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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독서 안내 - 집회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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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jbap] 쪽지 캡슐

2003-02-23 ㅣ No.985

집회서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 (일과 놀이)

 

백성의 정체성 보존

 

서언

“집회서”라는 명칭은 교회가, 이 책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 회당과 반대 입장에서, 이 책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이 책은 주전 190-180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이다. 예수 벤 시라가 주전 132년에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그가 자기 손자를 위하여 그리스어로 번역해 놓은 억분에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주전 2세기 초 팔레스티나는 프톨로메오(에집트)의 지배에서 셀류코(시리아)의 지배로 넘어갔다. 제국을 통일한 끝에 내적 갈등에 처한 셀류코는 동화정책을 추진하여 피지배 백성들에게 그리스 문화와 종교와 관습을 강요했다. 이 정책은 피지배자들의 문화, 종교적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문화적 제국주의의 책략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유대교를 더욱 보편적인 문명에 적용시키려는 염원에서 그리스 정신에 자기네 자신을 개방하려는 사조와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조와 흐름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믿음과 소명과 정체성을 보존하고 만백성을 위하여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증거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을 대변해서 벤 시라가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히브리 백성이 생겨난 목적에 관한 일종의 길다란 묵상집이다. 벤 시라는 자기 백성의 기억과 역사의식을 되살려 내어 자기네 정체성 및 전통의 영속하는 가치를 보여 주려고 애쓴다. 그렇다고 저자가 고지식하지만은 않다. 그의 책 안에는 이미 그리스 문화의 여러 측면이 배여 있으며 지혜서에서 절정에 이를 종합의 길이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24장에 나와 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지혜를 모세의 율법과 동일시하고 있다(24,23). 이 경우에 말하는 율법이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토라(율법)라 부르는 모세오경을 가리킨다. 저자가 보기에 이 율법은 이스라엘의 지혜를 이루고 있다. 사실상 모세오경의 이야기 전체는 모든 인간과 모든 백성의 기본 체험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구체적인 체험에서 나오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제시한다.

 

머리말

이 대목은 집회서의 본격적인 부분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흥미로운 몇 가지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 시기에 구약성서는 이미 실천적으로 결말이 지어져 있었다. 구약성서는 율법(모세오경)과 예언서(역사서와 예언서)와 기타 저술문(지혜문학서) 세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 벤 시라의 책은 옛 본문을 다시 해석하고 해설하려는 기존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지혜의 신비 (1,1-30)

1,1-8

지혜는 하느님께 기원을 두고 있다. 모든 피조물 안에 하느님의 지혜, 당신 계획의 비밀이 들어 있다. 인간은 하느님과 당신 계획에 몸바칠 때 우주와 역사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다.

(참조 ; 잠언 8,22-36 이 대목은 현자들의 성찰의 절정이다. 지혜는 하느님의 맨 첫 피조물로서, 당신의 모든 창조활동에 따르는 일종의 설계사와 같다. 따라서, 지혜는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에 새겨 주신 “생존의 의미”라고 말할 수있다. 세계와 역사를 관찰하면서 인류는 지혜를 만날 수 있고 또 지혜를 의식할 수 있으며 지혜를 인생의 진정한 성공을 위한 지도자로 삼을 수있다. 요한은 자기 복음서 서언에서 이 본문을 기억했다(요한 1,1-5참조))

 

1,9-18

“주님께 대한 경외심”

(잠언 1,2-7 이 책의 목적은 교육에 있다. 즉 인생을 의미있게 살도록, 훌륭하게 다스리도록,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의 온갖 상황에 적용되는 식별을 제대로 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지혜의 기본 원칙은 “야훼를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야훼께서 지혜의 원천이심을 인정하는 데 있다. 야훼께서는 지혜를 삶의 구체적인 체험을 통하여 전달하신다. 그래서 누구나 지혜에 접근할 수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백성의 목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다.”

잠언 3,1-12 지혜를 획득하는 기본 태도는 “야훼를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일”이다. 지혜가 야훼께서 선물로 주시는 선물로서 절제 있는 생활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절제있는 생활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따라서 살게 한다. 이같은 모양으로, 인간은 자기 지혜는 항상 한계가 있고,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에 개방되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하느님의 지혜는 역사와 삶의 체험을 통하여 현존한다.

 

1,19-21

지혜의 첫 열매는 인내다. 인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당한 때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인도한다.

 

1,22-29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부여하시는 최상의 지혜는 율법이다. 율법 안에 정의로운 길을 따르기 위한 근본 규범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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