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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규 [hyena] 쪽지 캡슐

2003-04-19 ㅣ No.3595

부활르포]질주하는 신앙인, 그들의 꿈과 희망

서울대교구 중계동본당 축구단원들. 공동체 부활을 향해 오늘도 달린다

‘길이 100m, 너비(폭) 64m. 시간 90분.’

 

인생을 닮았다.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도 제한돼 있다. 반칙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곳엔 오직 땀이 있을 뿐이다. 오각형 12개와 육각형 20개로 이뤄진 32조각 둥근 축구공.

 

그 공이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완성되는 드라마, 그 주제는 희망이다.

 

■경기 시작 전

 

지난 6일 오후 3시, 서울 도봉구 창동 제일축구장. 서울대교구 중계동본당(주임 박성칠 신부) 축구단원 20여명이 반지름 9.15m 센터서클에서 두 손 모으고 섰다. 오는 27일 평화방송 이사장배 축구대회 3조 예선전을 앞두고 열리는 창4동본당과의 연습경기. 전·후반 각각 25분씩 뛰기로 했다. 기도가 끝나고 선발 출전 명단이 발표됐다.

 

“열심히 합시다.”

 

조창규(이레네오, 47) 축구단 회장이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선수들의 등을 향해 짧은 말을 던졌다.

 

박성칠 신부가 공격 경로를 열어주는 플레이 메이커로, 우중근 보좌신부가 오른쪽 공격수로 나섰다.

 

최전방 공격수론 조환(마태오, 40)씨가 낙점됐다. 20년 냉담. 군복무 시절 세례를 받은 후 한번도 성당에 나간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달라져 있다. 그는 “축구로 다시 찾은 신앙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부활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과거엔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 방식대로 살았지만 이젠 하느님 말씀을 따라,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자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신앙의 행복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바람은 잔잔했다. 축구하기엔 최적의 날씨. 축구단 고문 봉형종(요한, 68)씨가 주심을 맡았다.

 

호각 소리가 울리고…. 질주가 시작됐다.

 

■10분

 

운동장에 흙먼지가 일었다. 흐름이 좋지 않다. 공격은 번번이 차단됐고 후방에서의 패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대편이 거세게 압박해 들어왔다. 중계동본당 진영이 일순 흔들렸다.

 

최종 수비수, 정찬홍(레오, 38)씨가 공을 밖으로 걷어냈다. 정씨는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부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축구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좋은 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위기 때마다 미드필더 심종진(토마, 42, 축구단 감독)씨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2001년 10월 축구단을 창단한 주인공.

 

인테리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지만 요즘 경기가 좋지않아 걱정이다. 왼쪽 공격수 안광한(바오로, 42), 오른쪽 수비수 김여신(프란치스코, 42), 중앙 수비수 김철수(제노,44)씨 등 대부분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달 넘게 일을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요즘 함께 술을 마시는 날도 부쩍 늘었다. 안광한씨는 얼마 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신앙인들과 함께하는 질주가 그 삶의 무게를 잊게 한다. 축구공을 좇아 운동장을 달리는 이들에겐 믿음과 희망이 있다.

 

어쩌면 내일은 더 나을지도 모른다.

 

■15분

 

발가락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한 축구단 총무 김성학(안드레아, 42)씨가 경기장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당장 경기장에 들어가 뛰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그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불렀다.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었다. 매일 술 5병 이상씩 마셨다. 하지만 축구와 신앙의 힘으로 그는 다시 새 삶을 찾을 수 있었다.

 

부활 희망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경기 흐름이 중계동본당 쪽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15분. 박성칠 신부의 송곳 패스를 이어받은 심종진 감독이 공격수 조환씨에게 패스. 조환씨가 오른쪽 골문으로 정확히 공을 밀어 넣었다. ‘골인!’ 사람들은 서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부딪쳤다.

 

“공을 세게 찬다고 해서 반드시 골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골문 앞에선 발목이나 발끝을 이용해 가볍게 차야 합니다. 세상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강한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봉형종 고문이 선수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20분

 

이번엔 위기다. 창4동본당 오른쪽 공격수가 중앙으로 센터링, 중계동본당 골문앞 10m 지점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창4동본당 공격수의 슛. 하지만 중계동본당 골키퍼 유재민(시몬, 40)씨가 몸을 날려 공을 밖으로 쳐냈다.

 

비닐포장업에 종사하는 유씨는 지난해 1월 결혼한 늦깎이 새 신랑. 나이 40을 넘긴 지난 2월엔 딸(유지선)도 얻었다. 어머니가 현재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병환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늘 웃는 모습, 하회탈이다. 뭐가 그렇게 기쁠까. “지금은 힘들지만 착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면 하느님이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좀 늦긴 했지만 하느님이 좋은 아내를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수비수 송명섭(바오로, 49)씨가 공을 몰다가 상대편에게 뺏겼다. 경기를 지켜보던 김성학 총무가 “혼자서 하려고 하면 공을 쉽게 뺏기고 또 부상 위험도 많다”고 말했다. 골키퍼 후보 김상길(안드레아, 34)씨가 옆에서 “축구는 세상 사는 이치와 많이 닮았다.”고 말을 거들었다.

 

모두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계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것을 이겨내야 했다. “패스! 패스!” “좀 더 뛰어” 경기장 밖, 조창규 회장과 박기훈(요셉,43) 축구단 고문의 목소리가 커졌다.

 

■25분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렸다. 전반전 종료. 선수들이 천천히 운동장을 빠져 나왔다. 흰색 유니폼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조창규 회장이 선수들을 모아놓고 작전 지시를 시작했다. 조 회장은 히딩크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말을 빌리며 작전 지시를 마쳤다.

 

“두려워 말고 당당히 슛을 날려라.”

 

박성칠 신부도 말을 거들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공을 잘 차는 사람, 못차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어져 ‘승리’를 일궈가는 것이 축구입니다. 승리를 위해선 선수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부활도 개인의 부활을 넘어 공동체의 부활이 중요합니다. 신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힘을 모을 때 공동체의 부활도 가능합니다.”

 

전반전 결과는 1대 0. 이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돼야 한다.

 

10분 휴식시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우광호 기자  kwangho@pbc.co.kr

 

(사진설명)

-“개인기보다 조직력이 더 중요합니다.” 축구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력. 그래선지 축구 신앙인들은 ‘나 홀로 부활’이 아닌 ‘공동체의 부활’을 이야기한다. 박성칠 주임신부(왼쪽)를 비롯한 중계동본당 축구단원들이 경기에 앞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중계동본당 축구단원들이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 공격수 우중근 보좌신부(38번)가 전진 패스한 공을 놓고 최전방 공격수 조환(8번)씨와 창4동본당 수비수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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