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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마음이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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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19.192.250.*]

2011-02-12 ㅣ No.9343

괴로운 자매님, 먼저 훌륭하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 최근 메스컴을 통해 관련 자살 사태까지 이어져 마음 답답해짐을 느낍니다. 한국의 제사 문화는 또다른 종교 유교 사관이 많이 첨삭되어 있습니다. 유교는 인忍을 모토로 하는 종파인데 문제는 조선 여인들의 억울한 인내가 어디 한두 가지였겠습니까?
 
자매님 하소연을 들어보니 큰 형님이라는 사람 공적인 자리에서도 사람의 자존심을 밟는 지성을 가진 사람인가봅니다. 그런 사람과 일단 맞 상대하지 않는 전략을 구가해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흥분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에게 지고 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우리 천주교 신자들 다수는 그러한 사람의 영혼을 재빨리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에 더딘줄 모르겠으나 거룩한 침묵으로 응수 할 것입니다.
 
세상의 지름길은 "돌아가는 것!"이기에 자매님은 이미 흘륭한 전략을 구가하고 계십니다. 다만 스스로 뱀의 간교에 속아 신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초대 크리스마스(그리스도 미사) 마저 멀리하고 계신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초대 교황 성하이신 성 베드로께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셨듯 매일의 크리스마스 부르심을 맞고 계신 것입니다.
 
돌아오는 미사 때에 제일 먼저 그리스도 제단을 바라보는 것 잊지 마시고 제사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당당히 성호를 바치는 연습으로 대처해 보실 것을 권고합니다. 기도가 부족하여 꼴보기 싫은 사람이 또 자존심을 건들라 치면 가슴으로 또는 오른손으로 손바닥에 성호경을 바치며 주님을 따라 대처해 보십시오.
 
이는 모태신자인 필자가 누차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 때의 침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은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강론이 길면 지루하다, 짧으면 공부가 적다고 평신자들 가슴속으로 유혹하며 악으로부터 비난 받는 신부님들이 더욱 평화로서 스스로를 대하시는 모습들도 싸움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침묵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의 아버지 신부님과 함께하는 천주교의 강점은 모든 종파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백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은 이 때에 성모님의 침묵을 이미 나누고 계시기에 훗날 큰 동서에게 보다 지혜롭게 그것을 나눠질 힘을 허락 하시리라 믿습니다.
 
자매님 내면의 미사를 궐하게 만드는 악심의 그것들을 필자 도민고가 체포하여 확 불에 태워버리고 싶지만 필자 역시 과유불급이 문제인지라 세상의 지름길인 돌아가는 길에 있어 악해진 이 사회에 있어 보기 싫은 사람 피하지 못하고 가사에 열심히 임하는 한국 주부들에게 못난 남자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와 응원을 표명합니다.
 
사실 그 큰 동서라는 사람이 더 많은 고통을 수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는 자명한 이치일 것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어둠의 자식들로 치닿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저주만 하지 않고 우리가 주님 안전에 미숙하나마 기도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 때에 완전한 기도가 미사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더욱 행복한 여정 되시고 이번 기회에 아예 여인들이 부족할 수 있는 대화의 타이밍을 남편과 함께 나누시어 훗날 못 된 큰 동서를 미워함보다 보이지 않는 악들을 미워하고 굶겨 죽일 수 있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개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는데 우선 매일 거울을 보듯 내면의 거울도 잊지 않으실 분으로 여겨져 희망 풍성해 보입니다. 화이팅! 응원 계속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영적 선물 한 개 놓고 갑니다.
 
 
남을 미워하고 있을 때

주님, 저는 지금 남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모처럼 피어난 아득히 향기를 날리는 난꽃도 보지 못하고, 창 열면 가득히 이마에 닿아 빛나던 푸른 하늘도 마냥 잿빛임을 봅니다.

이웃이 저를 채워주지 않았다 해서, 저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그들을 완강히 끌어안고 미움의 물레방아를 찧고 있다는 것은, 어둡고 어지러운 골짜기에서 처절히 비명을 지르는, 너무나도 부끄런 저의 슬픔입니다.

주님, 저에게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소서. 이웃이 무엇 때문에 저를 알뜰히 채워주어야만 하는지, 이웃이 왜 저를 높이 알아주어야만 하는지를 깊은 곳에 들어가 곰곰히 생각하게 하소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이웃에 요구하고 있음을 정직하게 깨닫게 하소서.

주님, 제가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인 채로 제 영혼의 숨소리가 점점 엷어지고 있다면, 저는 그 무엇을 진실로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웃을 진실로 용서하고 진실로 사랑하게 하소서. 이웃을 만날 때는 지극히 평온한 미소의 얼굴로 그를 위안하게 하시어, 삶의 깊은 질서를 따르는 행복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 김 영수 著 '기도가 그리운 날에는' / 경북 선산 도개 출생 /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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