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인형과 인간(무소유 -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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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1 ㅣ No.12420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 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禪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종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버스는 그 안에 실려 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적잖게 부여하고 있다.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그 선량한 눈매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보이는 그 눈매들이 나 자신을 맑게 비추고 있다.
그 눈매들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러한 연대감을 갖게 한다.
 
나는 얼마 전부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탈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타고 싶지가 않아서다.
주머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멋대로 우쭐대는 물가의 그 콧대에 내 나름으로 저항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택시 안에서는 연대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돈을 더 내면 편하고 신속하게 나를 운반해 주겠지만,
그때마다 이웃과의 단절을 번번이 느끼게 된다.
붐비는 차 속에서
더러는 구둣발에 밟히기도 하고
옷고름이 타지는 수도 있지만
그런 데서 도리어 생명의 활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견딜 만하다.
 
그리고 버스를 타면 운전사와 승객 사이의 관계를 통해 새삼스레 공동 운명체 같은 것을 헤아리게 된다.
그가 딴전을 부린다거나 운전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술과 노고를 인정하면서도 차를 제대로 몰고 가는지,
당초의 약속대로 노선을 지키면서 가는지에도 무관심 할 수 없다.
머리 위에서 고래고래 뿜어대는 유행가와
우습지도 않은 만담이 우리를 몹시 피곤하게 하지만
운전사가 좋아하는 것일 테니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끝없는 인내는 다스림을 받는 우리 소시민들의 차지이니까.
 
                                                      - 법정, 1974 - (무소유 -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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