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떠남(會者定離)

인쇄

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09-13 ㅣ No.3580

심용섭 신부님과 이승주 신부님의 이동 발령으로
곧 다른 사목지로 떠나십니다.
그래서 '떠남'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헤어질 때는 섭섭함, 아쉬움, 허전함 등 많은 느낌이 들지만
헤어짐은 또 다시 만남의 기다림이란 생각을 합니다.



낙화(落花)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李炯基 1933- ) -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매일 걸려오는 그의 전화와
그가 들려 주는 잔잔한 일상의 일들과
볼에 패이는 그의 애잔한 미소와
내 가슴을 울리는 그의 다정한 입맞춤과
내 상처를 감싸는 그의 따뜻한 위로와
그가 꿈꾸는 빛나는 미래와...

이 모든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하기 전에 나는 떠난다

내 수첩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고
그가 들려주던 일상의 일들과
내 눈앞에 아른이는 그의 미소를 지우고
그의 다정한 입맞춤과
따뜻한 위로와
그가 꿈꾸던 미래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나는 홀로
내게 다가온 운명을 받아들이려 한다

살아온 시간만큼 쌓여가는 이별들에
면역이란 선물이 주어졌더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바에야 눈물보다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대를 보내려 한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질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그 모든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기 너무 늦지 않았을때
나는 서늘한 가슴을 안고 그대를 떠난다

내 가슴에 일렁이는 대상 없는 분노와
알수 없는 눈물과
끊임없이 쏟아질 푸념들을 아직 잠재울수 있을때
나 그대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그대를 놓아주려 한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작은 위안이었던 그대여
이젠 안녕...

- 무명 시인의 詩 -




떠남(會者定離)

요즈음은 떠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있다(회자정리)”
“인생은 나그네요 만남이요 나눔이요 버림이요 기쁨이요 헛됨이요 떠남이다.” 라는
말을 늘 듣고 있으면서도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것처럼 살아온 것이 사실이지요.

우리 인간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기를 좋아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습성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고,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자식들이
외지에 살아도 평생 살아온 고향의 사람들, 집, 논.밭, 자연을 떠나지 못하는가 봅니다.

인생은 즐거움과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결국은 헛됨이고 떠남이란 말입니다.
인생은 떠남입니다.

구약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는 떠남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롯이 소돔을 떠났으며 이사악이 그랄을 떠났다.
요셉은 이상한 방법으로, 타의로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고향을 떠나 타향 에집트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모세는 떠남의 삶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집트를 떠났습니다.

