오겠다고 나가더니 한낮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도 감감 소식이었다.
쑤어 둔 죽을 저녁까지 먹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밤 열 시 가까이 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의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약을 마시라는 것이다.
이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고 말았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암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래야 40여 리 밖에 있는 구례읍이다.
그 무렵의 교통 수단이라고는 구례 장날에만 장꾼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있었을 뿐이다.
그날은 장날도 아니었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서로가 돈 한 푼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구례까지 걸어가 탁발을 하였으리라.
그 돈으로 약을 지어 온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 것이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심신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반의 정이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토록 간절한 정성에 낮지 않을 병이 어디 있겠는가.
다리가 좀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 다음날로 나는 거동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거처하던 암자에서 5리 남짓 깊숙이 올라가면 폭포 곁에 토굴을  짓고 참선하는 노스님 한 분이 계셨다.
노스님이 무슨 볼일로 동구 밖에 다녀올라 치면 으레 우리들 처소에 들르곤 했다.
그때마다 노스님이 메고 온 걸망은 노스님보다 먼저 토굴에 가 있었다.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듯 무슨 일이고 그가 할 만한 일이면 말없이 선뜻 해치웠다.
 
한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한 채 각기 운수(雲水)의 길을 걸었다.
서신 왕래마져 없으니 어디서 지내는지 서로가 알 길이 없었다.
운수들 사이는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통했다.
세상에서 보면 어떻게 그리 무심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서로가 공부하는 데 방해를 끼치지 않도록 배려해서다.
 
인정이 많으면 도심(道心)이 성글다는 옛 선사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집착은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해탈이란 온갖 얽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얽힘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기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한 사문들은 어느 모로 보면 비정하리만큼 금속성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냉기는 어디까지나 긍정의 열기로 향하는 부정의 단계다.
긍정의 지평에 선 보살의 자비는 봄볓처럼 따사롭다.
 
내가 해인사로 들어가 퇴설선원(堆雪禪源)에서 안거하던 여름,
들려오는 풍문에 그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름 살림이 끝나면 그를 찾아가 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더니,
그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지리산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게 된 우리는 서로 반겼다.
그는 여전히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보다 안색이 못했다.
앓았느냐고 물으니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약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가 퇴설당에 온 후로 섬돌 위에는 전에 없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여남은 켤레 되는 고무신이   한결같이 하얗게 닦이어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다.
물론 그의 밀행(密行)이었다.
 
                                                        - 법정, 1970 - (무소유 -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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