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잊을 수 없는 사람(무소유 - 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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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ㅣ No.12417

노스님들이 빨려고 옷가지를 벗어 놓으면 어느새 말끔히 빨아 풀먹여 다려 놓기도 했다.
이러한 그를 보고 스님들은 '자비 보살'이라 불렀다.
 
그는 공양을 형편없이 적게 하였다.
물론 이제는 우리도 삼시 세 끼를 스님들과 함께 먹고 지냈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 말하고 그를 억지로 데리고 대구로 나갔다.
아무래도 그의 소화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찰을 받고 약을 써야 할 같았다.
 
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 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를 죄어 놓았다.
무심히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는 이렇듯 사소한 일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에게는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니다.
그는 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 해 겨울 우리는 해인사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스님들은 그를 자유롭게 지내도록 딴 방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과 똑같이 큰방에서 정진하고 울력(작업)에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반 살림(안거 기간의 절반)이 지날 무렵 해서 그는 더 버틸 수가 없도록 약해졌다.
치료를 위해서는 산중보다 시처가 편리하다.
진주에 있는 포교당으로 그를 데리고 갔었다.
사흘이 지나자 그는 나더러 안거중이니 어서 돌아가라고 했다.
그의 병세가 많이 회복된 것을 보고 친분이 있는 포교당 주지 스님과 신도 한 분에게 간호를 부탁했다.
그가 하도 나를 걱정하는 바람에 나는 일주일 만에 귀사했다.
 
두고 온 그가 마음에 걸렸다.
전해 오는 소식에는 많은 차도가 있다고 했지만.
 
그 겨울 가야산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한 주일 남짓 교통이 두절된 만큼 내려 쌓였다.
밤이면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에 꺾인 것이다.
 
그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쌓이는 눈의 무게에 못 이겨 꺾이고 마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오묘한 이치를 산에서는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꺾여진 나무를 져 들이다가 나는 바른쪽 손목을 삐었다.
한동안 침을 맞는 등 애를 먹었다.
그 무렵 나는 조그만 소포를 하나 받았다.
펼쳐 보니 삔 데 바르는 약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사 보낸 것이다.
말이 없는 그는 사연도 뛰우지 않은 채였다.
 
나는 슬픈 그의 최후를 되새기고 싶지 않다.
그가 떠난 뒤 분명한 그는 나의 한 분신이었음을 알 것 같았다.
함께 있던 날짜는 일 년도 못 되지만 그는 많은 가르침을 남겨 주고 갔다.
그 어떤 선사보다도,
다문(多聞)의 경사(經師)보다도 내게는 진정한 도반이요, 밝은 선지식이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行)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 주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말로 해서 자비의 화신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 법정, 1970 - (무소유 - 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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