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보물(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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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9-11 ㅣ No.3578

연중 제 23주간 토요일 (2004-09-11)

독서 : 1고린 10,14-22 복음 : 루가 6,43-49

* 보물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속에 가득찬 것이 입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루가 6,43­-49

◆북한에서 남한 사회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 혜선(가명)이는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왔습니다. “오늘은 무슨 교리를 배웠어?”, “아, 예. 삼위일체에 대해서 배웠어요.”, “어려웠겠구나.”, “아뇨. 뭐가 어려워요. 가만히 듣다 생각하니까 북한에서 늘 강조하는 ‘수령·당·인민’의 원리와 비슷하던데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리서를 준비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매스컴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대규모 탈북!’ 소식입니다. 탈북자라는 용어가 우리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던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탈출한 것이 계기라고 봅니다. 그 당시 모 방송에서는 북한의 장마당에서 떠도는 꽃제비 보도를 하고, 중국에 숨어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보여줌으로써 단단히 닫혀 있던 북한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탈북이 2004년 현재 5천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마음은 저마다 십인십색입니다. 이들과의 만남, 사상도 이념도 아닌 그냥 사람과의 만남을 8년 정도 해오면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탈북자, 곧 북한 이탈주민은 지금 우리에게 주님께서 보내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복음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신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소경, 절름발이, 간음한 여인, 가난한 자, 과부`….’ 만일 오늘날 주님께서 복음서를 새로 쓰신다면 진정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남한인도 북한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사는 그들을 보물에 포함시키셨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남한과 북한을 바로 알려주는 도우미들로 소중하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투리 때문에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두려워 벙어리 흉내를 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 말씀에서 ‘주님, 주님’을 부르면서도 말씀은 실행하지 않는 이들을 꾸짖으시면서 말씀을 실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와 같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이 실행해야 하는 것, 곧 어느 누구도 우리의 사랑에서 제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예수님의 보물은 반석 위에 집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천사들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나라가 든든한 반석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그 평화로운 모습을 위해 주님께서 미리 보내준 그들에게 주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이선중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  살아 있는 날은 -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깍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깍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이해인의 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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