신약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도 떠남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떠나서 이 세상에 종으로 섬기러” 오셨습니다.
“종 되신 왕”으로 오셨습니다. 세상에서 구속사업을 다 이루신 후에는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셨습니다.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요한13:1).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요한17:7). 예수님은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떠남의 삶을 살도록 본을 보여주셨고 떠남이 유익이 된다는 높은 차원의 진리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신자들도 떠남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유교적 전통과 경제성장의 국가정책 가운데서 살아가는 오늘의 신자들이
자칫 떠남의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종말신앙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떠남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떠남의 생활 즉 나그네의 생활을 거듭하다가 나그네의 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인생은 떠남입니다. 떠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서구의 신자들에 비해 우리는 유언이나 유산을 미리 남기는 것을 꺼려 합니다.
떠남을 준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모두 사용하는 것입니다.
떠남을 준비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많이 울면서 회개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가볍게 후회 없이 떠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긴 모든 은사들을 마음껏 사용하고 가볍게 떠나야 합니다.
몸이 부서지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많이 하고 후회 없이 떠나야 합니다.
자리도 너무 오래 차지하려고 할 필요는 습니다.
재산을 너무 오래 소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보물을 모두 하늘에 쌓은 후 가볍게 만족스럽게 떠나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미사참례 시 언제나 앉았던 자리를 떠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부터 줄곧 앉았던 자리로 4년 간 정들었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가 제대와는 멀리 떨어진 자리이지만 웬지 편안하고 주위에 항상 뵙던 분들을
떠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틀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구나.
자리를 옮기는 것이 옳은 길이다는 걸 깨닫고 미사참례를 갔습니다.
그런데 컴컴하던 자리가 불이 켜진 것입니다.
아마도 며칠간 자리이동을 시도한 후 변화가 없자 원위치 한 모양입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또 갈등을 느꼈고 그냥 종전에 앉던 자리에 앉고 말았습니다.
이틀간이나 생각하며 다짐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성체조배를 하고 있는데,
독서하실 분이 나오시지 않았다고 저보고 독서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례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려는 순간 독서자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것입니다.
얼른 전례복을 그분께 입혀드리고 자리로 가는데 벌써 삼종기도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제일 가까운 자리인 앞자리에 어쩔 수 없이 앉게 되었지요.
미사 내내 생각해 보니 뒷 자리를 떠나 앞 자리로 옮기라는 말씀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앉는 자리 하나 옮기기도 힘 드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가 가진 재산,
명예, 권력을 떠나기가 쉽겠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떠남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너무 어떤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 “높은 데서 사슴처럼” 이란 책을 다 읽었습니다.
절름발이였던 ‘두려움’이 낯선 여행을 한 후 ‘높은 데’로 올라 ‘은총과 영광’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후 주님이신 목자에게 그 동안 배운 것을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여행중 제게 겪게 하신 모든 일들을, 그리고 그 길이 이끄는 대로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작은 여종 ‘기쁘게 받아들임’입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들이 저를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참고, 조금도 씁쓸해 하지 않고 용서하며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작은 여종 ‘사랑으로 참아냄’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배운 것은 주님, 당신은 한 번도 저를 절름발이에다 약하고 비뚤어진 겁쟁이로
여기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합니다.
네 번째로, 삶의 모든 상황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비뚤어지고 찌그러지고 못생겼더라도,
사랑과 용서로 대하고 당신의 뜻에 순종하면 완전히 변모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말씀하십니다. “잘 배웠구나, 바로 네가 배운 이 교훈들이
절름발이 두려움을 사슴의 날랜 다리 은총과 영광으로 변화시킨 거란다”. 하고…


만남과 떠남을 위하여 / 용혜원

친구여
어린 날 조막손을 흔들며
안녕을 배웠던 우리는
살아오며 떠남을 위한
만남을 계속했습니다

만남이 좋았기에
떠날 때는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우리는 만남과 떠남을 위하여
수없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가을이 오면
여름날 마음껏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던 잎새들이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하며 떨어집니다

우리들의 삶이란
만남과 떠남을 위하여
이루어져 가는 것이기에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며
안녕을 외친 후에도
우리들의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게 기억될 것입니다


떠남
-김현승-

떠남 너의 뒷 모양은 언제나 쓸쓸하더라.
너는 젊음을 미워하고 사랑을 시기한다.
너는 어머니와 아들같이 친한 사이를
간섭하기를 유달리 좋아하더라.

사람들은 너를 위하여 산을 헐어 길을 닦고
물 위에 배를 띄운다.
너는 왜 아득한 모래 위에 혼자 앉아
로렐라이의 노래만을 부르고 있느냐.

나는 너를 잘 안다.
너는 나의 검은 머리털의 힘을 빼앗고
네가 사랑하는 寶石은 眞珠나 落葉보다 눈물이다.
네게 만일 세월의 친절이 없었던들

이를 무엇에다 쓰겠느냐?
떠남 너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더라.
네 앞에 自然은 빛을 잃고 汽笛은 사라지며
원수도 뉘우친다!

너는 왜 훌적훌적 울면서도 가고야 마느냐?
돌아서 너의 마음을 뉘우침이 좋지 않느냐?
아아, 떠남 너의 발자취를 덮을 땅 위의
바람과 눈이 영원히 없음을 너는 모르느냐?





3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